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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아는 엄마를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 엄마가 일을 저질렀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큰 맘 먹고 에어컨을 할부로 들여놨다는 것이다.

 

아이가 5학년(초등)인데 방학 때 집 밖으로 나가놀려고 하는 아이를 붙들어 놓고 같이 공부를 하려고 한단다. 아이들이 저학년일 때는 엄마들이 아이 학습을 돌봐주고 함께 문제를 풀며 지내다가도 고학년이 되면 학원으로 돌리는 이들이 많은데, 실은 그때부터 진짜 신경 써야 할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에어컨을 샀어요?”

“네!”

 

그 엄마는 아주 당연한 표정이었다. 에어컨과 공부의 연결이 잘 안 된 내가 다시 물었다.

 

“공부하다가 덥다고 뺀질거리면 어떻게요. 그렇잖아도 자꾸 나가고 싶은 아인데.”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으로 아이들 공부에 엄마들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엄마의 빠른 정보가 아이들 학습능력과 실력에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런 쪽으로는 아주 젬병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두 애들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 제켰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데서부터 두 애들은 제 일들에 열심이다. 발에 밟힐 지경으로 책들도 편하게 누워있다. 작은 애 옆에는 큰애보다 더 오래된 꼬마선풍기가 끽끽대며 돌아간다.

 

작은애가 내 가벼운 장바구니를 궁금해 한다. 별거 없다고 해도 기어이 속엣 것을 다 꺼내본다. 그러다 상추 한 묶음이 나온다. 작은애가 상추를 들고 "오늘 저녁엔 삼겹살?" 하고 익살스럽게 묻는다. "어…"라고 어중간한 대답을 하니 그럼 삼겹살이 왜 없냐고 한다. 고기는 요 근처 단골집에 가서 살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두 애들이 삼겹살 먹을 생각에 환호한다.

 

 

안방문과 베란다 창문, 현관문을 활짝 열면 맞바람이 가장 잘 통하는 곳이 바로 신발 벗고 들어서는 거실 쪽이다. 녀석들이 그 시원한 ‘명당’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널널하게 열중하는 그림이 썩 괜찮다. 이 더위에 저런 장면을 보는 어떤 엄마라도 가만있지는 못할 것 같다.

 

예정에 없던 삼겹살 그저 쌈장에 상추쌈을 생각했던 건데, 아이들 삼겹살 먹을 때가 언제였나 싶어 내 입에서 선선한 대답이 나왔던가? 맞바람 치는 명당자리엔 에어컨보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기특한 새끼들"을 입 속으로 말아 넣으며 나는 냉장고를 뒤져 삼겹살 준비를 서둔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 송고합니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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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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