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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터벅터벅, 학교 기숙사 앞 벚나무 길을 걷던 중 맞은  편에서 오는 차를 피해 도로 옆 잔디밭을 걷게 되었다. 그 때, 벚나무 아래 있는 무언가가 발길을 가로 막았다. 바로 이름표. 땅 위로 살짝 드러난 벚나무 뿌리 틈새에 '왕벚나무'라고 쓰여 진 이름표가 박혀 있었다.

 

'아, 그렇지. 나무에도 이름이 있었지.'

 

새삼스레 뻔한 사실을 놓고 대단한 진리라도 발견한 듯 놀라워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주변에 대한 나의 무관심에 한껏 머쓱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기숙사 벚나무 길을 걸어 다닌 지가 벌써 3년째인데 단순히 벚나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보는 너인데,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하네.'

 

학교 기숙사 앞 왕벚나무 길 이 길에 있던 많은 왕벚나무 중에 이름표가 있던 왕벚나무는 하나뿐이었다.
학교 기숙사 앞 왕벚나무 길이 길에 있던 많은 왕벚나무 중에 이름표가 있던 왕벚나무는 하나뿐이었다. ⓒ 김보경
내 발길을 가로 막았던 이름표 누군가 밟기라도 하면 땅에 묻힐 것만 같다.
내 발길을 가로 막았던 이름표누군가 밟기라도 하면 땅에 묻힐 것만 같다. ⓒ 김보경
 
이름표를 발견한 뒤로, 수업 들으러 가는 길에 마주치는 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름표가 있는 나무를 찾기란 보물찾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리저리, 아무리 세심히 둘러보아도 이름표 있는 나무는 꽁꽁 숨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학생식당 옆을 지나치게 됐다. 봄을 맞아 노랗게 피어있는 꽃나무를 보자, 문득 예전에 같은 과 친구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그 친구가 들었던 '생활원예' 교양수업 시험에 이 나무의 이름을 맞추는 문제가 나온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는 나무였지만 정작 이름을 몰라 그 친구는 답을 못 썼다고 말했다. 그 나무는 다름 아닌 산수유인데….
 
여전히 이름표 없는 산수유나무를 보며 지금도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 모를 나무 앞 학생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친다.
이름 모를 나무 앞학생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친다. ⓒ 김보경
학생식당 옆 산수유  여전히 이름표는 찾아볼 수 없다.
학생식당 옆 산수유 여전히 이름표는 찾아볼 수 없다. ⓒ 김보경
 
전공 수업이 있는 사회과학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생각을 더듬어 이름표가 있던 나무를 세어보았다. 오는 길에 마주쳤던 나무는 족히 100그루가 넘었지만 정작 이름표가 있는 나무는 단지 4그루뿐이었다. 그 중에는 한쪽 모퉁이가 부서져 있거나 흙이 묻어 잘 보이지 않는 이름표도 있었다.
 
'와, 너무하다….'
 
캠퍼스의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자기를 알릴 기회도 없이 무관심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내가 몸 둘 바를 몰랐다.
 
사회과학대학 앞에 있던 작은 관목  이름표에 잔뜩 흙이 묻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사회과학대학 앞에 있던 작은 관목 이름표에 잔뜩 흙이 묻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 김보경
 
이름을 아는 것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 사람의 경우에도 이 둘의 차이는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만든다.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알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친해지듯이, 나무에도 이름표가 있어서 우리가 그 이름을 정확히 안다면 지금보다 나무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 
 
하루 동안 우리 눈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사람과 자동차 다음으로 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무를 남처럼 지나치기보다 이름을 알고, 그래서 애정을 갖게 된다면 세상의 무수한 나무들이 어느새 우리의 친구가 되지 않을까.
 
 

#나무#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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