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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고도 옛 길, 스먼관과 우리춘에서 돌아온 저녁, 허름한 농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불빛조차 흐린 농가 식당의 컴컴한 어둠까지 정겨운 것은, 이번 여행의 핵심인 누지앙의 푸른빛과 차마고도 옛 길을 밟아본 때문이다.

식사 후 좁은 삥중뤄 시내를 걸어 마황이 운영하는 카페로 간다. 핑계야 술 한 잔 하자는 것이지만, 속내는 마황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데 있다.

마황의 카페는 나무로 그럴듯하게 인테리어 된 곳이다. 여행자를 위한 안내를 겸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행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삥중뤄에 도착한 이래로 우리가 만난 외국인이라곤 스먼관에서 돌아오는 길,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우리춘을 향해 걸어가던 두어 명 뿐이었다. 그들도 한국사람 비슷하게 생겼다 뿐이지 중국 사람인지도 모른다.

마황, 마방(馬幇) 같은 사내

마황이 운영하는 카페 <더라무>에는 손님 하나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황이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부부가 앉아 담소를 나누던 자리 발치의 화로에는 숯불이 발갛다.

마황의 아내는 뜨개질을 하고 있다가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자리는 내 준다. 제 자리인 양 앉아 있던 강아지가 비켜주기 싫다는 듯 잠시 우리를 쳐다보다 느릿느릿 일어난다.

맥주 몇 병을 주문하고, 마황과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 안은 침침한 어둠과 포근한 분위기가 공존한다. 저녁이 되면 제법 쌀쌀해지는 삥중뤄지만, 화롯불의 따스한 온기가 추위를 녹여준다.

우리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마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마황의 저녁 초대 전기가 나간 밤, 촛불을 밝히고 훠궈를 먹는다. 삥중뤄의 만찬.
마황의 저녁 초대전기가 나간 밤, 촛불을 밝히고 훠궈를 먹는다. 삥중뤄의 만찬. ⓒ 최성수

마황(螞蟥)은 본명이 아니고 인터넷 아이디란다. 명함을 건네주기에 내가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명함 뒤를 보여준다. 거기 거머리가 그려 있다. 호리호리한 키에 흐릿한 눈썹, 가는 눈에 웃으면 입가로 주름이 지는 그의 얼굴이 한족과는 달라 보인다. 그의 아내 또한 작은 키에 옅은 화장기, 도톰한 볼 살이 한족 같지 않다.

어느 민족이냐고 묻자 그가 빙그레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우리 어머니는 다이족(傣族)이다. 2차 대전 당시 원정군으로 있다 징홍으로 가 살았다. 아내의 어머니는 하니족(哈尼族)이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마황 부부는 다이족과 하니족의 결합인 셈이다. 어쩐지 생김새가 한족과 많이 다르다 싶다. 태생을 얘기하는 마황의 얼굴에 쓸쓸함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다. 차마고도의 옛 길에 자리를 잡고 생을 보내야 하는 그의 모습과 내력이 문득 마방처럼 느껴진다. 아득한 길을 걸어야 했을 마방들처럼 마황도 그렇게 아득한 길을 걸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마황은 중국 지도를 가지고 오더니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을 해 준다. 초모랑마(에베레스트)와 까오리꽁산의 여러 신산(神山)들, 실크로드와 인도까지 간 적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마황이 카페 안쪽으로 가더니 DVD 하나를 가져다 튼다. 영화 <더라무>다. 몇 해 전 쿤밍에 사는 지인 병규씨가 내게 선물했던 그 영화, 느릿느릿한 전개로 차마고도의 옛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 그 영화가 이번 내 누지앙 여행의 계기였다. 느려서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영화에서의 풍경들이 이번 여행 내내 내 눈 앞에서 재현된 것이다.

어두컴컴한 카페 안에서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오랜 시간 영화 <더라무>를 본다. 밤나무 장작으로 만든 숯이 담긴 화롯불이 추운 삥중뤄의 밤을 데워주고 있고, 영화 <더라무>는 카페 <더라무>에서 누지앙 강물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늦게 카페를 나오는데, 어둠 속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비 오는 삥중뤄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막막하고 쓸쓸한 밤 풍경이 거기 펼쳐져 있다. 그저 빗줄기 속을 개와 고양이들만 신이 나서 돌아다닌다. 어디 세상 끝에 던져진 것처럼 막막한 기분이 든다. 더 갈 곳 없는 여행지의 끝인 삥중뤄에서 밤은 그렇게 점점 짙어져 간다.

