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25일) 오후, 아내는 혼자 300주의 야콘을 심었다. 지난해 200주의 야콘을 심으면서 여동생 부부를 불렀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는데 아내는 겁도 없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퇴근해서 부랴부랴 뜨락으로 갔더니 야콘 심기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올해는 야콘을 판매해서 일정한 소득을 올리겠다는 제법 야무진 계획까지 세웠다고는 하지만 예상 못한 일이었다. 금요일 밤부터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 서둘렀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웃을 수만 없었다.
지난해에 고추와 배추, 야콘 등을 심고 가꾼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농사짓는 솜씨가 조금 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이 건강해졌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짠하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도시에서 낳고 자란 탓에 농사라면 호미질도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던 아내였다. 작물에 따라 언제 씨앗을 뿌리고 언제 수확하는지 몰랐던 사람이었다. 아마 병만 아니었으면 지금도 아내는 그런 일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거친 손, 검게 탄 얼굴의 농군이 되었다.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아내 역시 농사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지난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의외로 아내는 잘 적응해 왔다고 본다.
지난 겨우내 아내는 비닐하우스 안에 갖가지 채소를 가꾸었다. 아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신선한 채소를 거르지 않고 먹었을 뿐 아니라 돈으로 살 수없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농사는 공장에서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는 일과 다르다. 농산물이 나오기 까지는 품을 많이 들여야 하고 많은 시간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 안 되는 일이다. 우리뿐 아니라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월평균 수입이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임을 알 수 있었다. 노인들은 “땅을 놀릴 수 없어 씨앗을 넣는다”고 말했다.
우리 경우는 본격적인 농사라고 할 수 없다. 출발부터 우리 먹을 채소나 가꾸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니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일도 의미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 원짜리 한 장을 크게 생각하는 시골 노인들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농업이 어렵다는 점을 거듭 실감한다.
아무튼 아내의 농사 욕심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 소용없다. 남들에게는 ‘남편의 취미생활 때문에 본인이 고생’이라고 말하면서도 주말에는 물론 주중에도 한 번은 돌아봐야 하고, 그리고 밤이면 몸살을 하면서도 호미를 놓지 않는다.
아직 아내의 밭은 많이 비어있다. 그러나 아내의 머릿속에는 이미 고구마와 고추, 가지와 토마토, 심지어는 오이와 참외, 수박까지 가득한 것 같다. 그런 아내를 보면 자연과 더불어 점점 건강과 자신감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나로 인해 전혀 엉뚱한 자리에서 고생하는 것만 같아 미안한 생각도 든다.
요즘 아내는 날마다 뜨락으로 출근한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지만 가물어도 편하지 않은 것이 농사다. 심어놓은 작물은 시들어지는데 굳어진 땅에서도 풀은 잘도 자란다. 때문에 잔디에서는 풀을 솎고 야콘밭에 물을 주어야 한다.
매화나무에는 매실이, 자두나무에는 콩알만한 자두가 꼴을 갖추어간다. 감나무와 사과나무 새순이 귀엽다. 아직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1년 전에 비하면 스스로 대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달라진 것을 본다.
야콘이 자라고 감자 꽃이 피면 아내의 뜨락은 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꽃길의 철쭉은 벌써 시든다. 언제 온줄 모르게 찾아왔던 봄은 금세 여름인양 덥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내 불로그에서도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