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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자르다가 전기톱에 손가락 두 개를 잃어버린 릭. 병원에 달려가니 수술비로 중지 6만 달러, 약지 1만2천 달러를 내놓으라고 한다. 도합 7만2천 달러. 하지만 릭은 의료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돈도 넉넉지 않다. 결국 그는 중지를 버리고 약지만 붙이기로 결정한다.

시속 45마일로 자동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당한 로라 버넘. 사고 당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수술 후 보험회사 고지서를 보니, 앰뷸런스 이용료가 추가로 청구되었다. 사고 당시 '사전승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환자로 들끓는 초강대국, 미국

'사고가 났는데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고, 앰뷸런스 이용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픽션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도대체 지금 미국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마이클 무어’에 따르면 릭처럼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4800만 명이나 된다. 전체 인구의 20% 규모다. 이 가운데 1만8천명이 해마다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죽는다.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된 2억5천만 명의 사람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트레이시는 골수 이식자를 찾았지만 보험회사가 반대하는 바람에 수술도 하지 못하고 결국 죽었다. 덕 노우의 딸은 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보험사의 반대로 한쪽 귀만 수술을 하게 됐다. 이들이 제한된 수술을 받았던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위험하기 때문에(달리 말하면 수술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또는 애초에 보험약관에 보장되어 있지 않은 질병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한국사회

이것은 지금 미국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료산업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초래할 한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오늘 우리 주변에 병원에 못가서 죽었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도입되기 이전, 한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못했다. 돈 없는 서민들은 질병에 고통 받고, 의사가 개업 후 2-3년 안에 빌딩 하나 못 올리면 ‘바보’라고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랬던 한국이 지금은 미국보다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한 국가의 국내총생산이나 국민 총소득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다. 쿠바나 캐나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수준은 국가의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의료가 공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한국에서는 ‘의료산업’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2004년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에서 의료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국가의 경우 평균 9%대이며 미국은 15.3%에 이른다. 한국은 2004년을 기준으로 5.6%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부분의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보건의료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의료산업화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는 의료산업분야를 대선 공약인 7%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한 잠재적 성장 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의료보험민영화 추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근거는 다양하다. 이 같은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의료 산업화가 경쟁력을 높이고 의료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노령 인구 증가로 인한 재정적자를 줄이고, 고용창출과 의료경쟁력 확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의료분야를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장원리에 맡겨야 경쟁이 되고 서비스의 질도 좋아지고 가격도 내려갈 것이며, 비싸게 받으면 환자들이 안 갈 테니 적정 가격이 형성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이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은 경제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와 경쟁과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포섭된 결과물이다. 예컨대 의료보험의 재정손실을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의료보험료를 올릴 수도 있고, 정부의 지출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복지부문의 정부 지출이 OECD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면서도,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시장원리에 의료분야를 맡겨야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명목은 질 높은 서비스 제공과 소비자의 권익 보호라지만, 그 결과가 바로 마이클 무어가 말하는 미국의 현재인 것이다. 상위 10%의 선택을 위해 나머지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 할 권리를 포기하는 꼴이다.

요컨대 의료보험민영화 추진의 본질적인 목적은 국가의 ‘경제성장’에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제 거리 중 하나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다수가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을 때 이미 예고되었던 결과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서

현재 이명박 정부는 경쟁과 자율성의 논리를 의료, 복지, 교육, 문화 각 영역으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불평등’ 역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문화 산업 내 대부분의 일자리는 문화 산물의 생산과 분배에서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 대중들에게 제공 되는 대부분의 문화적 생산물은 소수의 거대 기업들에 의해 조직되고 통제 된다”는 ‘하버트 쉴러’의 말처럼, 수익창출이 유리한 상업적 문화가 언제부턴가 유령처럼 우리주변을 맴돌고 있다.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던 인문학의 위기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현재 들어서고 있는 문화적 시설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철저하게 분배되어 있다. 건대 입구의 ‘스타시티’와 그 옆에 줄줄이 들어선 영화관, 음식점, 문화센터 등을 같은 지역 내의 임대아파트 단지와 비교해보라. ‘시장원리’가 문화의 형식과 가치를 결정한다.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를 통해 의료보험의 문제만을 짚었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하게 될 불평등의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질 예정이다. 영화 속 대부분의 가난한 서민들이 의료혜택을 못 받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앞으로는 가진 자 만이 즐길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더욱더 발전할 것이다. 결국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의료부분과 문화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 같은 논리 앞에서 앞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질 선택권 역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앞으로 우리들의 권리는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대안적인 경제성장 모델과 국가에 역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문화적불평등#식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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