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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 징수업무를 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최근 국회에서 실무 당정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안에 합의했다고 한다. 덧붙여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징수업무를 하는 곳에서 부과업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통합 논의의 시작은 국민의 정부 시절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른바 2:2(건강+연금, 고용+산재) 통합 방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 외환위기 등 여건으로 무산되고, 참여정부 인수위에서 다시 '부과ㆍ징수업무의 일원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게 된다. 그 후 4대 보험통합이 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2006년 9월 '빈부격차시정위원회'에서 저소득자 소득보전대책을 수립하면서 소득파악의 추진주체로서 기능을 겸하는 국세청 산하 '징수공단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후 2006년 11월 징수공단 설립 관련 7개 법률안이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엄청난 논란과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쳐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미처리된 채 회기를 넘겨 자동 폐기됐다.

 

같은 시기에 '공무원연금개혁'과 거대 '국민연금기금 분리' 논의도 이루어졌지만 국민들의 직접적인 관심사에서는 벗어난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신정부 초기에 접어들자 매년 1조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되는 공무원연금과 같이 시급한 개혁과제는 실종되고 보다 덜 시급한 국민연금 기금분리와 사회보험 통합이 전면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매우 궁금하다.

 

지난 6월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민주당 강기정 의원 주최로 기금운용체계 관련 전문가 간담회가 있었는데, 현재 정부안으로 제기된 '기금운용위원회 등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제정안'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제기된 입법예고안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그 대안에 대한 검토가 비교적 심도있게 이루어진 바 있다. 그리고 7월 초 정부와 여당은 사회보험 통합을 건강보험공단 중심의 징수통합 방안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현재 적립금이 233조원, 2040년이면 최대 2500조원에 이를 거대 기금으로 현행법상 기금관리의 주무부서는 보건복지부이고 실제 운용은 국민연금공단에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정부 법률안은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 및 독립기구화를 위해 기금운용전문공사를 설립하고 국민연금법상 기금관련 조항을 폐지해서 복지부 장관의 기금운용 책임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기금의 거대화로 인해 운용의 전문성을 기한다는 방향은 맞지만 결국 연금가입자나 수급권자의 대표자인 연금공단 그리고 복지부의 기금에 대한 간여만 원천적으로 없애버리고, 정부에서 사실상 독립적인 기구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국 정부(재정부)의 영향력만 극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가입자나 수급권자의 권익보다는 거시경제 측면에서의 경제정책, 대규모 공공투자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기금운용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적립금의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보험 징수업무 통합논의도 사실 징수 업무만의 통합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부과와 징수 그에 따른 급여라는 불가분의 업무를 분리해서, 더구나 다른 기관이 담당하게 한다면 국민 불편은 물론 행정낭비가 심각해질 것이 뻔하다. 일본의 연금가입자이력 자료 유실에서 보듯이 엄청난 데이터베이스의 관리도 문제려니와 최종 소비자인 국민이 4대 기관을 오가며 제대로 된 신속한 서비스를 받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장기보험과 단기보험, 적립식과 부과식, 현금급여와 현물급여 등 여러 가지 특성이 다른 업무를 조화롭고 균형있게 추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만의 업무를 통합한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전체 통합의 중간단계라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관간의 업무영역 다툼과 이에 따른 국민 불편과 행정비용의 증가로 이어져 통합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연금공단이 장기보험의 특성상 받게 되는 국민의 불만과 불신을 빌미로 기금에 대한 운용권을 분리하고 공단을 형해화하는 수순이라면, 또는 그러한 의도가 아니라도 그렇게 흘러간다면 매우 우려스런 방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득 3만 불이 넘고 연금제도 시행 50년을 넘는 일본과 같은 선진국도 자영자와 농어민 가입대상자들의 미신고자, 보험료 미납자와 납부면제자 비율이 40%를 넘는 정도라고 보면 우리의 경우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는 지나칠 정도가 아니다.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행의 경로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 같은 공공부조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 국민들의 제도와 연금공단에 대한 불신, 불만은 급부 없는 장기간의 보험료 부담에 따른 것으로 일정 수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건강보험 같이 당장 진료를 받아야하는 단기보험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4대 보험 통합이 국세청 산하 별도기관 설립에서 건강보험공단 중심 통합으로 급격하게 변화된 과정이 또한 문제다. 참여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국세청의 조세자료를 활용한 사회보험 징수라는 명분이 순식간에 사라진 이유가 효율성과 국민편의의 측면보다는 이른바 '영향력 있는' 인물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으로 있는 박재완 전 한나라당 의원은 참여정부 당시 4대 보험통합 관련 법률에 전면 반대하고 당시 정부안에 맞서 ‘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하는 법률안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거대 공단을 신설한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건강보험공단으로의 통합이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 정책이 아니라 반대를 위한 급조된 '주장'이었던 측면이 강했던 것인데 정부가 바뀌면서 갑작스레 공기업 개혁정책으로 포장을 바꾸고 있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심도 있는 검토와 정책의 적합성이 부족할 것은 불문가지다. 현재 직원 1만 명에 이르는 건강보험공단에 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징수인력을 합쳐 놓는다면 더욱 비대한 공룡조직이 될 것이 뻔하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제도의 안정적 수행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의 통합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인력의 구조조정 문제도 어렵게 할 것이다. 3개 공단의 1만8000여 인력 중에서 징수업무 담당이 1만명 가량으로 추산되는데 건보공단으로 통합할 경우 수 천명의 잉여인력이 발생할 것이고 이들을 모두 흡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리민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당해야 할 희생이라면 기꺼이 감내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한 명분과 확신이 없다면 향후 관련법 추진과정에서 노조 반발과 때로는 늘어진 통합과정에서 가입자 자료 관리의 부실 등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김용태 기자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보험#사회보험통합#사회보험징수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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