폭설, 그리고 삥중뤄 사람들

난방이 되지 않는 빈관이라 이불을 두 개씩 덥고 잠들었지만 그래도 춥다. 새벽에 눈을 뜬 것도 추위 때문이다. 이제 오늘은 아름다움 삥중뤄를 떠나 거슬러 온 누지앙을 다시 물 따라 흘러내려가야 하리라. 거슬러 온 길이 새삼 아득해진다.

얼마나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누워 있었을까? 밖이 희뿌옇다. 밤새 빗소리가 귓가에 속살거렸는데, 아직도 비가 오는 것일까? 나는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연다. 그런데 세상에!  온통 눈이다. 빗소리는 빗소리가 아니라 눈이 내리며 내는 소리였나 보다. 소리를 내며 내리는 눈이라니! 아마도 내리는 눈이 더러는 녹기도 해서 빗물로 떨어지는 소리이리라.

삥중뤄 사람들 눈이 내려도 그들은 행복하다. 눈이 오지 않아도 행복하다. 삶 자체가 행복한 것이라고 느끼는 삥중뤄 사람들.
삥중뤄 사람들눈이 내려도 그들은 행복하다. 눈이 오지 않아도 행복하다. 삶 자체가 행복한 것이라고 느끼는 삥중뤄 사람들. ⓒ 최성수

어제의 그 아름답고 눈부시던 경치는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온통 흰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창을 열면 누지앙 건너편 비뤄쉐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는데, 안개가 자욱하고 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밭도 집도 모두 흰 눈에 덮여있을 뿐이다.

빈관 밖으로 나가보니 눈이 발목을 넘게 쌓여있다. 얼른 옆방의 택시 기사 황구어첸에게 오늘 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 창밖을 잠시 내다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한다.
“괜찮아. 충분히 갈 수 있어.”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도저히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체인도 없을 텐데, 낡은 택시로 눈이 발목까지 쌓인 벼랑길을 갈 수 있단 말인가? 내 의심을 짐작했는지, 그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밖으로 나가본다.

빈관 밖에서 길에 쌓인 눈을 한동안 바라보던 황구어첸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입을 연다.
“못가겠다. 내일 눈이 그치면 나가자.”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도 눈은 쉬지 않고 쏟아진다. 주먹만한 눈송이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날씨가 아주 춥지 않아 눈이 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길에 쌓인 눈을 헤쳐 보니, 아래쪽은 녹아 물기가 배어 있다. 하지만 워낙 많이 쏟아지는 눈이라, 녹는 것보다 쌓이는 것이 훨씬 많다.  

빈관 밖 길가에는 삥중뤄와 꽁산을 연결하는 버스가 눈을 덮어쓴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우리와 같은 빈관에 묵은 버스 기사가 하품을 하며 나오더니 버스를 툭 쳐보고는 다시 빈관으로 들어선다.

“버스는 오늘 나갈 수 있냐?”

내 말에 버스 기사는 그저 고개만 가로젓는다. 길이 뚫리고 다시 버스가 움직일 때까지 늘어지게 잠이나 잘 것 같은 표정이다.

눈길을 헤쳐 이웃의 허름한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간다. 시멘트 바닥에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나 맞을 낮은 식탁과 작은 탁자가 전부인 식당이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도 없다. 그저 휑하니 열려있는 식당, 안과 밖의 분별이 필요 없는 곳이다. 작은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았는데,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아주머니가 불을 쬐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서자 자리를 터 준다.

국수를 시키고, 옹기종기 앉아 불을 쬐니 꼭 어린 시절 시골집 안방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한 자락이 펼쳐질 듯 한 아침, 눈은 하염없이 내린다.

