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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새벽 미국산쇠고기 장관고시 무효와 재협상을 촉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27일 새벽 미국산쇠고기 장관고시 무효와 재협상을 촉구하며 밤샘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경찰이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 권우성

 

 

20% 내외 지지받는 정부가 이렇게 용감할 줄이야!

 

촛불은 결국 미 쇠고기 수입고시를 막지 못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날 측정 불가능한 양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으며 온 몸으로 막았던 고시는 결국 발표되고 말았다. 촛불로 대변되는 국민들의 뜻은 20% 내외의 지지를 받는 정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촛불로 대변되는 국민들은 왜 수입 고시를 막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정책 결정권이 없는 국민들의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문제 제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정부가 있어야 꺼질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갖추지 못한 대통령, 정부, 여당을 겨냥한 "고시 철폐, 협상 무효"라는 구호는 애당초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촛불을 든 국민들이 너무 순진했을 수도 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한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일에 정부가 이렇게 '용감하게' 밀어붙이기를 할 것으로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촛불을 든 국민들을 폭력 시위자로 매도할 줄은 정말 몰랐을 것이다.

 

논란이 된 지난 25일과 26일 밤의 촛불 집회를 살펴보자. 고시 결정과 고시 발표에 자극을 받은 촛불 국민들은 이전보다 분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들을 자극한 경찰의 강경진압이 있었다. 경찰은 작정한 듯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물대포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몸으로 물대포를 맞으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버스를 끌어냈던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정부와 여당은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폭력 시위자로 매도하고 있다.

 

교묘한 국가폭력의 좋은 예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근본 문제는 구조적 폭력의 가장 심각한 형태인 국가 폭력, 그것도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국가 폭력이다. 수백 또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아우성치면서 경찰차를 빼려고 하는 모습은 얼핏 보면 물리력을 동반한 다수의 폭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일 뿐이다.

 

국가 폭력은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닌다. 지난 20세기에는 특별히 대규모의 국가 폭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이 만들어낸 킬링 필드, 남미 독재 정권들의 무차별 정치범 살해, 한국의 광주 항쟁 무력 진압 등이 국가 폭력의 극단적인 예들이다.

 

그러나 국가 폭력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인명 손실을 수반하거나 독재정권 하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민주국가의 형식을 갖춘 사회에서 악법으로 국민들의 권리 행사를 억압하고, 일방적인 정책 집행으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빼앗고, 정부 기관을 이용해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특정 집단에 이익을 주는 정책을 집행하는 것도 모두 국가 폭력의 예에 해당한다.

 

이런 교묘한 형태의 권력 남용과 국가 폭력은 대중을 호도할 수 있고 이에 저항하는 소수의 집단을 반국가 집단으로 매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그리고 이런 국가 폭력의 행사에는 항상 피해를 받는 많은 국민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국민들이 수용할 만한 수준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은 명백한 국가 폭력이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국민의 이익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해야 할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한 정책을 집행한 것은 합법성 여부를 떠나 정부의 비민주적 정책 집행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이 보장되는 민주국가에서 국민 대다수가 먹기를 거부하는 식품을 유통시켜 국민들에게 강제로 먹이겠다는 정책에 있다. 안전을 담보할 확실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식품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먹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 발표로 현 정부는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국가에서의 국가 폭력 사례하나를 추가했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합법적 권한을 악용해 국가 폭력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그리고 표면적으로 국민 의견 존중을 강조하며 뒤로는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집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교묘한 국가 폭력의 예다.

 

10%가 저항해도 직접 만나봐야, 하거늘 하물며 80%랴…

 

폭력이란 단어는 항상 파장을 불러온다. 누구도 자신이 폭력 가해자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현 상황에서 자신들을 피해자로 여기는 국민들은 대통령, 정부, 여당을 국가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민주국가에서 그것도 대다수 국민이 자신이 국가 폭력의 피해자라고 여긴다면 대통령, 정부, 여당 관계자 모두 자신들이 폭력의 가해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폭력은 피해자의 처지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촛불 집회로 돌아가 보자. 26일 밤을 넘기면서 진행된 50번째 촛불 집회는 부상자가 속출하고 일부 참가자들에 의한 기물 파손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경찰 버스를 끌어내는데 동참했고 날계란과 물병도 날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그리고 광화문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한 이유는 수입 고시 전날인 25일부터 재개된 경찰의 강경진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에 싸인 국민들의 온몸 저항을 시끄럽다고, 몸싸움이 있다고, 부상자가 생겼다고 폭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근본적 원인을 외면한 폭력에 대한 너무 안이하고 피상적인 접근이다. 

 

대통령, 정부, 그리고 여당은 자신들이 잘못한 일을 경찰과 촛불 시민들의 대결에 떠맡기고 있다. 50회의 촛불 집회로 지친 국민들과 경찰이 몸싸움을 통해 대리전을 치르도록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 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교묘한 국가 폭력의 또 다른 예다. 민주국가에서 공권력을 이용해 정부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들의 입을 강제적으로 막고 나아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고단수의 국가 폭력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민주국가의 대통령, 정부, 여당이라면 단지 10%의 국민이 정부 정책에 저항하더라도 그들이 50회의 촛불 집회를 진행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저항한다면 직접 그들과 대면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들 앞으로 나와 목소리 들어야

 

그런데 촛불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80% 국민의 반대를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들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대통령을 간절히 보기 원한다면 대통령은 그들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무서워할 것 없다. 그들은 이성적이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이고 물리력을 쓴다는 것이 그저 경찰 버스 끌고, 모래를 손으로 날라 토성도 아닌 토성 쌓고, 천 원씩 모아 날계란 사서 던지는 일밖에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경찰의 물대포를 겨우 우비 하나로 막으면서도 자신들이 빼낸 경찰차에 고립된 경찰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폭력 시위자로 매도하는데 열중하지 말고 대통령, 정부, 여당은 촛불 국민들도 놀랄 수준의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촛불 국민들의 저항을 계속 외면한다면 촛불은 잠시 사그라질 수는 있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촛불 집회#미국 쇠고기#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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