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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 태후가 신과 교감하자 세상이 요동친다. 원효대사는 화려한 헤드스핀을 선보인다. 흥법회에 모인 사람들은 그 유명한 대사의 몸짓에 열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화랑들은 동성의 뜨거운 사랑을 감추지 않고 여인들은 그들만의 재주를 뽐내며 서라벌을 들썩인다. 이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이야기인가? 심윤경 신작 소설 <서라벌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이야기를 놓고 보면 삼국유사를 떠올릴 수 있겠다. 사실이다. 서라벌의 풍경은 어디선가 들은 듯하다. 그런데 글자 사이로 스며든 기운은 낯설다. 과연 우리가 알던 신라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이런 것일까?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신라'는 정적으로 기억되었다. 이 땅 구석에 자리 잡아 웅크리고 있던 나라로 기억되던 곳이 신라였다.

 

그런데 심윤경이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적으로 남겨진 그들을 끄집어내 요란하고도 화려하게 춤을 출 기회를 주고 있다. 연작 소설의 첫 번째 '연제태후'는 이차돈으로 인해 불교가 신라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신선하게 움직인다. 왜 그런가. 연제태후가 황후 시절에 지증제와 교합례를 하는 것이나 신과 교감하는 것과 같은 장면들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종의 제사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겁게 진행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심윤경은 이것들을 생동감있게 그렸다. 왕과 태후가 서로를 찾는다. 그들을 받치고 있던 뱀 모양 제단은 무너지고 만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벽력같은 교성에 동해 바다의 용까지 잠에서 깨어날 정도로 요란하기만 하다. 이것은 풍성한 생명력으로 이어지고 세상은 풍년이 계속된다. 매일같이 암탉이 알을 다섯 개씩 낳는 일이 생기는 등 놀라운 일이 생기는데 심윤경은 이것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또 다른 소설 '천관사'에서 원효대사가 법흥회를 하는 장면은 어떤가. 원효대사가 대중을 향해 떠드는 장면은 고루하지 않고 참신하다. 여자를 말하며 몸짓을 흉내내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마임 같은 동작을 하기도 한다. 이어서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날름 몸을 뒤집더니 두 손으로 땅을 짚지 않고 머리로 버티며 다리를 가위처럼 엇갈려 팽이처럼 뱅글뱅글' 돈다.

 

그 뒤로 화랑과 낭주들이 화려한 몸재주와 육감적인 춤을 보이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는 동안에도 원효대사는 계속 돈다. '어찌나 빨리 돌아가는지 눈이 검은 띠처럼' 보일 정도다. 백성들이 환호하는 것은 또 어떤가.

 

심윤경은 '법흥회를 한다'는 그 말에 이렇듯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적인 것은 동적으로 변하여 호흡을 하는 듯 재빠르게 움직인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헤드스핀 하는 원효대사를 상상하고 그에 열광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쯤 되면 심윤경이 작가의 말에서 표현했듯 '선데이 서라벌'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거인을 왕으로 섬기고, 큰 제사에는 으레 당연하다는 듯 화끈한 섹스를 선보이는 것 하며 화랑들의 아찔한 사랑과 여자들의 은근한 몸짓까지 더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흥겹고도 자극적으로 신라인을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신라인과 교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서라벌 사람들>은 거인이 되려고 했던 욕망, 특별한 자리에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하고 싶어 하는 욕망, 성공을 위해 개인적인 것을 버려야 했던 욕망에 들끓었던 신라인을 그린다. 신의 나라로 자리하고 있던 그곳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신라'에 관해서라면 다들 '문자'로 말할 때에 심윤경은 소설로 '소통'하게 해준 셈이다.

 

화끈하게 재밌다. 정념이 넘치는 것 또한 재밌다.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을 보고 경악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재밌다. 살아있는 서라벌에 다녀온 듯 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심윤경의 <서라벌 사람들>, 그 힘이 예사롭지도 않다.


서라벌 사람들

심윤경 지음, 실천문학사(2008)


#심윤경#서라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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