아침을 다 먹고도 할 일이 없다. 따스한 불가가 좋아 그냥 식당에 주저앉는다. 불을 쬐던 여자 아이는 눈 세상에 신이 났는지, 길가로 나가 꼬마 눈사람을 만든다. 엄마를 따라 삥중뤄에 와 방을 얻는 중이라는 그 아이는 자기 이름을 지앙티안티안(蔣恬恬)이라고 또박또박 몇 번이나 말해준다. 외국인인 내가 그 아이의 눈에는 신기했나보다.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길로 여러 명의 삥중뤄 사람들이 나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신나게 논다.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이 더없이 환해 보인다. 담배 갑으로 눈사람의 눈썹과 코를 만들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려놓는다.

삥중뤄 사람들 주먹만한 눈이 내리는 길을 삥중뤄 사람들이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신의 땅으로!
삥중뤄 사람들주먹만한 눈이 내리는 길을 삥중뤄 사람들이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신의 땅으로! ⓒ 최성수

그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다. 눈 때문이다. 눈은 잠시도 쉬지 않고 퍼붓는다. 얼마나 눈송이가 큰지 눈의 결정이 그대로 보일 정도다. 길에는 이미 발목이 덮이도록 눈이 쌓여있다.

눈은 내리고, 삥중뤄 사람들은 눈에 묻혀 눈사람이 되어 가고, 우리는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감춘 채 구경꾼으로 남는다. 지앙티안티안과 함께 불을 쬐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이라니까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는 투로 웃는다. 차와룽에서 왔다는 그 아주머니는 꽁산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눈이 와 꼼짝도 못하고 있단다.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손짓 발짓을 해가며 나누고 있는데, 통통한 볼에 눈이 커다란 여자가 식당으로 들어온다. 국수를 시키고 우리 이야기에 끼어든다. 동북지방 랴오닝성(遼寧省)에서 왔다는 그의 이름은 왕시우주안(王秀娟)으로 올해 서른 살이란다. 네 살 된 아이가 있다며 눈 오는 하늘가를 쳐다보는 눈빛이 살짝 젖는다. 소수민족의 전통 물품을 사다가 파는 일을 한다는 그는 내게 한국에서 운남에 오는 데 비행기로 몇 시간이나 걸리느냐고 묻는다. 네 시간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자기는 랴오닝성에서 쿤밍 오는 데 다섯 시간 걸렸단다. 외국에서 오는 시간이 자기 나라에서 오는 시간과 엇비슷해서 놀란 모양이다.

눈 쌓인 길을 한 사내가 조그만 활과 화살을 들고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보더니 왕시우주안이 손가락질을 한다. 저런 물건을 자기가 사간다는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눈은 쉬지 않고 내린다. 쌓인 눈이 녹지 않았다면 무릎 가까이는 될 것이다. 한동안 내리는 눈을 바라보니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저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내린다면 봄이 될 때까지 고립될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식당을 나와 마황의 가게로 간다. 커피와 차를 시켜 마시며 마황의 지프로 나갈 수 없느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던 마황이 오후에 보잖다. 눈이 좀 그치면 나가보자는 말이다. 하긴 저렇게 펑펑 눈이 쌓이면 지척 분간이 안 되는데 험한 벼랑길을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릴없이 눈 쌓인 삥중뤄 시내를 돌아다닌다. 평생 처음 이렇게 많은 눈을 맞는 것 같다. 눈이 오는 삥중뤄에서는 아무 할 일이 없다. 그저 멍하니 서서 눈 오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눈을 맞으며 십 분도 안 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이다.

오후에 마황에게 간다. 마황은 한 번 나가보자며 지프 시동을 걸고, 기름을 넣고, 쌓인 눈을 치우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그리곤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 꽁산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보니 도저히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안 되겠다. 오늘 저녁이나 같이 먹자. 내가 대접할 테니 우리 가게로 저녁때 와라.”

마황이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저녁 초대로 달래려나보다.

눈 쌓인 비뤄쉐산 눈이 그친 새벽, 비뤄쉐산이 안개에 싸여있다.
눈 쌓인 비뤄쉐산눈이 그친 새벽, 비뤄쉐산이 안개에 싸여있다. ⓒ 최성수

다시 한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눈은 여전히 퍼붓는다. 큰 길 위에 한 두 대 차가 지나간 자국이 나 있다. 그곳만 디디고 갈 수 있을 뿐이다. 그 길을 따라 시내를 천천히 걷는다.

