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 오는 날. 엄마는 문 밖에 나서기가 싫습니다. 챙겨야 할 짐도 많고, 괜히 비를 맞았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손해이기 때문이지요.

아빠가 쉬는 날이면 집안에 갇혀서 장난감이나 그림책으로 시간을 때우기가 더 어렵습니다. 물감 놀이나 리듬 악기만 꺼내줘도 몇 시간은 실컷 놀 수 있지만, 아빠가 회사에 가지 않는 날에는 아이도 괜히 기대감을 갖고 '오늘은 또 어디에 가나?'하고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쿠하에게 날씨와 외출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제 우산부터 챙깁니다만, 아이를 데리고 비를 피해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술관은 오고가는 시간에 비해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서 마땅찮고, 지하철과 연결돼 있는 실내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기에 쿠하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간. 강동어린이회관 측에서 준비해 주는 재료로 가면과 왕관 등 여러가지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간. 강동어린이회관 측에서 준비해 주는 재료로 가면과 왕관 등 여러가지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강동어린이회관의 화장실은 어린이 중심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어른들이 쓸 수 있는 칸은 달랑 한 칸! 개수대 위치도 아이들이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강동어린이회관의 화장실은 어린이 중심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어른들이 쓸 수 있는 칸은 달랑 한 칸! 개수대 위치도 아이들이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야외 놀이가 어려운 날에는 서울시 강동구청이 운영하는 강동어린이회관이 딱입니다(www.gdkids.or.kr).

이곳은 국내 최초로 지자체에서 설립한 어린이 전용 보육 및 놀이 공간입니다. 구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이용요금이 저렴하지요. 아이는 2천 원, 어른은 3천 원 입니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이면 하루 종일 아이를 심심하지 않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따라 들어갈 필요가 없는 아이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며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시설을 갖춘 사설 놀이터에 가서 3시간 정도 놀다오려면 아이 1만 원에 동반 어른 8천 원 정도가 필요하고, 입장하지 않는 가족은 딱히 기다릴 만한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아 곤란했던 기억이 나서 마음에 쏙 듭니다.

정원제 입장, 예약 필수 '동동 놀이 체험관'

 입 속으로 들어가면 까맣게 썩은 이도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노란 구멍은 좁다란 식도입니다.
 입 속으로 들어가면 까맣게 썩은 이도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노란 구멍은 좁다란 식도입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꼬불꼬불 장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똥 덩어리들이 기다립니다.
 꼬불꼬불 장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똥 덩어리들이 기다립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원래 예약(동동 놀이 체험관의 1회 입장 정원은 55명)을 해야 입장할 수 있는데,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인지 다행히 여석이 있었습니다. 24개월 아기부터 7살까지의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동동 놀이 체험관'은 몸 속 여행, 우리 집, 만들기 놀이터 등 크게 3개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큰 코 안에 공을 집어넣으면 재채기를 하는데, 쿠하는 재채기 소리에 놀라서 엄마 뒤로 숨어 버립니다. 입 안으로 들어가 썩은 이를 보고, 좁다란 식도를 지나 위에 도착하면 작은 공들이 소화를 돕는다는 걸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위를 지나 꼬불꼬불 장으로 들어가면 얼굴을 넣을 수 있는 똥 모형들이 널려 있습니다.

쿠하가 좋아하는 그림책 <우리 몸의 구멍>을 자주 읽어둔 게 다행입니다. 우리 몸의 구멍들이 하는 일이 다 다르다는 것, 특히 몸 속 신체 기능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몸 속 여행을 하면서 줄곧 '구멍' 책에서 본 내용들을 읊어줍니다.  

 아이들 키에 맞춘 주방가구들이 쿠하를 들뜨게 합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를 끓여주는 쿠하.
 아이들 키에 맞춘 주방가구들이 쿠하를 들뜨게 합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를 끓여주는 쿠하.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집처럼 꾸며진 코너에서 쿠하는 나무로 만든 주방기구에 완전히 '꽂혔습니다'. 아이들 키에 높이를 맞춰 제작한 싱크대와 냉장고, 전자레인지까지 집안에서 엄마만 쓸 수 있던 살림을 마음껏 만질 수 있습니다. 냉동실에 들어있는 케이크를 꺼내기 위해 까치발을 세우고, 아직은 높은 전자레인지를 쓰기 위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는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납니다.

'딸아, 얼른 자라서 엄마 대신 진짜 가스레인지에 국도 끓이고 설거지도 좀 도와다오!!!'

여자아이들에게 단연 인기 있는 주방이 남자아이들에겐 흥미 제로입니다. 한참을 지켜봤는데도 주방기구에 달려드는 남자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간 날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놀이에도 집에서 자주 본 성역할이 이미 세뇌되어 버린 모양입니다.

심지어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가져다 주는 장난감 연어와 토마토를 소파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개그맨 정형돈과 일본 미녀 사오리가 부부 역할을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웃지 못할 풍경이었습니다.  

 파란 배경화면 앞에 서 있으면 화면에 뽀로로와 함께 눈 덮인 숲속 마을에 있을 수 있습니다.
 파란 배경화면 앞에 서 있으면 화면에 뽀로로와 함께 눈 덮인 숲속 마을에 있을 수 있습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에 시작하는 팀까지 하루 4팀이 회당 70분씩 사용할 수 있는 동동 놀이 체험관에서의 자유놀이 시간이 끝나면, 피노키오 방송국에 들러 카메라의 여러 기능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기 모습이 대형 화면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들뜨기 시작합니다. 파란색 배경 벽 앞에 서 있으면 뽀로로의 눈 덮인 마을에 들어가 있는 화면으로 바뀌는데, 쿠하는 뽀로로 마을에 자기가 들어가 있는 화면을 보자 발을 동동 구르며 흥분합니다.

"프로그램 확인 후, 시간 맞춰 가는 게 좋아요"

 비 오는 날, '하늘정원'에는 갈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도심 속 녹색 공간 입니다.
 비 오는 날, '하늘정원'에는 갈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도심 속 녹색 공간 입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갑자기 찾아간 길이라 누리지 못한 것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요리교실' 만이 아닙니다. 어린이 뮤지컬 공연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누리 홀'은 어린이 전용 극장으로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을 볼 수 있고, 대관해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또, 비가 와서 '하늘 정원'도 실내에서 구경만 하고 내려왔습니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어둔 옥상 정원은 날씨 좋은 날 꽃구경 하러 가고 싶은 곳입니다.

강동구청과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은 '동동 레코텍'도 이용해 볼 만합니다. 일정한 금액을 내고 장난감을 대여하는 일종의 장난감 도서관인데요, 잠깐 가지고 놀다가 흥미를 잃어버리는 게 태반인 장난감을 매번 사주는 것보다는 대여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둘러보면서 '우리 지역에는 왜 이런 시설이 없을까, 세금은 걷어다 어디에 쓰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주민들이 저렴한 값에 이용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시설에 투명하게 사용한다면 세금을 조금 더 걷어도 불만 없이 낼 것입니다.

괜히 멀쩡한 보도 블럭 다시 까는 돈으로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강동어린이회관 같은 시설 좀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티 나는 사업 벌이기 좋아하는 정치인들께서 30대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서민 부모들이 부담없이 찾아갈 수 있는 교육적인 놀이 시설을 팍팍 '건립'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쿠하#걷기#몸#강동어린이회관#세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