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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밭에 더덕이 한창 자라고 있다.
우리밭에 더덕이 한창 자라고 있다. ⓒ 전갑남
밭에 갖가지 씨를 뿌렸다. 상추, 쑥갓, 치커리 등 야채씨와 함께 열무, 얼갈이도 뿌렸다. 완두콩도 심고, 강낭콩도 심었다. 또 감자, 토란도 심은 지가 여러 날이 되었다. 봄이 되어 빈 밭에 작물이 하나하나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야채씨가 잘 올라왔다. 완두콩도 무거운 흙을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감자도 싹이 자라 제법 컸다. 그런데 토란과 강낭콩이 싹 트는 게 더디다. 씨를 넣은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열무, 얼갈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말이 맞는지 듬성듬성 싹이 터 애를 먹인다. 아무래도 다시 씨를 뿌려야할 성싶다.

 

씨를 뿌리고 제때 싹이 트면 반갑다. 그런데 싹 트는 게 시원찮으면 얼치기농사꾼은 안달이 난다. 혹시 씨앗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흙에 너무 깊게 묻힌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한다.

 

아침저녁으로 밭에 드나드는 것은 씨 뿌린 자의 기대이다. 올라오게 될 새싹을 기다리며 나는 밭으로 향한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발길이 잦은 것이다.

 

오늘 관심종목은 뭐지?

 

 더덕은 지주를 세워두면 지주를 감으며 자란다.
더덕은 지주를 세워두면 지주를 감으며 자란다. ⓒ 전갑남

이른 새벽, 좀 전까지 내리던 빗줄기가 그쳤다. 이번 비로 싹이 트고, 작물이 자라는 데 큰 힘을 받을 것 같다. 봄비는 단비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아침도 먹기 전에 밭으로 나왔다. 이런 날은 아침 먹는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촉촉하게 적신 흙이 보드랍기만 하다. 비온 뒤라 맑고 깨끗한 공기가 너무 좋다. 뒷산의 신록도 싱그럽기 그지없다.

 

강낭콩을 심은 데부터 살폈다. 통통한 떡잎이 군데군데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야채 싹도 한결 푸르러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늘 관심종목은 딴 데 있다. 발길을 더덕 밭으로 돌렸다. 하룻밤 새 이렇게 자랄 수 있을까? 더덕 순이 감고 오르도록 말뚝을 더 박아줘야겠다. 나뭇가지 몇 개를 준비하였다.

 

더덕은 타고 오르는 데 선수이다. 옆에 의지할 것만 있으면 감고 오른다. 지주를 비비꼬아 감는 모양이 신비롭다. 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감고 오를까?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다 붙잡을 것만 있으면 감아버린다. 쓰러지지 않으려는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신의 손이라도 가졌나?

 

연한 녹색의 잎이 꽃처럼 예쁘다. 잎을 슬쩍 건들이자 더덕향이 풍겨온다.

 

나는 언제가 산행 중에 더덕을 만난 적이 있었다. 처음에 잎만 보고는 더덕인 줄 몰랐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더덕 향에 아연 긴장을 하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몇 군데 더덕이 몰려있었다. 입에서 나도 몰래 "심봤다!" 소리가 나왔다.

 

그 때의 흥분은 아니더라도 요즘 밭에서 더덕이 힘차게 순을 뻗는 것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 자라는 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듯싶다. 키 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연둣빛으로 변하여 키 재기를 하는 더덕밭

 

 우리 더덕밭이다. 요즘 더덕이 잘 자라고 있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더덕밭이다. 요즘 더덕이 잘 자라고 있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전갑남
우리 더덕밭은 밭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작년에 옮겨 심은 것은 키가 훌쩍 자랐다. 녀석들은 지주를 세워 주니까 타고 오르면서 신이 난 것 같다. 그리고 새싹이 또 엄청 올라오고 있다.

 

사실, 우리밭 더덕은 잃어버린 지갑을 되찾은 격이라고나 할까? 일약 관심 밖의 종목에서 관심종목으로 부상한 것이다.

 

작년 이맘 때, 우리는 더덕 모를 심었다. 아는 분이 모종을 많이 주어 실 같이 가느다란 더덕 모를 심은 것이다. 경험이 없어 어린 모가 자랄 때 풀도 뽑아주고, 어느 정도 키가 크면 지주를 세워줘야 하는데 도나캐나 놔두었다. 그러니 더덕은 풀과 함께 땅을 기는 형국이 되었다. 나중 풀밭인지 더덕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가 되었다.

 

 새로 더덕 싹이 올망졸망 올라왔다.
새로 더덕 싹이 올망졸망 올라왔다. ⓒ 전갑남

올봄, 밭을 정리하면서 검불로 뒤덮은 밭에 불을 질렀다. 다른 작물이나 심을 요량으로 거름도 펴놓았다. 그리고 밭을 갈아엎으려고 하는데 무슨 새싹이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바로 더덕 싹이었다. 풀 속에서도 더덕은 꽃을 피우고, 씨를 맺히고, 또 뿌리를 키우며 자란 모양이다.

 

검불을 태우느라 불을 놓았는데도 더덕이 땅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신비스럽다. 끈질긴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자연한테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말이 이럴 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연둣빛으로 변한 더덕밭을 보니 마음에도 파란 새싹을 키우는 듯싶다. 올해는 정성을 쏟아 돌봐줘야겠다.

 

더덕이 감는 이유가 뭘까?

 

아내도 밭으로 나왔다. 며칠 새 키가 훌쩍 자란 더덕을 보고 놀란다. 더덕잎에 코를 가까이 대며 냄새를 맡아본다. 더덕 향을 느끼는 모양이다.

 

더덕 향을 맡다가 잎에 맺혀 있는 물방울을 보며 호들갑이다.

 

"아이구! 이 물방울 좀 봐! 또르르 모아진 게 영롱한 보석이네! 토란잎에 맺히는 거나 비슷해!"

 

 더덕잎에 맺힌 물방울. 보석처럼 아름답다.
더덕잎에 맺힌 물방울. 보석처럼 아름답다. ⓒ 전갑남

더덕잎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참 보기 좋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운 예술품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신비스런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풀을 뽑는데 아내도 거든다. 새로 올라온 더덕 싹 사이로 자잘한 풀이 엄청 올라왔다. 더덕 새싹과 잡초를 구별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너무 밴 자리는 모를 솎아 듬성듬성한 자리에다 옮겼다. 올해 싹 튼 것, 옮겨 심은 것들이 한데 어울려 더덕밭이 무성하게 될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풀을 뽑다 말고 아내가 뜬금없는 소리로 묻는다.

 

"여보, 더덕은 왜 비비꼬고 그러지?"

"자기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겠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지혜 아닐까!"

"내가 당신한테 의지하는 것처럼!"

"붙여대기는!"

 

비비꼬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큰다는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더덕 잎을 하나 따서 맛을 보는 것을 보고 의아해한다.

 

"더덕은 순도 먹어요?"

"쌈으로도 먹고, 나물로도 한다던데!"

 

아내도 맛을 보더니 쓴맛에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도 향은 좋다며 좀더 자라면 순을 따 데쳐 먹어보잔다.

 

더덕은 방울방울 종 모양의 예쁜 꽃도 피운다. 그리고 뿌리는 캐서 고추장을 발라 구워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올봄 우리 텃밭에 관심종목으로 새롭게 등장한 더덕이 나와 가족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것 같아 참 기쁘다.

 

 더덕 어린 싹이 참 예쁘다.
더덕 어린 싹이 참 예쁘다. ⓒ 전갑남

#더덕#더덕 순#더덕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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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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