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30일, 촛불집회 사상 최초로 구속된 윤모씨에 대한 형사재판이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최초 체포시부터 변호인 접견을 했던 터라 영장실질심사에 이어 본안재판에도 변호인으로 출석하였다.

 

윤씨의 사안은 간단하다. 그가 6월 7일 시청에서의 촛불집회 등 세 차례에 걸쳐 촛불집회에 참석하였고, 6월 7일 촛불집회에서는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방석판을 손괴하였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이런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피고인이 인정하는데 변호사가 이를 부인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그는 노숙자다.

 

문제는 증거였다. 검찰은 피고인도 모두 자백하는 사건에 대한 증거로 총 540페이지를 증거로 신청해 두었다. 그런데 그 증거라는 것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없는 것들이었다. 피고인은 단지 전경버스 위에 올라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증거로 제출된 것들은 쇠파이프를 든 시위대의 사진들,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 부상을 입은 전, 의경들 전체의 명단과 치료비 지급내역서와 그 전의경들의 진술서, 촛불집회 이래로 파손당한 전경버스 현황과 그 파손을 돈을 환산한 감정내역 등이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압권은 윤씨가 체포된 이후의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는 사진자료들이었다. 도대체 윤씨가 체포된 이후의 폭력시위가 윤씨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윤씨가 광우병 대책회의의 간부도 아니었잖은가?

 

검찰의 증거신청에 대한 변호인으로서의 나의 증거의견은 간단했다. 윤씨의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없는 증거들에 대하여는 증거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검찰의 의견 또한 간단했다. 윤씨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서 양형의 자료로써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

 

 기사 캡처 화면
기사 캡처 화면 ⓒ joins.com

 

이와 같은 검찰의 의견에 대한 나의 재반박을 듣기에 앞서 먼저 1일 보도된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시는 게 좋겠다.

 

시위 구속자 무료 변론 민변 변호사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

 

같은 재판을 보고 작성한 연합뉴스의 기사다. 대조해 보시기를 권한다.

 

'촛불 과격시위 구속' 첫 재판서 檢-辯 공방전

 

<중앙일보>가 제목으로 뽑아올린 문제의 나의 발언은 바로 검찰의 주장에 대한 재반박의 대목에서 나왔다. 나의 재반박은 이랬다.

 

"이번 촛불집회에 뚜렷한 주최자가 없다는 것은 촛불집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 수십만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하나의 단일한 입장으로 촛불집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촛불집회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촛불집회에 나오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그간 평화적인 의사표시로 얻은 것이 무어냐, 이제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정부에 우리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피고인은 쇠파이프를 든 사람도 아니고 피고인이 폭력적인 촛불집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닌데, 쇠파이프를 들고 폭력적으로 시위하는 사람들의 행위로 인하여 피고인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이것은 명백히 부당한 것이 아니냐."

 

재판을 마치고 나서 밤 늦게 동료로부터 이날의 발언이 <중앙일보>에 기사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사를 읽고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이었다. 기사의 댓글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육두문자를 동원한 욕설은 기본이고, "참으로 나라를 망칠 위인"이라느니, "이광철 변호사! 사형"이라느니, 지금껏 내가 먹은 욕의 총합을 넘어설 듯한 험한 소리들이 그야말로 인터넷을 횡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중앙일보>가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을 집단으로 여겼기 때문에 다만 어안이 벙벙했을 뿐이다. 댓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의 '거두절미' 

 

그런데 6월 30일 정확하게 저녁 7시 38분, <중앙일보> 대검출입기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변론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둥 하면서 윤씨에 대한 수임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슬며시 물어 왔다. 노숙자에게 수임료를 받겠느냐며 간단하게 답했다.

 

그리고 나서 난 엉뚱하게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어도 윤씨만 노숙자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 사람은 영장청구가 기각된 것은 사실상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변형이 아닌가, <중앙일보>도 비록 촛불집회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더라도 이에 대하여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아뿔사!

 

기사를 읽고 나서 해당 기자가 수임료를 물어본 저의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나의 발언을 저토록 거두절미했으면서 왜 전화를 한 것일까?

 

기사에 언급된 내 발언 "민변 차원에서 윤씨를 포함해 촛불집회로 구속된 피고인들에 대해 무료 변론을 하고 있다"를 넣어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저들이 누가 봐도 억지인 이런 거두절미를 선보인 의도는 단순하다. 촛불집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나와 민변을 폭력옹호집단으로 낙인찍어 촛불집회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여론을 꺾어 놓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언론으로서의 소중한 가치인 진실보도의 원칙을 포기한 것이겠지.

 

난 어떤 사안에 대하여 <중앙일보>가 가지는 견해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딴지총수 김어준이 명쾌하게 정리했듯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들이 편파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편파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기에, 나쁘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나쁘다는 결론에 도당하는 과정은 앞서 거두절미의 사례가 생생히 증언하듯이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비열하기까지 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사회현안을 인식한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를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는 절감하지 않았는가?

 

거두절미의 전형을 보여준 이번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그들이 이런 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런 그들조차도 헌법이 정하는 언론의 자유를 운운할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리 법질서가 정하는 테두리 내에서 이런 비열하고도 유치한 거두절미가 헌법 제21조 제4항의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임을, 법이 정하는 최후의 절차까지 가서라도 분명히 밝혀 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광철 변호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로 촛불시위 관련 구속자 무료 변론을 맡고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창신' 변호사입니다. 


#이광철 #중앙일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년에 딱 한뼘씩만 사회가 진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