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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덩굴손 음악이 흘러나올 듯한 호박의 덩굴손, 그 안에도 저 깊은 뿌리까지 이어져있는 생명의 고리, 길이 있다.
▲ 호박의 덩굴손 음악이 흘러나올 듯한 호박의 덩굴손, 그 안에도 저 깊은 뿌리까지 이어져있는 생명의 고리, 길이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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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다. 우리 몸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는 작은 핏줄도 길이요, 수액을 빨아들여 온 몸에 돌게 하는 푸른식물들의 작은 관들도 길이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심연의 바다 가장 낮은 곳을 타고 흐르는 물길도 길이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도 길이다. 생명이 있는 곳, 그 곳에는 길이 있다.

지금 우리는 직선의 길을 강요당하고 있지만 그 옛날 정겨운 오솔길은 물론이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 조차도 직선이 아니었다. 돌고돌아 가는 길, 인생길을 닮아 천천히 돌고돌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았는가?

아, 감시카메라에 멈칫거리며 달려가는 길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까닭, 그것은 우리 삶의 속도, 생명의 속도와 길을 걸어가는 속도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호박꽃의 가는 길 떨어진 호박꽃에 곰팡이가 피어났다. 그들도 서로 엉기어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가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서로 엉기어 있는 그것도 길이다.
▲ 호박꽃의 가는 길 떨어진 호박꽃에 곰팡이가 피어났다. 그들도 서로 엉기어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가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서로 엉기어 있는 그것도 길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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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에 떨어진 호박꽃, 뿌리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수액이 올라와 꽃을 피었을 것이다. 그 길과 단절된 지금, 그는 자신의 생명을 마치고 또 다른 윤회의 길을 간다. 작은 곰팡이들이 서로 엉켜붙어 자신들의 길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죽은 생명에 길을 만듦으로 새 생명으로 바꿔가는 위대한 혁명을 수행하는 중이다.

'저것도 길이구나!'

곰팡이가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잎맥 잎벌레에게 온전히 자신을 보시하고, 잎맥만 덩그러니 남은 이파리, 잎맥도 길이다.
▲ 잎맥 잎벌레에게 온전히 자신을 보시하고, 잎맥만 덩그러니 남은 이파리, 잎맥도 길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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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햇살 뜨거운 여름인데, 잎벌레에게 자신을 온전히 보시한 이파리엔 잎맥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많은 길들이 어어져 있다.

'이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진 작은 길들이 있어 저 깊은 뿌리와 소통을 했구나. 간혹 끊어진 길, 막혀진 길들이 있지만 돌고돌아 온전히 이어져 어느 한 길 생명이 막히지 않고 소통하고 있었구나.'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길의 끝, 그 곳은 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생명의 끝,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듯이 길은 그렇게 시작이며 끝이다.

바다의 뻘 그 곳에도 길이 있다. 자연의 길은 순리를 따라 생긴다.
▲ 바다의 뻘 그 곳에도 길이 있다. 자연의 길은 순리를 따라 생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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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순수한 물과 순수한 대지가 만나 흙탕물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내 그들은 그들만의 길을 따라 흐르며 끊임없이 순화된다. 그냥 흘러서 순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닿는 곳마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줌으로써 그들은 마침내 맑은 물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바다, 그 곳에도 길이있다.

길은 이렇게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연결해 주는 고리다. 높낮이가 있고, 몇 걸음만 걸어가면 보일 풍광을 감추어둔 모퉁잇길이 있고, 한걸음에 한순간 펼쳐지는 전혀 다른 풍광들은 길을 아름답게 한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덩달아 아름다워진다.

성산포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성산포, 길과 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 성산포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성산포, 길과 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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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마을, 집과 집, 밭두렁 사이로 이어진 작은 길들은 내 몸안에 있는 핏줄기와도 같다. 그 작은 실핏줄들이 서로 소통하는 가운데 내가 존재한다. 핏줄이 막히면 생명이 위협을 당하듯, 저 땅의 실핏줄 같은 길도 막히면 땅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는 것이다.

그동안 길을 함부로 바꾸는 무례한 인간들의 행동에도 그들은 인내해 왔다. 그러나 이미 그들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이 강산은 신음하고 있으며, 그 신음이 분노가 되어 인간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은 멀었다고 한다. 직선논리와 빠름의 논리로 무장하고 그로 인해 이어져있던 수많은 길들이 어떤 지경에 달할지 생각하질 못한다.

이 땅의 길을 바꾸는 것은 우리네 삶의 양식을 바꾸는 일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생명과 직결이 되는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 인간만이 아니라 온 생명임을 아는 사람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길로 인해 신음하는 피조물들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길이었으나 끊어진 길을 복원하는 일이 우리네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시골 작은 마을 폐가로 이어지던 길들이 다시 선명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생명 흐르는 길을 죽이고 큰 길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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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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