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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민속박물관 '건국 60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된 폐자전거를 재활용한 풀무.
국립민속박물관 '건국 60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된 폐자전거를 재활용한 풀무. ⓒ 김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다가 먼 훗날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 콧등이 시큰하도록 와닿는 것들이 있다. 일찍이 시인 정지용만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고, 자신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그런 사소한 것들도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흔들어 놓았던 사건들보다 오히려 심금을 울리는 역사가 된다.

과거, 참으로 궁핍하게 살았던, 그리 멀지도 않은 70, 80년대는 오늘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또 쉽게 멀어진 우리들의 시대다. 지금이야 우리들 눈과 손에서 멀어진 것들이지만 보면 단박에 기억할 수 있고, 더하여 그 어렵던 시절을 견딘 자신과 동시대에 대해 대견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은 오는 7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그 고난과 영광의 순간들> 특별전을 연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감격도 채 마르기도 전에 이데올로기는 민족을 둘로 갈라서 피를 흘리게 했으며, 그 황폐한 시간보다 더 혹독한 가난과 싸워 이제는 기억하기 싫어 하도 멀어진 그 한국의 지난 60년을 돌아보는 기회이다.

좀도리를 아십니까?

 좀도리, 절미통. 쌀이 절대 부족했던 70년대 각 가정마다 비치되었던 것들. 우리는 배고팠지만 그 배고픔조차도 아껴야 했던 시대를 거쳐왔다.
좀도리, 절미통. 쌀이 절대 부족했던 70년대 각 가정마다 비치되었던 것들. 우리는 배고팠지만 그 배고픔조차도 아껴야 했던 시대를 거쳐왔다. ⓒ 국립민속박물관

70년대 초중등학교에서는 흰쌀밥 도시락을 금지했다.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검사를 할 정도였다. 그만큼 궁핍했다. 부족한 쌀 생산을 극복하기 위해 쌀 절약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야 했다. 좀도리란 밥을 지을 때 쌀을 조금씩 덜어내어 모으는 통인데, 당시 농협에서는 절미통을 나눠주고 그것으로 절미통장을 만들 정도였으니 한 해 수조의 음식물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으로써는 격세지감을 피할 길이 없다.

좀도리로 상징되는 그 시대는 버리는 것이라곤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폐자전거를 이용한 풀무, 아기 분유통은 아버지의 재떨이로 다시 사용됐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부자가 드물었고. 다 같이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그런가 하면 여가도 없었지만 딱히 즐길 거리도 없던 시절에 애들은 만화가게로, 청년들은 음악다방으로 몰려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만화가게에서는 요즘의 적립 포인트처럼 만화를 일정 정도 빌려 보면 텔레비전을 보여주었다.

동네에 흑백 텔레비전을 두고 사는 집은 누구나 알 정도였던 시절에 박치기 김일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만화가게에 몰려갔던 것은 비단 꼬맹이들만은 아니었다.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한다고 괜히 지청구를 놓으면서 슬그머니 주먹만한 애들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앉는 어른들의 모습들도 그 속에 있었다.

74년 여자의 데이트비용은 25원?

 70년대 어느 가정집 안방의 풍경으로 여겨도 좋은 모습. 텔레비전 옆의 앉은뱅이 미싱. 낮은 책상 앞에 놓인 빨간 방석은 라면봉지를 접어 만든 당시 꽤 유행했던 가정소품.
70년대 어느 가정집 안방의 풍경으로 여겨도 좋은 모습. 텔레비전 옆의 앉은뱅이 미싱. 낮은 책상 앞에 놓인 빨간 방석은 라면봉지를 접어 만든 당시 꽤 유행했던 가정소품. ⓒ 김기

동네마다 몇 군데는 성업이었던 '뽀끼(뽑기)'집. 요즘 같이 무더운 여름이면 등장했던 아이스케키, 냉차 그리고 빙수노점. 동네마다 며칠 차이를 두며 돌면서 구수한 목소리로 "뻥이요~"를 외치며 지금은 금지된 당분이 가미된 달콤한 뻥튀기를 튀겨 주던 할아버지.

이 모든 것들이 정말 그때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가는 길에 있거나 혹은 보이지 않아도 굳이 찾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나타났던 것들이다.

이번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는 가능하다면 3대가 함께 가면 좋을 듯싶다. 60을 넘긴 조부모와 그 아래 부부와 손녀손자와 함께 누가 훔쳐가지도 않을 사소한 시간의 흔적들을 놓고 이것이 무엇이었고, 저것은 또 어찌 사용했는지를 묻기도 하고, 대답해 주기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전시는 해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집안에 어른이 계시다면 그분이 바로 전문가다.

70년대에 연애를 하고, 결혼한 사람이라면 알 만한 음악다방을 좀 사이버틱하게 체험할 수 있으며, 여성이 데이트에 나가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던 시대에 여성이 데이트 한번에 쓴 비용은 버스비 달랑 25원이었다는 것도 한쪽에 자료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런 데이트 끝에 결혼하고도 계속 그런 공주 대접을 받았는지는 모를 일이긴 하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나라' '우리의 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시간' 등 네 가지 세부 주제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자수태극기부터 풀빵틀, 고무신, 포니 자동차까지 500 여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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