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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노정관계를 파탄내고 있다."

"노동부는 기업부로 이름을 바꿔라."

 

29일 오전 11시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앞에 모인 알리안츠생명 노조원 500여명은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단결'이라 쓰인 붉은 머리띠를 질끈 매고 주먹을 힘껏 쥐었다.

 

이들은 회사가 노조와 협의 없이 단체협약을 깨고 성과급제를 도입한 데 항의해 서울 여의도 알리안츠생명 본사 앞 비닐천막과 지하주차장에서 98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첫 대규모 파업으로 그 결과는 새 정부 노정관계의 바로미터가 될 터였다.

 

그 바로미터는 현재 '적색'이다. 지점장의 노조 가입 여부와 관련, 이 장관이 지난 3월 "파업 참여 지점장들은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말한 이후, 지점장 대량해고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지점장은 지휘감독권이 없어 사용자 쪽이 아니다, 업계 대부분의 기업에선 지점장도 조합원"이라며 "노동부가 사용자 편을 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와 노동계 간에는 기싸움이 한창이다. 4.9 총선 승리로 날개를 단 이명박 정부는 한국노총과 손을 잡고 민주노총을 배제하면서 친기업적인 노동정책을 밀어붙이려 한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계 길들이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 배제전략 성공? "조합원 동원 이뤄지면 무시못할 것"

 

 

이명박 정부는 민주노총 배제 전략을 일관되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 선봉에 선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취임 초부터 민주노총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는 지난 3월 7일 첫 대면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앞에 두고 "민주노총은 바뀌어야 한다"며 "노동 운동이 제대로 되려면 시대적·역사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의 공격은 계속됐다. 그는 "현재의 노동운동은 미래가 없다(4월 10일 고려대 최고경영자과정 초청 강연)", "아직도 과거와 같은 경직된 자세를 유지해서 유감스럽다(4월 22일 <매일경제신문> 인터뷰)"며 민주노총에 연달아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이석행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는 노동정책이 없다", "민주노총을 무시하고 대화를 거절하면 총파업을 하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현재 노동부와 민주노총 간에는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전임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는 많이 만나고 전화통화도 많이 했는데, 이영희 장관과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민주노총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투쟁에 대한 조합원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이에 대한 뼈아픈 교훈을 겪은 터다. 민주노총은 "이랜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노총 깃발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외면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노총은 동원의 딜레마가 있다, 대공장의 실리주의와 중앙과 산별차원의 개혁성에 틈이 있다"며 "조합원 동원이 제대로 이뤄지면 국회 다수당도 입법하는 데 외부 투쟁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흔들리는 정책연대... 한국노총 지도부의 선택은?

 

 

이명박 정부의 민주노총 배제 전략은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가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정책연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공기업 민영화 등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한국노총 조합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열기로 했던 정례정책협의회는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다. 최임식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3월 24일 류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과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에게 정례정책협의회를 구성하자는 공문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고 말했다.

 

정책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영희 장관이 22일 보도된 <매경>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으로 친기업적인 노동 정책을 쏟아내자 한국노총은 큰 불만을 나타냈다.

 

이 장관은 인터뷰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 회사에서 월급 받으면서 투쟁하는 노조가 있나,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정규직보호법 폐지를 암시하고 산업안전 규제 완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당일 논평을 내 "정책연대의 첫 출발부터 망가뜨릴 수 있는 중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 각국들은 노조 전임자 등의 유급활동 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자국의 노동계를 향해 근거도 없이 '부끄러운 일' 운운하는 장관의 무지와 결례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한국노총은 또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엉뚱한 계획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한판 붙자'고 하는 편이 정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병훈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 정책연대를 한 한국노총 상층 지도부가 일선 조합원들의 반발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노정관계의 큰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계 길들이기? 최악의 시나리오 가능성

 

노정 관계의 앞날은 험난하다. 4월 9일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를 계기로 가속화 될 친기업·탈규제 등 노동유연화 정책의 칼끝이 노동계를 향하고 있다. 이는 정권 초기 노정 간의 기싸움을 넘어 노동자의 생존을 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병훈 교수는 "앞으로 노정관계가 좋을 턱이 없다"며 "가장 먼저 터져 나올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제를 비롯해, 7월 확대되는 비정규직법, 산별교섭 등을 둘러싼 노정간의 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노동계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양대 노총은 결코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계 길들이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제 노동유연화는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속노조를 제외하면 전교조, 공공노조는 단체행동권이 제약되는 등 팔다리가 묶였다"면서도 "이석행 위원장이 산별대장정을 통해 조직화하고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5월말부터 폭발성이 있는 투쟁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대부분의 공기업 노조가 속한 한국노총 역시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최임식 정책국장은 "공기업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는 6월까지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책연대는 재검토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한국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과의 연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노동계 길들이기가 실패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동정책#노동#민주노총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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