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서울 A 대학 홈페이지에 '성화 봉송에 참여한 중국인 유학생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성화 봉송' 폭력시위 사태 이후,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듯 "일단 같은 중국인으로서 일부 중국인들이 폭행한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한다"는 내용으로 포문을 열었다.  

"일부 티베트인을 폭행한 중국인에 대해서는 저희도 분노를 느끼고요, 그들 때문에 중국인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쓰일까 걱정입니다."

글을 올린 중국인 유학생은 "그러나 한국에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가 당한 부분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성난 한국 사람들... 인터넷 실명공개까지 이어져

한국에서 공부 중인 중국인 유학생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27일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 과정에서 일어난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의 과격·폭력시위를 두고 누리꾼들과 시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기 때문. 심지어는 온라인상에서 시위 가담 중국인 유학생 실명·연락처 공개 등의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을 바라보는 한국 학생들의 시선도 따갑다. 경희대 재학 중인 김아무개(23)씨는 "시위가 있은 뒤 중국인 유학생들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폭력 시위에 가담을 했든 안했든 전체 중국인 유학생의 이미지가 매우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국 여론의 매서운 질책에 대해 당사자인 중국인 유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30일 오후 중국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서울의 한 대학을 찾았다. 올림픽 공원에서 시청 앞 시위까지 참가했다는 왕아무개(23)씨를 만나 90여분 동안의 긴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이다.

 '성화봉송' 현장에 참여한 중국인 유학생과의 인터뷰. 현재 국내 여론을 감안하여 뒷 모습으로 처리했습니다.
'성화봉송' 현장에 참여한 중국인 유학생과의 인터뷰. 현재 국내 여론을 감안하여 뒷 모습으로 처리했습니다. ⓒ 송주민

- 행사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국가적으로 경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동료 유학생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참여했다. 우리 학교에서만 약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동참해 목소리를 보탰다."

- '성화 봉송' 행사가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폭력적인 방법을 썼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반성할 부분이다. 다만 한국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는 너무 폭력적인 모습만 부각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또 폭력을 쓰지 않았던 학생들마저 매도돼는 것 같아 속상하다."

"폭력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다만 앞뒤 잘 봐달라"

- 한국 정부가 폭력 행위자를 엄단 조치하고, 강제출국조치까지 한다고 했다.
"정부 차원에서 보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한국 국민들의 마음이 시원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 돌려보낸다는 식의 접근이라면 정말 아쉽다. 그래도 아직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 않나?"

- 인터넷 등에는 중국 학생들의 실명·연락처가 공개되는 등 여론의 뭇매가 심하다.
"이해는 간다. 외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와서 과격한 행동을 했는데 이에 대해 한국 언론과 국민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앞뒤 상황을 보지 않고 일부 폭력사태만 보고 몰아세우는 것 같아 가슴 아플 따름이다."

- 언론의 보도나 한국 사람들의 여론이 균형적이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다. 중국 국민들에게 올림픽 개최는 정말 중대하고 기쁜 행사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축하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성화 봉송'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우리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언론에서는 "성화를 지키자"란 우리의 표현을 "중국 학생들 폭력 행사"란 말로 밖에 설명하지 않고 있다."

- 중국인 유학생들은 서구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은 것 같던데?
"CNN 프로그램 진행자가 중국산 제품은 쓰레기고, 중국인은 깡패라고 말했다. 수십 년 전 중국에 대한 편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제 중국은 못 살고 범죄만 저지르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인 중에는 범죄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도 많다."

- 그렇다면 폭력·과격 시위가 일어난 원인이 잘못된 편견으로 인한 중국인들의 불만이 표출된 건가?

"중국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아직도 50~60년 전의 중국 이미지를 말한다. 폭력배·강도, 이런 것 말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중국인에 대한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도 이제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했는데도 말이다.

올림픽 개최는 우리에게는 큰 자부심이고, 중국 경제 도약의 기회였다. 그런데 이것마저 잘못된 편견으로 가로막으려 하는 것을 중국 학생들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2002년 한국 월드컵 때 만약 이런 일이 있었으면 한국인들도 분노하지 않았겠나? 물론 폭력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좀 균형 있게 봐달라."

"2002년 월드컵 때 이런 일 있었으면 한국 사람들도 화났을 것"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앞에서 성화가 출발한 뒤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의 인권 탄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충돌한 가운데 한 시민이 중국 유학생들의 폭행을 피해 빠져나오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앞에서 성화가 출발한 뒤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의 인권 탄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충돌한 가운데 한 시민이 중국 유학생들의 폭행을 피해 빠져나오고 있다. ⓒ 유성호

- 한국 생활을 하면서도 '무시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나?
"그렇다. 못 살던 중국의 이미지 때문인지 아직까지 좋지 않은 편견이 많은 것 같다. 한국 사람도 똑같은 경험하지 않나. 호주·미국 등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무시받는 느낌을 받나.
"겨울 방학 때 치킨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이 일했던 아주머니가 정말 중국에 대해 나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잘하고 해도 편견을 가지고 보더라. 같이 일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이다.

처음 한국 왔을 때 아는 한국인 여동생이 '중국에 사과하고 수박 있어?' '젓가락·숟가락은 쓰나' '치약은 사용하나' 이런 질문 정말 많이 했다. 또 중국산 제품이라고 하면 싸고 후진 물건이란 편견도 항상 가지고 있다. 자신의 나라가 이런 편견에 휩싸여 있으면 정말 화나지 않겠나. 게다가 중국인들은 애국심·자존심도 매우 센 사람들인데 말이다."

- 중국인들의 자존심이 '중화 중심주의'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나 민족성은 가지고 있다. 중국이 특별히 강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을 자주 외치고,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우리나라'란 표현도 많이 쓴다. 한국이 중국보다 이런 자부심이 덜하다고 보진 않는다. 단순히 '중화 민족주의'라는 말로 패권국가인 양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 왜 해외에서 티베트 사태에 대해 이토록 강한 반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27일 나온 한국 시위대 분들이 과연 티베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지적해줬으면 좋겠다. 중국으로서는 티베트가 통일국가를 이룩하는 데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들이 진정으로 티베트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저토록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른 이권이 개입돼 있을 것이다."


#중국인 유학생#성화봉송#폭력시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