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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정결, 우수함과 같은 낱말이 인종과 어우러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혼혈'이라는 말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단일민족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인종간 결합 그러니까 혼혈이라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 경계하는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에둘러 갈 필요 없이, 혼혈이라는 문제는 정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면서도 결코 사회 전면에서 논의되지 않는 것으로서 사실상 '뒷방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데, '뒷방이야기' 같은 취급을 받는 혼혈 문제는 2008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에둘러 가서도 안 되며 침묵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한국사회에서 혼혈은 더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미국인이며 혼혈이 아닌 앨런 지브가 혼혈에 대해 이토록 목에 힘을 주고 외치는 게 '단일 민족' 한국인에게는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 미안하게도 한국 역시 혼혈사회에 대해 침묵할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한 지 오래다. 당연히, 우리는 틈나는대로 이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하고 또 (혼혈 당사들에게서) 들어야 한다.

 

혼혈 문제를 공론화 해온 지 얼마 안 된 한국사회는 이제 이 문제를 일상화하는 게 중요하다. 실제 현실에서 겪는 복잡한 감정과 진솔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사회적 논의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계속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머리 속 생각과 현실 속 경험 간에 놓인 틈을 좁혀가야만 한다.

 

사실상 태생 자체부터 혼혈사회일 수밖에 없었던 미국 사회 단면을 보는 것은 이제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혼혈 파워>는 한국사회에서도 충분히 통용될만한 책이다. 다만, '종의 기원', '진화'와 같은 용어에 민감한 분들은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보자. 은연중 인류 자체가 혼혈을 통해 성장해 왔음을 말하는 점에 대해 좀더 귀를 기울여보자. 물론, 혼혈이라는 말이 종이 다른 개체 사이의 결합까지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혼혈은 더 강하고 더 매력적이다?

 

생물학자인 지은이는 혼혈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혼혈을 매우 기쁜 맘으로 바라본다. 어찌보면 뜻밖의 경우라고 보는 이를 위해서 옮긴이는 굳이 "그는 혼혈이 아니다"라고 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책을 읽다보면 혼혈에 관한 앨런 지브의 호감도를 금세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종 간 결혼에 담긴 이점을 찾아낼 수 있는 조각을 모두 내놓았다. 이런 것들이다. 좌우 균형미는 강한 활력과 매력과 관계있다. 높은 이질접합은 더 훌륭한 좌우균형으로 이어진다. 인종 간 짝짓기는 이질접합이 높은 자식을 낳는다." (<혼혈 파워>, 149)

 

여기서 말하는 이질접합이란, 동일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끼리 만나 결혼하는 것(동질접합)가 아닌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이질접합은 동질접합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근친상간과 전혀 다른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의 만남을 다룬다. 이질접합식으로 이루어지는 만남은 동질접합의 경우보다 더 좋은 유전자들을 부모 양쪽에게서 물려주고(물려줄 가능성이 높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도 뛰어난 다음 세대를 낳을 수 있는 뜻을 담고있다.

 

앨런 지브가 혼혈에 대해 느끼는 대표적인 호감도는 위와 같은 흐름에서 나온다. X염색체와 Y염색체가 만나 이루어내는 신비한 결합과 그 '열매'는 양쪽이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닐수록 좌우 균형미가 뛰어나서 더욱 매력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은이 책 부제로 '왜 혼혈인은 더 건강하고 더 매력적인가'(Why Interracial People are Healthier and More Attractive)로 정한 이유를 알 만하다.

 

"... 번식의 목적은 당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다. 유성생식을 할 경우 당신은 후손의 유전자 덩어리를 파트너와 사이좋게 나눠 가져야 한다. 당신의 유전자 반만이 당신의 자손에게 물려지는 것이다. 반면에 무성생식은 당신의 유전자를 몽땅 가진, 당신과 똑같은 복제를 낳는다. 그러나, 무성생식에 이런 큰 이점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섹스는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왜 그럴까? 거기도 한 가지 중대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섹스는 우리에게 단순히 번식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변이가 따르는 번식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이는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성공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 같은 책, 117~118

 

혼혈에 대한 사회 인식과 이중적 태도의 이면을 다룬 1장을 비롯해 2~4장(좌우 균형미, 이질접합, 인종간 짝짓기의 이점)을 보고 나면, 이제 우리는 5~7장에 걸쳐 혼혈의 매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은이가 준비한 여러 사례들을 보게 된다.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관점으로 분석한 지은이의 의견(혹은 주장)과 함께.

 

이 책을 읽게 될지 모를 독자들에게 몇 마디 하고 싶다. 우선, 이 책은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지은이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같이 적어놓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을 만한 이유를 찾자면 그건 학문적 성과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현실에 필요한 조언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자기 조카(여자)를 통해 혼혈에 관한 실제 사례를 경험한 옮긴이 윤재석은 우리에게 혼혈에 관한 몇 가지 사실과 조언을 던져준다. 한번 곱씹어보자. 아 참, 이 책이 주장하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으며 너무 화낼 필요도 없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엄연한 현실이 된 '뒷방이야기'를 욕 먹을 각오도 해가며 굳이 파헤치고 또 우리 사회에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썩 도움이 되는 책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결혼 9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이다. 그것도 농어촌으로 가면 세 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이다. 싫든 좋든 이제 우리 사회의 혼혈화를 막을 수 없게 됐다.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오는 처녀들은 먼 훗날 우리 사회를 '잡종강세'로 진화시킬 귀한 선조가 될 것이다. 비록 그들 스스로는 이처럼 중차대한 업적(?)을 이 땅에 남기게 되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갈테지만 말이다."(같은 책, 255~256)

덧붙이는 글 | <혼혈 파워> 앨런 지브 지음. 윤재석 옮김. 부글북스, 2006.
(원서) Breeding Between the Lines: Why Interracial People are Healthier and More Attractive(2006) by Alon Ziv


혼혈 파워 - 왜 그들이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운가

앨런 지브 지음, 윤재석 옮김, 부글북스(2006)


#혼혈 파워#앨런 지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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