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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에서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 등 간부들과 회견을 하고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에서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 등 간부들과 회견을 하고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착각에 빠지는 때가 있다. 주로 기억이 헷갈릴 때다. 그러나 판단이 헷갈릴 때도 있다. 아니,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 때 가장 그렇다.

 

이런 경우 어떻게 봐야 할까.

 

"연락사무소 제안을 거부하면 대화가 끊어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중에 한 말이다. 지난 18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을 전격 제안한 데 대해 북한측의 예상 반응을 묻자 한 말이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연락사무소 개설 제안에 북한 측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측과 사전 협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태에서 나온 돌발 제안에 북한 측이 응할 리 없다는 판단이다.

 

또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에서 계속 제안해왔던 사안이다. 북측이 그동안 이 제안에 부정적이었던 상황을 고려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 제안에 북측이 반응할 개연성은 더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이미 끊긴 남북대화가 또 끊어진다고?

 

그래서다. "연락사무소 제안을 거부하면 대화가 끊어질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히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이 대통령은 북한 측이 이 제안을 받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낙관적 근거는 무엇일까? 공개되지 않은 북한 측과의 은밀한 물밑 대화라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일까?

 

둘째, 지금 남북 대화가 잘되고 있다는 것인가? 이 대통령은 만약 연락사무소 제안을 거부하면 "대화가 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지금은 대화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남북 당국간 관계는 지금 모두 끊어진 상태다. 북한은 '비핵개방 3000'으로 대표되는 새 정부의 대북 정책과 당국자들의 대북 발언에 반발해 남북한 당국 간 대화와 접촉을 모두 끊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실제 개성과 금강산의 '남측 당국자'들을 추방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상태를 '대화가 되고 있는 상태'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대화가 끊어질 상태'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가정하고 있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의 대북정책의 흐름은 대략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선 핵해결'을 앞세운 철저한 '상호주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측의 대응 또한 예상했던 대로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착각'이나 '착오' 대열에 동행하는 언론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새 정부가 북한과의 당국 간 접촉과 교류를 어떻게 해나갈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이른바 '통미봉남' 정책을 들고 나올 북한측의 갈라치기 대응에 이 정부가 무슨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그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상황인식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지금의 좌표와 가는 길의 방향과 거리 정도는 분명해야 길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서 '남북 대화는 되고 있다'는 상황 판단은 일단 현위치 좌표설정에서부터 빗나간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북측이 받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제안을 해놓고 "이를 받지 않으면 대화가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그 방향 설정에 있어서도 대단한 착각이 있는 것 같다. 아니라면 '의도적 착오'일 수 있다.

 

어쨌든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신문들도 이런 '착각' 혹은 '착오' 대열에 동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 일부 신문을 제외한 대다수 신문들은 지난 19일자 사설 등을 통해 일제히 북한 측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한미가 주는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라'는 식의 경고성 촉구였다.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은 현실성이 없다"며 "경색된 분위기를 풀고 신뢰를 쌓는 일부터 먼저 할 것"을 주문한 <경향신문>이나 <한겨레>가 없었다면 '상식적인 판단'마저 혹시 착각은 아닐까 의심해봐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비단 이 뿐만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사실상 전면 개방하다시피 한 한미쇠고기 협상 결과를 놓고 안전 문제는 거의 도외시한 채 한우농가에 대한 피해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쇠고기 시장은 이미 개방돼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광우병'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이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축산농가 피해 문제'에 열중하는 것은 전형적인 쟁점 흐리기다.

 

그러다 보니 정말 무식한 주장도 거침이 없다. 모든 소의 광우병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 '전두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일본의 광우병 발생 건수와, 전두검사를 하지 않고 있는 미국의 광우병 발생 건수를 단순 비교해 미국산 쇠고기가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미국 측에 전두검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주장은 이런 주장이다. 미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잘도 먹고 있는데, 왜 우리만 그리 문제 삼느냐는 식의 주장이다.

 

헷갈린다. 우리가 미국인인가?


#이명박#연락사무소#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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