가게에서는 삥중뤄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당구를 치기도 한다. 그러다 우리가 지나가면 무어라고 떠들며 우리를 보고 웃어준다. 아마도 그들은 수군대리라.

“쟤네 한국 사람이야.”
“저기 한국 사람들 지나간다. 못 나갔나봐.”

좁은 마을이라 우리는 이미 그들의 주시 대상이 돼 있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도, 길을 걸어도 그들은 먼발치서 우리를 보며 호기심어린 표정을 짓는다.

눈길을 조심조심 걷는데 한 아가씨가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을 건다.

“너 한국 사람이지?”
“그래, 한국 사람이야.”

내가 대답하자 아가씨가 배시시 웃으며 고운 소리로 한 마디 한다.

“한국 드라마 참 재미있어.”

그러고는 부끄러운지 얼른 눈길을 걸어 다른 가게로 들어가 버린다. 사라진 아가씨의 뒤로 또 눈이 퍼붓는다. 무섭게 퍼붓는 눈이다. 온 몸에 한기가 돈다. 추위뿐만 아니라 마음이 시리기도 한 탓이리라. 어쩌면 영영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다 저녁에 마황의 가게로 간다. 마황의 부인이 반겨하며 자리를 내 준다. 숯불 화로에 올려놓은 냄비에서 무언가가 계속 끓고 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인지, 마황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 곁에 촛불을 켜 주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도마질 소리가 나고, 얼마 후 그릇그릇 음식 재료를 담아 내온다.

촛불을 몇 개 더 켜 화로 주위에 놓고, 마황 가족과 우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저녁은 훠궈다. 맵고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매운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도 연시 넣어주는 야채와 국물을 반찬삼아 맛있게 먹는다. 커다란 물고기도 있다. 무슨 고기냐니까 마황이 이어란다. 이어(鯉魚)라면 잉어다. 그런데 흙냄새도 나지 않는다. 우럭처럼 육질이 제법 단단하고 담백하다. 백주 몇 잔을 곁들인 호사스런 저녁이다. 우리를 대접해 주려는 마황과 그의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저녁 시간 내내 통하지 않는 말을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늦은 시간에 빈관으로 돌아온다. 전기가 나가 캄캄한 거리에는 여전히 주먹만한 눈송이가 떨어지고, 눈밭을 좋아라 뛰어다니는 개들만이 삥중뤄 시내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빈관 역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캄캄하다. 초를 얻어다 밝히고 겨우 잘 준비를 한 뒤, 이불이라는 이불은 모두 가져다 덮고 눕는다. 그래도 추위가 온 몸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잠은 오지 않는다. 몇 차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지만, 어둠 속에 주먹 눈이 그치지 않는다.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새벽 1시 30분, 다시 일어나 창을 연다. 눈발이 조금 약해진 것 같다. 천지가 적막한데, 물소리가 귓가를 아득하게 흘러간다. 누지앙이 비뤄쉐산과 부딪치며 흘러가는 소리다. 한밤중에 일어나 듣는 물소리가 처연하다. 영영 떠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처연하게 만드나보다.

삥중뤄 눈 내린 아침의 삥중뤄 거리. 길이 난 곳만 딛고 걸을 수 있다.
삥중뤄눈 내린 아침의 삥중뤄 거리. 길이 난 곳만 딛고 걸을 수 있다. ⓒ 최성수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침 7시다. 조바심을 치며 다시 창문을 열어본다. 안개가 자욱하다. 주먹 눈이 사라지고 진눈깨비가 내린다. 이제 눈이 뜸해졌으니 오늘은 나갈 수 있을까? 쌓인 눈이 녹지 않았을 테니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홉 시 경 빈관 밖으로 나서본다. 시외버스 기사가 부스스한 머리로 나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눈에 덮인 버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 들어가 버린다. 오늘도 버스는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차도 나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느릿느릿 가게 문을 연 사람들이 가게 앞에 사람 하나 다닐 만큼 길을 낸다. 무릎까지 쌓인 눈이 걷는 것까지 방해한다.

어제 아침을 먹던 식당으로 눈길을 헤치며 걸어가 국수와 소 없는 만두를 먹는다. 식당 안이 북적거린다. 눈이 날카롭고 얼굴 하관이 빠르며 입술이 두꺼운 것이 강인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생김새가 티베트 사람들이다. 국수를 먹으며, 수유차를 주문해 마시기도 한다.

