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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응급환자가 헬기에 실리고 있다. 그나마 기상이 좋아 헬기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한 응급환자가 헬기에 실리고 있다. 그나마 기상이 좋아 헬기를 이용할 수 있었다. ⓒ 배상용
 기상이 나쁜 날은 경비정으로 육지에 후송된다. 육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5시간 정도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에게는 피를 말리는 오랜 시간이다.
기상이 나쁜 날은 경비정으로 육지에 후송된다. 육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5시간 정도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에게는 피를 말리는 오랜 시간이다. ⓒ 배상용

지난 22일, 한 어린 생명이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어린 소녀는 자신이 꿈꾸는 장밋빛 인생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혼수 상태에서 13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5월 21일 오후 8시 30분경 울릉도 G학원에서 급우들과 장난을 치며 놀던 A양이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10m 아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를 발견한 주민들은 A양을 급히 울릉의료원 응급실로 옮겼다.

 

병원은 '뇌출혈'이라며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강릉에 있는 동해해경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울릉도에는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 그러나 헬기 지원 요청 후 3시간여 만인 11시 30분 경에  울릉도 근방 상공에 나타난 해경 헬기는 "바람이 강해 착륙할 수 없다"며 되돌아갔다. 부모는 가는 호흡을 겨우 이어가며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로부터 해상의 바람이 약해지기를 기다린 지 5시간 만인 새벽 4시 30분 경 해경 헬기가 도착해 꺼져가는 생명을 태웠다. 그리고 1시간 후 어린 생명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수술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헬기 후송 도중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응급환자 수송업무, 해군에서 해경으로 넘어가

 

동해해경-해군6전단 양해각서 요지

 

헬기장이 없는 동해해경이 해군 6전단이 관리하는 울릉도 해군 헬기 기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신 울릉도 환자 이송 업무는 동해해경이 맡는다는 게 주 내용이다.

 

해군6전단 정훈과장의 말에 따르면 헬기 전력 운용의 공백(울릉 주민 환자 긴급 후송을 뜻함)을 종식하고 본연의 임무(자주 국방)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만일 이날 동해 해경이 아닌 해군 6전단이 응급수송 헬기를 보냈다면 아이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해군이 보유한 헬기는 상대적으로 성능이 뛰어나 악천후라도 환자를 수송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더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군이 아닌 해경에 헬기 지원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십수년 동안 울릉도의 응급환자 수송을 전담하다시피했던 해군 6전단은 지난해 5월 동해해경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응급환자수송 업무를 동해 해경에 넘겼다.

 

좋은 헬기를 다량 보유한 정규 국군부대인 해군 6전단에 비해 동해해경에 소속된 헬기는 기껏해야 3대. 그 중에서도 야간에 운행할 수 있는 헬기는 야간항법장치가 있는 팬더 헬기 1대뿐이다. 그것도 1년 중 50일 정도는 정비기간이어서 아예 운항조차 할 수 없다.

 

만일 헬기 정비 기간 동안 야간에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생긴다면 그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죽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동해에 주둔하고 있는 군함을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 울릉도에 입항하여 내륙으로 가려면 최소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기상이 나쁜 날 응급 환자가 생기면 울릉도 주민들은 동해 해경이 아니라 해군 6전단에 헬기 지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해군 6전단은 업무가 해경으로 넘어갔다며 "해경에 전화하라"고 한다(해군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헬기 지원 요청 전화를 40~50회 받았다고 한다).

 

응급환자 수송은 국방의 임무와 배치되나

 

해군 6전단은 헬기 전력 운용의 공백을 막기 위해 환자 이송  업무를 동해 해경에 넘겼다고 한다. 환자 후송을 하는 것이 국방의 임무에 허점이 된다는 말인가? 군인의 임무가 무엇인가?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것 아닌가?

 

매년 수십회 울릉도의 응급 환자를 실어 나르던 해군 6전단은 작년 5월 동해해경과 양해각서를 맺은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응급 환자를 수송한 적이 없다.

 

벌써 올해만 해도 9명의 울릉도 응급환자가 헬기를 기다리다 사망 혹은 후송 도중 사망했다. 헬기만 제 때 왔다면 큰 병원으로 후송해 살릴 수도 있었던 환자들이었다. 지난 십수년 사이에 한두 차례 정도 악천후 속에서 미군 헬기가 헬기장도 아닌 방파제에 내려 응급 환자를 후송해 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난 그 광경을 보면서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을릉도 주민들이 이런 헬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정부는 응급환자 수송을 위해 헬기를 운용할 수 있도록 을릉도에 특단의 지원을 해주든가, 그것이 힘들다면 이번 양해각서를 재검토해 기존처럼 해군 6전단이 응급수송업무를 계속 맡든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가 아닌가.

 

 이런 헬기가 울릉도에도 한 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에게는 생명줄이다.
이런 헬기가 울릉도에도 한 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에게는 생명줄이다. ⓒ 배상용

덧붙이는 글 | 배상용 기자는 울릉도관광정보사이트<울릉도닷컴>현지 운영자이자 울릉군의회 의원,울릉군발전연구소 소장입니다


#울릉도#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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