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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77.6%는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을 원한다(5월 7일 통합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

 

이명박 대통령은 7일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즉각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이라는 전제가 표현되지만 않았을 뿐,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나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발언과 동일하다.

 

강 대표는 7일 국회 교섭단체연설을 통해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재협상이 아닌 '재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 했고, 정 장관도 7일 국회 청문회에서 "재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앞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국민과 대통령, 국민과 정부, 국민과 여당이 딴 길을 가고 있다. 국민은 재협상을 원하고,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재협상은 없다'고 한다. 다만 나중에 광우병이 발생하면 그때는 '협상'에 상관없이 수입중단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 간단한 해법이 있다. '재협상'이 싫다면 '추가협상'을 해라! 불과 1년 전 한미FTA협상의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재협상 없다던 한미FTA, 추가협상 끝 타결

 

2007년 4월 2일 한미FTA가 공식타결됐다. 그때쯤 미 의회는 행정부에 '신통상정책'을 요구했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5월 10일 신통상정책(New Trade Policy)에 대해 합의했다. 신통상정책은 최초로 무역협정 상대국에게 노동, 환경 등과 관련한 국제적 기준의 준수를 FTA 상대국에게 요구토록 했다. 따라서 신통상정책은 정책서문에서 "현재 진행중인 FTA 협정문은 미국 무역정책을 근본적으로 선회시키는 이 정책에 따라 수정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때쯤 국내 언론에는 한미FTA협상에 대한 미국의 재협상 요구가 있을 거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당시 김종훈 수석대표는 "재협상은 절대 불가"라고 공언했다. 6월 16일 미국은 신통상정책을 구체적인 협정문 형태로 정리하여 우리 측에 추가협의를 요청했다. 이때부터 정부는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협상은 불가능하지만 추가협의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식이었다. 

 

정부는 6월 19일 관계부처장관회의를 개최하고 미 측의 요구를 수용키로 했다. 정부의 변명이 일품이었다. 이번 협상은 추가적으로 진행되는 양국간 논의로 '재협상'을 뜻하는 'renegotiation'이 아니라 '명확화, 명료화'를 뜻하는 'clarification(추가협의)'라고 했다. 하지만 이건 국내용 '말장난'에 불과했다. 

 

6월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는 두 차례의 추가협상 끝에 6월 29일 한미FTA협상은 최종타결됐다. 정부는 일관되게 '추가협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추가협상'이라 규정했다. 노동, 환경, 의약품 등 7개 분야에 대한 협정문의 수정이 있었고, 그것도 미국 쪽의 신통상정책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물론 정부는 끝끝내 '추가협의'라고 했다. 하지만 분명 '추가협상'이었다.

 

그래서 '추가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정 안되면 '추가협의'라도 해라!

 

근거는 이렇다.

 

첫째, 2007년 6월 한미FTA협정에 대한 추가협상이 가능했던 근거는 미 정부와 의회 간의 합의에 근거한 신통상정책에 있었다. 우리도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식품안전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근거로 추가협상에 나서면 된다. 당시 정부는 '추가협의'의 근거로 '미국의 달라진 통상환경'을 들었다.  우리의 쇠고기 통상환경은 더더욱 달라졌다. 

 

둘째, 정부의 표현대로 '추가협의'라 하더라도 협상내용에 대한 변경 또는 추가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한미 FTA '추가협의' 당시 정부발표문에 의하면 '추가협의'는 '협정문의 용어와 표현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확보하고 명료성을 강화하는 작업(2007. 6. 15 외교통상부 보도자료)' 정도였다. 

 

하지만 협상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노동환경분야에서 일반분쟁해결절차 적용규정이 삽입되고, 복제약 시판허가 특허연계 이행의무 위반 시 18개월의 유예기간이 도입됐다. 또 필수적 안보예외조항 원용 시 ISD 예외가 적용되고, 정부조달에 있어 노동법령 준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 등이 추가됐다. 원협정문의 명백한 '변경'이었다. 

 

왜 정부가 나서서 재협상 불가를 외치나

 

어느 국민도 미국 쇠고기의 완전한 수입금지를 바라지는 않는다. 국민들의 요구는 '우리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철저히 위험을 관리하고 확인하고 예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소의 연령 표시의무 부여, 광우병 발생 시 수입중단조치권한 확보, 한국의 도축장 검사권한 확보, 동물성 사료 강화조치 발효 후 연령제한의 단계적 완화' 등 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협의'건 '추가협상'이건 하면 되는 것이다. 왜 정부가 나서서 '재협상'은 없다고 발끈하고 있는가? 

 

쇠고기협상의 본체인 한미FTA협정에 대해서도 이미 '재협상'이 있었다. 그때는 미국이 요구했고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고 강변하다 '추가협의'라는 이름으로 구렁이 담 넘 듯했다.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아닌 우리 정부가 나서서 "재협상은 없다"고 얘기한다. 

 

'전략동맹'의 핵심 내용으로 '신뢰'를 들고 있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진정한 동맹이라면 솔직하게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추가협상을 요청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예를 교훈삼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4월 27일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이크 조한스 미 농무부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현행 '20개월령 미만'에서 OIE 기준인 '30개월령 미만'으로 완화하라고 요구했다. 우리와 똑같은 형편이었다.

 

이때  마쓰오카 토시가츠 일본 농림수산성장관은 "지금은 현행 기준이 준수되어, 식품의 안전에 대해서 일본 국민의 납득을 얻는 것이 더 큰 일"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이 때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미국 육류수출협회는 "무리하게 문호를 비틀어 열어도, 일본의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면서, 미국 농무부에 "일본이 요구하는 식육처리시설의 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것이 일본과 우리의 차이다.


#한미FTA#미국 쇠고기#선결조건#추가협의#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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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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