눈이 동그랗고 커다래 우수에 젖은 듯 한 아이가 엄마 등에 업혀 있다. 내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어주자 아침을 먹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사진 구경을 한다. 화롯불에 말려 사진이 점점 짙어지자 환호성까지 지른다. 즉석 사진을 처음 보는 것 같다.

한 사내가 아들로 보이는 아이와 내 앞 의자에 앉더니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킨다. 자기도 찍어달라는 말이다. 부자의 사진을 찍어주자 이내 나도 나도 하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두에게 사진을 한 장씩 찍어주자 사진을 들여다보며 신이 나 한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이구동성으로 대답을 한다.

차와룽 사람들 차와룽에 사는 티베트 사람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그들은 내 카메라 앞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차와룽 사람들차와룽에 사는 티베트 사람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그들은 내 카메라 앞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 최성수

“차와룽에서 왔다.”

차와룽의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삥중뤄로 볼일 보러 왔나보다. 눈이 너무 내려 돌아갈 길이 막혀 이틀째 떠나지 못하고 있단다. 일정에 차질이 생겼는데도 그들의 표정은 모두 밝다. 일상에 쫓겨 아등바등 살아온 우리네 삶이란 저들이 보기에 얼마나 답답한 것일까? 한 그릇의 국수를 아침 식사로 앞에 놓고 그들은 행복해 한다. 한 잔의 수유차에 마음이 푸근해지고, 외지인이 찍어준 한 장의 사진을 놓고 감동한다. 그 소박하고 순수한 삶에 경외감까지 든다. 저런 마음이 아득한 거리를 오체투지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눈에 막혀 떠날 길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를 수밖에 없던 아침의 막막함이 그들 때문에 조금은 밝아지는 것 같다.

눈 쌓인 삥중뤄를 떠나다

한동안 떠들며 이야기를 나눈 뒤 마황의 카페 앞에 쌓인 눈을 치워준다. 이제 눈은 완전히 그쳤지만, 얼마나 눈이 쌓였는지 아무리 치워도 가게 앞의 눈을 다 없앨 수가 없다. 그저 발 디딜 만큼만 치울 수 있을 뿐이다.

한참 눈을 치우는데, 마황의 부인이 우리를 보더니 가게로 들어와 차를 마시라고 한다. 들어가 뜨거운 보이차로 시린 손을 녹이는데, 마황이 가게 안에서 나와 인사를 하며 지금 나가자고 한다.

“전화 해보니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얼른 가자. 눈이 녹으면 사태가 나서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 말에 우리는 빈관으로 가 부랴부랴 짐을 싸 짊어지고 나온다. 마황은 우리 말고 자기 친구 한 명을 차에 태우더니 출발한다.

“길이 위험해서 이 사람이 같이 가야 한다.”

체인도 감지 않은 지프가 비틀거리며 움직인다. 우리가 떠나는 것을 안 삥중뤄 사람들 몇이 나와 손을 흔든다. 차는 기어가듯 천천히 눈길을 미끄러진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완만한 비탈길이다. 삥중뤄 표지석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러나 눈이 지천이라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4륜구동의 지프도 눈길에는 어쩔 수 없는지 차체가 가끔씩 미끄러진다.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산굽이를 하나 돌아서자 마황이 차를 멈춘다. 비탈에서 흘러내린 눈이 길을 막고 있다. 마황과 그의 친구가 나가서 삽으로 눈을 퍼낸다. 오랜 수고 끝에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눈을 치우고 다시 출발한다. 차는 사태 난 눈길에서 기우뚱거리며 겨우 벗어난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잘못되면 저 아래 강물로 그대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 진다.

탈출 아득한 벼랑길, 설해목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탈출아득한 벼랑길, 설해목 소나무가 길을 막고 있다. ⓒ 최성수

길은 곳곳이 장애물이다. 바위 같은 돌덩이가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온 힘을 다해 그 돌덩이를 밀어내고 가다 보면 소나무가 길게 가로누워있다. 칼로 소나무를 자르고 길을 내면 위에서 흘러내린 눈이 또 길을 막는다. 사태 난 눈 속에 커다란 바위가 숨어있기도 하다. 전봇대가 길 귀퉁이를 막고 누워있는 곳도 지난다. 전봇대를 피해 산 쪽으로 바짝 차를 붙여 몬다.

