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부산의 화명 주공아파트는 조성된 지 30년 가까이 된 서민아파트이고 평수도 대부분이 20평 이하입니다. 하지만, 금정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자연환경은 여느 고급아파트 단지 이상으로 좋습니다.
동이 트기 전부터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다양한 종류의 정원수들과 가로수들이 주변에 심어져 있어 공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선풍기 없이 지내는 날이 많을 정도입니다.
주민들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대부분이며 집주인보다 전세나 월세를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가진 건 없지만, 이웃 간에 사이가 좋아 여름에는 나무그늘 평상에서 점심을 함께 먹기도 하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도 나눠 먹곤 하지요.
그런데 작년 10월 재건축 인가가 나고 11월부터 이주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철이 되니까 이사 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고약한 악취까지 풍기기 때문이지요.
이웃을 버리고 자신의 양심마저 버린 사람들
정을 나누고 지내던 이웃들이 겪을 고통은 생각지 않고 보기에도 흉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집에다 놔두고 가도 될 터인데 꼭 밖에 버려야 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자신의 편리를 위해 이웃에게 고통을 주고 떠나는 사람들은 계곡이나 공원에 음식물을 버리는 얌체족들보다 양심이 더 불량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쓰레기를 버린 게 아니라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와 자신의 양심을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이 유발하는 여름 전에 대책 세워야1982년에 조성된 화명 주공아파트 단지는 1997년 재건축추진위원회 설립 이후 조합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물러나는가 하면, 조합원과 시공사와의 갈등으로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까지 갔었으나 작년 10월 건축시행 인가를 획득했습니다.
시공사는 2008년 8월까지 이주를 완료하고, 10~11월 조합원 동호수를 추첨하고, 2009년 2월 착공에 들어가 2012년 4~5월경 입주를 완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주가 시작된 작년 11월부터 쓰레기 혼합배출 등 불법투기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재건축에 관심 없는 주민들과 이주비를 요구하는 세입자들, 그리고 분양을 거부하는 아파트 주인 300여 명이 시행회사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한 상태라서 공사가 예정보다 늦춰질 전망입니다.
재건축 시행 인가를 획득한 작년 10월 이후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어 지금은 50% 가까이 마친 상태입니다. 거리에는 4월까지 이주를 마쳐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한가로이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도 상당수여서 시공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됩니다.
시공사와 재건축 추진조합 입장에서는 주민들의 이주 문제가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쓰레기 때문에 고통받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대책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입니다. 전염병 유발이 걱정되는 여름철이 건너 동네까지 와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