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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으세요"  그린닥터스 의료단이 외상을 방치해 농양으로 발전한 한 환자의 상처부위에서 고름을 빼내고 있다.
"조금만 참으세요" 그린닥터스 의료단이 외상을 방치해 농양으로 발전한 한 환자의 상처부위에서 고름을 빼내고 있다. ⓒ 정근

안녕하세요. 미얀마 의료단입니다.

미얀마에서 3일째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도착했으니 말입니다.

미얀마의 온 시내가 깜깜합니다. 그동안 메일을 전송하던 피시방도 전기가 끊어졌다가 한참 밖에서 기다리던 중에 겨우 재가동되어 이번 메일로 소식을 보냅니다. 오늘(5월 11일)은 미얀마에서 선거를 치르는 날입니다. 전국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수도 양곤은 나중에 한다고 합니다. 정권 연장 관련 국민투표인 것 같습니다.

이곳 미얀마는 너무 덥습니다. 땀이 비 오듯이 흐릅니다. 가만히 있어도 등에서 땀이 고이고, 입었던 옷이 금방 땀에 젖어 흥건해집니다. 진료 중인 우리 의료진의 몸 구석구석에서는 연신 땀이 흘러내립니다.

진료하기가 하도 힘들어서 발전기를 돌려서 선풍기를 켰는데, 곧바로 꺼집니다. 선풍기의 용량이 발전기에 비해 커서 그런가 봅니다. 전기가 없으니 에어컨, 선풍기도 가동되지 않습니다. 편한 생활하려고 이곳 미얀마로 온 것은 아니지만 정말 힘듭니다. 진료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온통 땀범벅이 됩니다.

오늘은 양곤의 북쪽에 위치한 키아투마티란을 다시 찾았습니다. 어제 오른쪽 다리의 농양 제거술을 받았던 환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우리 의료진은 그에게 "내일 다시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로 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외과 김창수 선생의 얼굴과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옆에서 아무리 닦아줘도 흐르는 땀으로 인해 수술하기가 곤란할 정도입니다.

오늘도 4명의 환자를 수술했습니다. 목에 농양에 있는 어린이에게 배농술을 통해 고름을 제거했습니다. 못에 찔린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아 발에 농양이 생긴 사람도 치료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쓰러지는 나무에 발등이 깨져 봉합수술을 받은 사람과 외상을 방치해 생긴 고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습니다. 응급처치로 끓인 물로 소독제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마취 후에도 통증을 잘 참아내, 그마나 우리 의료진이 진료를 수월하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순진하고, 가슴 따뜻한 미얀마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외상, 피부병, 두통, 설사, 고열, 말라리아, 눈병 등을 호소하는 응급질환자들이 수없이 의료진을 찾아왔습니다. 진료 중에 지역 보안 책임자가 찾아왔습니다. 격려차 왔습니다. 미얀마 입국 이후 우리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오카다라는 지역 보안책임자였습니다. 보안책임자는 "이렇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주민들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 책임자도 몸이 아파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우대를 받고 있는 고위직 승려도 치료를 받으러 와서 "고맙다"며 격려했습니다.

이들 모두 우리와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얀마인 의사처럼 한국 의사들에게 고마워하고, 의료진의 활동에 최대한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사관 직원도 찾아와서 의료진의 안전을 걱정을 하면서도 이곳에서 봉사하는 동안 여러 가지 주의사항 등을 안내하는 등 친절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는데 그린닥터스가 기적적으로 미얀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사람들은 친구처럼 자신들을 치료하는 그린닥터스의 모습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럴 때 봉사자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립니다. 미얀마의 현지 한국인들이 적극 나서 공항의 세관 통관을 도와주었고, 의료봉사 현장에서는 통역과 함께 물과 음식 등을 지원해줘 의료진에게 큰 힘을 보태주고 있습니다.

사이클론이 오기 전에 미얀마에서는 한국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주몽>이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이 주연배우인 송일국씨를 비롯해서 드라마 출연한 한국인 연기자들에 대한 신상정보에 꽤 밝다는 게 통역의 귀띔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들을 더욱 친숙하게 대해주었습니다. 한류문화와 함께 한류스타들의 국위선양을 보고, 우리 의료진도 주몽의 개척정신으로 이곳에서 최상의 봉사를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경과 민족, 정치, 이념 종교를 초월한 사랑'을 모토로 한 그린닥터스 정신이 이곳 미얀마에 뿌리내려 한국과 미얀마간 우호증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님도 아프세요?"  그린닥터스 의료단의 진료실에는 나이 어린 승려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어 새삼 미얀마가 불고국가임을 생기시켜준다
"스님도 아프세요?" 그린닥터스 의료단의 진료실에는 나이 어린 승려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어 새삼 미얀마가 불고국가임을 생기시켜준다 ⓒ 정근

