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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승이다. 친박성향의 당선자를 합치면 한나라당의 의석은 국회의 모든 상임위의 과반수를 점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정권의 안정적 국정운영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계와 협력할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결과도 여전히 지역구도가 위력을 발휘한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진지하게 지역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1. 지역감정과 지역구도 정치.

 

지역감정이라면 각 지역민간의 뿌리깊은 반감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감정은 어느나라에나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남과 호남간의 감정적 앙금이 깊다. 영남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호남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호남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근거가 없거나 합리적이지 못한 감정일 뿐이다. 극복해야할 잘못된 감정인 것이다.

 

그러한 지역감정에 의하여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 또는 반대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구도가 지역구도 정치이다. 지역간의 감정의 골을 메우고 치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그런데 오히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강화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 정치권을 주름잡고 있다. 그러니 지역감정도 치유되기 어렵고 지역구도로 형성된 부끄러운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감정이 본래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그 것을 활용하거나 증폭시키면서 감정의 상승작용을 만들어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호남이 소외되고 영남에 산업기반이 집중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이 영호남간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사실은 영남보다 수도권이 훨씬 빠른 산업발전을 했다는 점에서 산업불균형이 지역감정의 뿌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호남에서의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던 때가 있었다.

 

문제는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점이다. 공화당 이효상씨의 '보리문둥이 단결론'이 그 효시이다. 인구구조학 적으로 유리한 영남기반의 정치세력은 끊임없이 지역감정을 정치에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후에는 민주화 운동과 독재세력의 대결과정에서 더욱 감정적 앙금을 키우게 되었다. 특히 79년 부마항쟁, 80년 광주민중항쟁이 발생하며 극심하게 폭발하였다.

 

군사독재 세력의 지지기반이었던 대구경북에 대하여 호남은 물론이고 부산과 경남까지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부마항쟁을 폭력으로 진압하던 박정희 정권, 광주에서 시민을 무차별 살상하던 전두환의 신군부가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다. 호남은 김대중으로, 부산경남은 김영삼으로 뭉칠 수 밖에 없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987년의 6월항쟁이다. 신군부의 항복을 받아냈으나 곧 실시된 대선에서 양김씨는 각기 욕심을 부리며 단일화에 실패하였다. 군사정권을 연장하게된 원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후 김영삼이 부산경남의 민주화 세력을 몽땅 데리고 투항한 것이다.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종필의 공화당과 3당합당을 해 어렸다. 이 결과 민주화 세력은 호남에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강화한 것도 정치인들이고 그 것을 활용하여 지역구도를 만들고 정치적 이익을 얻은 것도 모두 정치인들이다. 사실 영호남의 주민들은 그리 서로를 적대할 이유가 없다. 삼국시대나 후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연원을 말하는 것은 매우 웃기는 일이다. 그 후로 서로의 인구교류가 얼마인데 그런 감정이 수천년을 이어올 수 있겠는가? 지역감정은 지역민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지역구도 정치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간교한 술책, 잔인한 지역차별이 작용하였을 뿐이다.

 

2. 지역구도 정치가 강화되는 제도적 원인.

 

지역구도의 정치가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지역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남북이 갈린 처지에서 동서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국론이 분열되는 현상은 반드시 극복되어야할 일이다. 그러한 당위적 사고는 누구나 갖고 있지만 좀처럼 지역구도의 정치는 완화되지 않고 있다.

 

사실 영호남간의 주민들은 이제 그리 상대지역을 심각히 혐오하고 있지는 않다. 각종 매체들이 발달하고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보급되어 알 것은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만은 여전히 명확한 지역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모처럼 지역구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가도 곧장 다시 지역구도에 함몰되고 만다.

 

열린우리당이 몰락한 이유중 하나도 바로 그런 메카니즘이다. 지역구도를 극복을 정면으로 내걸고 나선 거의 최초의 대중정당이었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정치인들은 현실로 존재하는 지역구도의 벽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두 당을 허무는데 나서고 말았다. 이제 정치권은 신삼국지로 재편되고 말았다. 영남의 한나라당, 호남의 민주당, 충청의 자유선진당으로 나뉘었다.