마황과 그의 친구는 우리에게는 신발이 젖는다고 차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자신들만 나서서 길을 치우며 간다. 우리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고, 그저 장애물을 넘어서면 박수만 칠뿐이다.

엊그제 올 때는 그렇게 눈부시게 파랗던 강물이 이제는 잿빛이다. 화려한 천연색의 풍경이 이렇게 한 순간 흑백으로 바뀌어 버리다니. 위험은 하지만 가장 극적인 대조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행운인 셈이다.

길은 한없이 이어져 있다. 달려 올 때는 가깝더니, 기어 갈 때는 아득하다. 어쩌다 눈길을 걸어가는 산속 마을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은 작은 활을 메고 있다. 사냥을 가는 것일까? 짐을 잔뜩 멘 사람들도 마주친다. 그들은 차를 앞질러 걷는다. 그저 얇은 운동화에 양말만 신고, 온통 젖은 채로 그들은 어디로 가는 길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온갖 장애물이 길을 막는다. 가는 시간보다 서서 길을 치우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도 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강 건너편의 차마고도 옛 길은 칼로 금을 그어놓은 것처럼 선 하나로 남아 있다.

매표소를 지나자 길의 눈이 조금 줄어든다. 이제 괜찮은가보다 하며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산굽이를 하나 돌자 또 눈 덮인 길이다. 곳곳에 사태가 나 있고, 바위도 여전히 굴러 떨어져 있다. 그래도 누지앙 제1만 근처보다는 덜 미끄럽다.

몇 시간을 그렇게 걷듯이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춘다. 길 앞을 보던 마황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마어마한 눈사태가 길을 막고 있다. 삽으로는 도저히 치울 수 없는 눈덩이다. 산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눈이 쌓여 있다.

눈 사태 겨우겨우 헤쳐 온 길 앞에 어마어마한 눈이 사태 나 있다. 탈출 불가능일까?
눈 사태겨우겨우 헤쳐 온 길 앞에 어마어마한 눈이 사태 나 있다. 탈출 불가능일까? ⓒ 최성수

모두들 차에서 내려 어마어마한 눈사태를 바라볼 뿐, 어떤 방법도 없다. 정신이 아득해 진다. 한 곳만 사태가 난 것이 아니다. 앞의 사태 난 곳 너머에 그보다는 좀 작지만 역시 손으로 치울 수 없을 정도의 눈이 또 사태나 있다.

마황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침통하게 입을 연다.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면 언제나 이 길을 나올 수 있을까? 나오기는 할 수 있을까? 날씨가 풀려 눈이 녹기 시작하면 길 위쪽 산에서 어마어마한 눈이 밀려 내려올 것 같다. 눈이 녹아 물이 되면 아예 흙더미 사태가 날 것도 같다. 그러면 한동안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닐까?

아득한 마음에 온 길을 돌아보는데, 강 건너 산 쪽에서 우르릉 소리가 들린다. 비탈진 산에서 눈사태가 나고 있는 중이다. 거대한 눈이 산을 뭉개며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신의 거처에 잘못 든 외지인에게 내리는 경고일까?

눈 사태 돌아보니 내 눈 앞에서 눈사태가 나고 있다. 흘러내리는 눈과 그 소리가 무섭다.
눈 사태돌아보니 내 눈 앞에서 눈사태가 나고 있다. 흘러내리는 눈과 그 소리가 무섭다. ⓒ 최성수

“여기서 꽁산까지 얼마나 되냐? 걸어가겠다.”

거의 꽁산에 다 왔을 거라는 짐작이 들어서 묻는다. 그러자 마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23키로 정도다. 너희 같은 외국인은 못 걸어간다. 저 사람들 같으면 걸어갈 수도 있지만.”

마황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짐을 잔뜩 멘 사람들이 사태 난 눈 위를 넘어 건너편으로 걸어간다. 마황이 뭐라고 말을 하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눈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포크레인이다. 포크레인이 와서 눈을 치워야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나, 정말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막막하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곧 춘절이 다가오는데, 돌아가는 비행기 표나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개학도 머지않았는데 출근도 못하는 것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 진다.