이번 우리 의료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하는 사람은 외과의 김창수 선생과 북한 개성병원의 김정용 의무원장입니다. 외상으로 인한 농양환자가 많아서 김창수 선생은 무더위 속에 수술하느라 이중고를 겪으면서 이번 의료봉사를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김정용 원장은 이번 의료단에 합류하기 위해 개성에서 달려왔습니다. 열대의학을 전공한 김 원장은 이곳에서 말라리아 등 풍토병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말라리아 환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동의의료원 안유정 과장은 소아과를 보면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여성들이 안 과장에게 몰려드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여성 전문으로 자리 잡은 셈이죠. 그리고 서면 메디칼정근안과의 송부근 검안부장과 행정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정종열군도 의료단 지원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정미혜 간호사는 약국을 운영하고(?) 있고, 김인아씨와 설한 선생은 미얀마 사람들과의 빈틈없는 통역으로 의료진을 든든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현지 교민으로서 K 선교사와 그 부인은 모든 행정지원을 총괄하면서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김모 선생과 그의 부인, C 선교사, 미얀마인 의사 등이 모두 협력해 미얀마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적지 않은 미얀마 사람들이 우리를 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온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 달 지난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픈 환자가 회복돼 좋아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힘을 내고 있습니다.

진료 장소로 가는 도로에는 군인들이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100m 이상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가까이 가 확인해 보니 석유 배급을 기다리는 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1리터짜리 페트병을 들고 있습니다. 모두 질서정연하게 서있어 혼란은 없었습니다.

전깃줄은 모두 늘어져서 도로 위에 드러누워 있어 전기가 복구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가로수의 나무는 모두 국가 소유여서, 쓰러져 넘어진 나무를 아무도 가져가지 않습니다. 여기는 별다른 연료가 없어서 모두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 밥을 짓는다고 합니다. 땔감용으로 나무가 필요한데도 어느 누구도 도로가에 쓰러진 나무를 가져가지 않을 정도로 치안을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이클론이 할킨 생채기  미얀마를 덮친 사이클론은 수십년생 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사이클론이 할킨 생채기 미얀마를 덮친 사이클론은 수십년생 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 정근

진료 장소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예상도 훨씬 더 많았습니다. 어제 진료로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병을 앓고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을 그들이니 우리들이 몹시 반가웠을 것입니다. 이날 모두 141명을 진료하였습니다. 내과 43명, 외과 13명(수술 5명), 안과 46명, 소아과 14명, 여성과 19명, 피부과 6명 등을 진료했습니다.

한 사람당 진료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걸립니다. 모두 일일이 의사 손이 가야 하는 환자들인데다, 통역으로 진료가 이루어지다보니 그런 것입니다. 통역을 통하지만 의사와 환자는 이미 친구임을 서로 느낍니다. 승려도, 환자도, 주민들도, 의사도, 한국인이나 미얀마 사람이나 모두 하나 되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치료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의료진은 북한 개성병원을 떠올리며 미얀마사람들의 진료에 더욱 매진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성(姓)이 없고 이름만 있다고 합니다. 모계사회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각에서는 여성부 장관이 힘이 세다고 합니다. 또 여자가 남자를 먹여 살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미얀마 여자들은 한국 남자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곳 미얀마에서는 '한국은 남자가 여자를 먹여 살린다'고 알려져 있어 한국의 남자들을 최고로 친답니다.

남자들은 군인이나 승려, 해양선원이 되길 원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가 봅니다. 한달에 한국 돈 30만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 것이 큰 희망이랍니다. 여자들은 간호사를 많이 희망합니다. 외국에 나가 간호사로 근무하면 한달에 미화 300달러를 받는답니다. 여기는 최고급의 교수가 한달 10만짯(100달러)를 받습니다. 월급이 아주 적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는 미얀마에서의 생활.

앞으로 1주일이 중요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많이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대로 미얀마의 현지 한국인들은 목사들을 중심으로 구호활동에 적극 뛰어들었지만, 본국에서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고 있습니다. 통신이 안 되니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 의료팀에 모두 응원을 하고 있다고 하니 힘이 절로 납니다. 농양을 제때 치료하지 않고 그냥두면 패혈증으로 죽게 됩니다. 의료지원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일은 다른 마을로 갑니다. 오늘 지역 보안책임자인 오카다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습니다. 허가가 난 곳에서 미얀마 의사와 같이 진료하면 법적인 문제가 없어 진료 가능합니다. 우리 의료진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너무 좋습니다. 그린닥터스 미얀마 긴급의료단과 현지의 한국인들이 지금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앞으로 한국과 미얀마의 우호증진에 소중한 거름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근 그린닥터스 미얀마 긴급의료단 단장이 미얀마 현지에서 보내온 것입니다.



#사이클론#의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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