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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할머니의 기억의 정확성

 

.. 문옥주 할머니의 기억의 정확성에 다시 한 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모리카와 마치코/김정성 옮김-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아름다운사람들,2005) 21쪽

 

 “기억(記憶)의 정확성(正確性)에”은 “기억이 또렷함에”나 “또렷하게 떠올림에”로 다듬어 봅니다. ‘감동(感動)하지’는 ‘뭉클하지’나 ‘놀라지’로 손봅니다.

 

 ┌ 할머니의 기억의 정확성에

 │

 │→ 할머니 기억이 얼마나 꼼꼼한지

 │→ 할머니가 얼마나 기억을 잘하시는지

 │→ 할머니가 얼마나 또렷이 떠올리시는지

 │→ 할머니가 그때 일을 참 잘 생각해 내셔서

 │→ 할머니가 옛날 일을 아주 환하게 떠올리셔서

 └ …

 

 “할머니의 기억의 정확성”은 ‘-의’를 두 번 잇달아 쓴 보기입니다. 이 말이 나온 까닭을 살피면, 한국사람이 쓴 책이 아닌 일본사람이 쓴 책을 옮기다가 일본책에 나온 그대로를 옮기느라 이렇게 된 듯한데요, 번역을 하는 분들이 ‘한국말과 일본말이 어떻게 다른지’, 또 ‘한국말 문화와 일본말 문화는 어떻게 다른지’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지 싶어요.

 

 우리 말에서는 ‘할머니’나 ‘기억’을 임자말을 삼아서 뒤에 ‘-이/-가’ 같은 토씨를 붙입니다. 그래, “할머니 기억이”나 “할머니가 기억을”처럼 적어야 알맞아요.

 

 토씨 ‘-의’를 잘못 쓰는 일이 워낙 잦기 때문에 두 번이나 세 번 겹쳐서 잘못 쓰는 일을 더러 봅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이런 잘못이 많이 줄었습니다. 《우리 글 바로쓰기》를 펴낸 이오덕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잘못된 일본 말투나 우리가 일제식민지를 거치며 알게 모르게 길들고 물든 말투를 비판하고 바로잡자고 애쓰고 외치고 이야기를 나눈 덕분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말과 글을 올바르게 적으려고 애쓰는 사람보다는 말과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분들이 아직은 훨씬 많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만큼 우리 말투와 말씨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대로 우리 말과 글에 담깁니다. 지금 우리 삶이며 사회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때 영향에다가 미국 물질문명을 중심으로 해서 서양 문물이 어마어마하게 스며들거나 파고들었어요. 우리가 쓰는 말이 한국말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 우리 문화와 넋을 담은 한국말인지 헤아리기 힘든 판입니다.

 

 

ㄴ. 우리의 ‘떠남’의 의미

 

.. 화천 형제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축복은 나와 남편을 변화시켜 갔고, 해마다 우리의 ‘떠남’의 의미를 새롭게 해 주었다 ..  《김용희-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샨티,2004) 37쪽

 

 “화천 형제들을 통(通)해”는 “화천 형제들을 만나며”나 “화천 형제들과 어울리면서”로 다듬습니다. “우리에게 전(傳)해지는”은 “우리에게 다가오는”이나 “우리가 건네받는”으로 다듬고요. “나와 남편을 변화(變化)시켜 갔고”는 “나와 남편을 달라지게 했고”로 고쳐쓰면 됩니다.

 

 ┌ 우리의 ‘떠남’의 의미

 │

 │(1)→ 우리에게 ‘떠남’이라는 뜻

 │(2)→ 우리가 ‘떠나온’ 뜻

 │(3)→ 우리가 ‘떠난’ 뜻

 └ …

 

 뜻이나 느낌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름씨 꼴로 고치곤 합니다. 이때 토씨를 얄궂게 붙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어야 합니다. ‘떠남’이라는 말이 그럴싸하고 그윽하다고 한다면, 앞뒤에 붙는 토씨도 그럴싸하고 그윽하게 붙여 주어야지요. 토씨는 얄궂게 붙이면서 말멋만 부리면 반갑지 않습니다.

 

 말은 수수하게 하되, 말뜻을 깊게 하면 좋겠습니다. 말껍데기는 그럴싸하지만, 말속은 텅 비게 된다면, 이보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일도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토씨 ‘-의’#우리말#우리 말#-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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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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