 

바로 선거구제의 문제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매우 모순이 많은 제도이다. 두후보가 50.1%와 49.9%를 각기 득표하는 경우 49.9%는 사표가 되고 만다. 1등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정당이 이론적으로는 가장 소수당이 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그런 예이다. 전국에서 모두 2등을 하고 많은 득표를 해도 결국 호남에서는 민주당에 지고,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에 지는 것이다. 그 것이 두려워 전국에서 2등하는 전국정당보다 특정지역에서만이라도 1등하는 지역정당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정치권에서 정책경쟁이 실종되는 이유도 이러한 제도적 모순이 개입되어 있다. 각기 지역정서를 대변하는데 충실하는 것이 정치적 미래를 보장한다. 지역구도의 극복을 주장하고 정책대결을 할 여지가 없다. 지방자치의 경우 각지역에서 해당 지역당이 일당독재와 전횡을 일삼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지역마다 건강하게 견제하는 세력이 있어야 주권자의 이익이 좀 더 잘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방의회 선거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였다. 그래서 일당 독식은 겨우 막고 있지만 중앙정치에서의 지역구도가 영향을 미쳐서 그리 효과를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루속히 선거구제를 고쳐야한다. 사표를 줄이고, 경쟁이 작동하게 만들면 정치의 품질은 좋아질 것이다. 정치인이 두려워서 지역당에 들어가는 현상도 줄어들 것이다. 각기 소신에 맞는 정책지향을 보고 정당을 선택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을 조금씩이라도 배출할 수 있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3.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이제 막 총선이 끝났다. 이번 선거에서도 역시 뚜렷한 지역할거 구도가 재현되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한다. 지난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못한 것은 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한나라당은 집권여당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절대과반수를 확보한 힘있는 여당이 되었다. 다음 총선은 4년이나 남았다. 지금은 그나마 다음 총선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을 수 있는 시기이다. 지금 선거구제를 개편하기에 적절한 때이다.

 

집권여당에게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지역구도의 해소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 것이 책임있는 국정운영 세력으로서 반드시 회피하지 말아야할 중요한 책무인 것이다. 지금처럼 영남, 호남, 충청이 갈려서 대립해서는 국론을 모아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게다가 새로운 수도권 주민의 욕구가 강화되며 지방과의 정책적 대립점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분열을 극복할 책임이 이 시기의 집권여당에게 주어져있다.

 

한나라당은 이제 모든 것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을 차지하고, 지방의회도 완전히 장악하였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의회까지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노력에 나선다면 국민의 박수를 받게될 것이다. 지금 좀 과하게 얻은 권력을 더욱 오래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통합의 첫걸음으로 선거구제 개편을 추진하기에 매우 적합한 때이다.

 

만일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차기에 대한 불안을 갖는다면 의석수를 두배로 늘려주는 한이 있어도 이 일은 반드시 해야한다. 약간의 재정지출이 늘더라도 지역구도로 갈라진 정치는 반드시 정책대결의 구도로 바꿔야한다. 또 그 일에서 국민통합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 현재의 지역구수를 그대로 두고 각 지역구마다 2명씩 뽑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제도의 변화이다.

 

야당도 거의 반대할 명분이 없다. 민주당의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과거 주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설혹 입장을 바꿔서 반대를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꿀 절호의 찬스이다. 다른 모든 과제보다 이 일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다. 시간이 흘러서 차기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여 어려워진다.

 

부디 모든 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이 한국의 정치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기여를 해주길 바란다. 이 일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한나라당은 영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최초의 정당이 될 것이다. 국민의 지역감정은 과거와 달리 그리 강팍한 것이 아니다. 서로 그리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지역구도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면 선진 민주정치를 우리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지역대결에 몰두하지 않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 정책적 차이를 가지고 국민에게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한나라당이 호남의 보수세력에게 지지받아 당선되고, 민주당이 영남의 개혁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개표방송을 본다면 흐뭇하지 않겠는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민주당의 국회의원이 TV에 나와서 토론하는 모습은 또 어떤가? 부디 우리 후손에게는 지역구도의 정치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일을 지금 한나라당이 해주길 바란다면 무리일까?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지역구도#지역주의#소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정책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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