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30일) 봄비가 내렸다. 봄비 맞으며 장산을 올랐다. 해운대 운촌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산 속으로 깊이 들수록 봄비 맞은 진달래들이 길 따라 만개해 있었다. 봄비 속에 개나리, 벚꽃, 산수유도 더 고운 빛깔을 뿜어냈다. 그 많은 꽃빛깔 중에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의 진달래는, 마치 길가에 분홍치마를 입은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듯 보였다.
진달래는 식물학상 철쭉과에 속하며, 통틀어 37종이나 된다고 한다. 북으로 백두산, 남으로 제주도, 동으로 금강산, 지리산 등 진달래는 없는 곳이 없다. 3월, 방춘이 되어 개나리가 필 때 진달래도 다투어 핀다.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칭송을 받아 온 진달래, 수 십년 전만 해도 봄이면, '화전놀이'가 세시의 연중행사였다. 하얀 찹쌀가루와 섞어서, 참기름에 예쁜 꽃잎을 붙여서 지져내어 나누어 먹는, 화전 놀이는 우리 선조들의 '한솥밥을 다 같이 먹는다'는 공동체 의식에서, 생성된 세시 음식의 하나였다.
화전놀이는, 멋과 풍류와 '한 솥밥'의 단결력 상징이는 농경사회에서의 친밀한 유대력 강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멋과 풍류를 아는 우리 선조들의 낭만과 지혜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생각하면 명절마다 '세시 음식'이 있다. 설날에는 떡국, 대보름에 약밥, 사월 초파일에 느티떡, 단오날에 쑥떡 ,유두날에 수단(水團),추석에 송편, 중양에 국화전, 동지에 팔죽 등.
한 가족 의식의 마을의 사람들이, 특정한 날이면 모두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었다.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 해마다 열리던 그리운 '화전놀이'는 다 어디 갔을까. 이제는 먼 시간 속에서 모락모락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먹기도 아까울 정도의 화사한 꽃잎 같은 '화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봄비는 끄치고, 장산의 '진달래 길' 따라 깊이도 길은 들어왔다.
진달래의 시장(詩章)은 고려 초엽의 최승엽을 시초로 보고, 진달래 화전 놀이의 시는, 이조 중엽 임백호의 것으로 효시를 삼는다. 이처럼 진달래 '화전놀이'는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것이다. 어느 고을 어느 산에나 만날 수 있는 진달래, 그러나 그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처럼 진달래라도 다 똑같은 진달래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남남북녀'라고, 백두산의 진달래 꽃을,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할 터다.
추적추적 봄비에 젖어가는 옷깃은 무겁지만, 진달래 꽃잎은 더욱 싱싱했다. 마치 봄의 천사 얼굴을 만난 듯, 두 송이 세 송이 네 송이, 한 가족의 행복한 얼굴처럼 다가오는 장산의 진달래는 특별하다. 바윗 틈에 솔숲 사이에 넝쿨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 등산객의 발소리에 귀를 종긋 종긋 세우기도 하고, 산 속의 뻐꾹, 뻐꾹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 깍깍 울어대는 까치 소리에 더욱 더 수줍어 하는 봄처녀의 얼굴이었다.
진달래는 먹는 꽃 / 먹을 수록 배고픈 꽃//한 잎 두 잎 따먹는 진달래에 취하여/쑥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조을리는 봄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진달래는 먹는 꽃/먹을수록 배 고픈 꽃 … '진달래'-'조연현'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중략)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김소월 우리나라 꽃들, 무궁화도 그렇지만,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 가만히 보면 혼자 피어서는 절대 아름답지 않다. 군락지를 이루어 필 때,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 세시 음식의 하나인 '화전 놀이'만 보더라도, 동일한 음식을 다 함께 동시에 먹으면서, 신분의 위 아래 없이, 신분의 수직관계를 무너뜨리는, 평등과 단합, 화합의 한 민족임을 강화시키는 정말 아름다운 겨레의 세시 음식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 음식 중에 화전처럼 아름다운 음식이 있을까. 세계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세시 음식의 풍습인 것이다.
나라와 겨례를 위해 목숨을 잃고 가시는 님에게 바친... '진달래 꽃' 길 그러나 '진달래'는 넋의 꽃이기도 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읽는 이에 따라서 해석을 달릴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겨레의 한과 넋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온 산에 피는 진달래 꽃을, 겨레의 피로 상징하는 현대 시인이 많다. 봄마다 '꽃제'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온 산하를 피로 물들인 이 땅의 숱한 왜적의 침입과 6·25 전쟁 이후, '진달래'의 상징은 '겨레의 '피 눈물'이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가신 이의 넋을 달래는 충혼제에, '철쭉제' 등 이름이 붙어진 것이리라. 국민 시인, 김소월의 '초혼'과 '진달래'는 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찾을 수 있고, 이 가엽은 사랑은, 겨레와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은 '님'인 것이다. 그래서 가시는 님의 길에, 아름다운 꽃잎을 뿌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붉은 피빛처럼 번져가는 진달래 꽃길 사이로 연발탄처럼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를 듣는다. 봄비는 다시 절룩거리며 정상에서 달려내려온다. 그날의 상이군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