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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지 5년 째.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내 대학생활이 요즘은 ‘공부’에 푹 빠져 있다. 어느 대학이 발표한 ‘XX대 추천 고전 100권’ 따위의 글, 고등학교 때까지는 절대로 믿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

학교 시험 때문에 읽는 게 아니라 평소에 정말 ‘즐겨’ 인문학 고전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심으로 공부를 좋아하는 아주 드문 소수의 사람을 빼고 말이다. 게다가 읽기 편한 소설이 아니라 국가가 어떻다느니, 소유가 어떻다느니 따위의 철학 고전들을 즐겨 읽는 사람은, 슬프게도 얼마 안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많이 읽어라’는 말이 점점 덜 들리고 있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책 열심히 읽어~’라고 말하기보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문학선집 같은 책을 자식들 방에 사다 놓는 걸 뿌듯해 하는 부모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 된 동화책도 한 권 쯤 사놓을 법하다. 참 최근에는 동화책을 기간을 정해 빌려주는 회사가 있다고 한다. 돈 주고 빌렸으니 그 기간 내에 책은 꼭 읽혀야 되겠고, 아이들은 아마도 억지로, 동화책을 열심히 읽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때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우연한 기회에 선배들과 함께 책을 엄청 많이 읽었다. 500쪽짜리 책을 일주일에 한 권 씩 읽고 함께 세미나하고 토론하고 다시 읽고…. 그 당시 읽었던 책들은 이후 내 대학생활에서 학점의 밑거름이 돼 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이후로 한 달에 한 권 읽을까 말까한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책을 손에 잡기 시작했다. 수불석권(手不釋卷)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꾸준히 읽게 됐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물론 여러 사람과 함께 인문학 공부 모임을 진행하고 있지만), 내 마음이 내켜서 그렇게 읽는다. 그렇게 된 계기는 바로 두 권의 책인데 <희망의 인문학>(얼 쇼리스, 고병헌 역, 이매진)과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고미숙, 그린비)이다.

<희망의 인문학>은 미국의 한 지식인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빵도 아니고 고기를 낚는 법도 아니라, 바로 ‘인문학’임을 주장하는 책이다. 실제로 도시 빈민들, 감옥의 죄수들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진행하며 있었던 일들이 책에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입문 수준의 강좌가 아니라, 문학·역사·철학 등 각 분야에 정통한 대학 교수들이 강좌를 맡아 진행한다. 얼 쇼리스는 인문학을 통해 빈민들이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삶을 둘러보게 되는 ‘성찰하는 힘’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공적 영역에 참여함으로써 ‘행동하는 삶(Vita Activa)’을 살게 될 때 그들의 삶도 개선되었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인문학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좌파를 자처하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너무 소홀했음을 깨달았다. 당장 나부터 그랬으니까. ‘인문학’의 사회적 힘을 처음으로 깨달은 계기였다.

그런데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는 <희망의 인문학>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책이었다. ‘공부’가 갖는 사회적인 힘을 설명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부해야지!’라고 말하는 듯 했다. 주자의 말 - “부귀하면 부귀한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다면 빈천한 대로 공부할 일이다” - 을 인용하면서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만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줄만한 내용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부하는 그 순간, 공부와 공부 사이에 있다는 것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고 외친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라니. 공부 안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에이 설마, 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저자는 공부하면 연애도 더 잘 할 수 있고, 인기도 많아지고,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 등등 이것저것 다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얼토당토 않은 헛소리가 아닌 것 같은 게 참 이상했다. 내게 책을 손에 쥐어 보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왠지 거짓말 같긴 하지만 손해보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자!’라고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인기있는 사람이 됐는지. 여전히 솔로인 걸 봐도 의심스럽긴 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점은 확실하다, 정말 확실하다. 여전히 내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고, 사람과 맺는 관계에 힘들어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 도움이 된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한 친구에게 “책 많이 읽자! 그럼 분명 나아질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했겠지만,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없다. 경쟁에 힘들고, 관계에 힘들고, 사는 게 힘든 모든 대학생들에게 나는 “책 많이 읽자! 그럼 분명 나아질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prometheus4u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2012)


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이매진(2006)


#인문학#클레멘트#공부의달인#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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