어쩔 수 없다 싶어 막 지프로 가려는데, 마황의 친구가 눈 더미 건너편을 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얼른 그쪽을 보고 나도, 아내도 모두 박수를 친다. 마황은 합장을 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눈사태 난 저쪽으로 커다란 포크레인이 나타나 부릉대며 눈을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막 돌아가려는 순간, 정말 하늘이 도운 것처럼 포크레인이 나타났으니 그 감격을 어떻게 더 말할 수 있을까? 앞쪽 눈 더미가 차 지나갈 만큼 갈라지고 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마황과 그의 친구가 우리 앞의 눈 더미를 걸어 넘어가 그 사람들과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우리 쪽을 손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더니 사람들이 우리 앞의 눈 더미를 넘어 건너온다. 방송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있다.

눈 사태 우리 일행을 찍는 중국 텔레비전 카메라 맨
눈 사태우리 일행을 찍는 중국 텔레비전 카메라 맨 ⓒ 최성수

마방 40키로가 넘는 눈길을 걸어온 사람들. 그들이 바로 현재의 마방이 아닐까? 그들은 눈 사태난 길을 터벅터벅 걸어 길을 재촉했다.
마방40키로가 넘는 눈길을 걸어온 사람들. 그들이 바로 현재의 마방이 아닐까? 그들은 눈 사태난 길을 터벅터벅 걸어 길을 재촉했다. ⓒ 최성수

눈을 넘어온 그들이 우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황이 다시 설명을 한다. 한국 사람들인데 삥중뤄에 갇혀 있다가 지금 나오는 길이라는 말이다. 촬영 팀과 잘 통하지 않는 몇 마디를 나누고, 지방 정부 관리인 듯한 사람들과도 악수를 나눈다. 후에 쿤밍으로 돌아와, 지인인 병규씨의 아내로부터 우리 소식이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윽고 포크레인이 우리 앞의 눈 더미를 몇 번 밀어낸다. 그러자 차 한 대 지나갈 길이 뚫린다. 마침내 완전하게 삥중뤄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여전히 길에는 눈이 쌓여있지만, 이미 포크레인이 한 번 치운 터라 지프는 제법 속력을 내며 달린다. 꽁산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적다.

길을 뚫다! 돌아서려는 순간 나타나 길을 뚫어준 포크레인.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길을 뚫다!돌아서려는 순간 나타나 길을 뚫어준 포크레인.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 최성수

길이 끝나도 누지앙은 흐른다

마황은 우리를 꽁산의 깨끗한 빈관에 데려다주고, 빈관 주인에게 내일 아침 출발하는 리우쿠행 버스표를 끊어주라고 친절히 부탁한 후 다시 삥중뤄로 돌아간다. 그가 탄 지프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오래도록 길 가에 서 있다.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 사람이지만, 그가 우리에게 베풀어준 호의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되는 것인지를 그를 통해 새삼 깨닫는다.

마황이 잡아 준 빈관은 문을 열면 누지앙아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흐르는 물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방에 짐을 풀어놓고, 꽁산 시내 산책을 나선다. 무사히 탈출했다는 안도감이 추적추적 내리는 꽁산의 빗줄기조차 푸근하게 느끼게 한다.

꽁산은 비탈에 형성된 도시다. 골짜기에 건물을 짓다 보니 도시가 아래에서 위로 이어지게 된 것이리라. 길의 끝까지 걸어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이어진다. 그 길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마방로(馬幇路)다. 길 이름만으로도 차마고도의 옛 도시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도시 명칭은 까오리꽁산에서 따온 이름이리라.

마방 꽁산의 마방로를 묵묵히 걸어 사라지는 사람들, 산 사태 난 눈길에서 우리와 만났던 그 사람들이다.
마방꽁산의 마방로를 묵묵히 걸어 사라지는 사람들, 산 사태 난 눈길에서 우리와 만났던 그 사람들이다. ⓒ 최성수

나는 마치 마방이라도 된 듯, 마방로를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그때, 아래에서 짐을 가득 멘 사람 여럿이 마방로를 따라 올라오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차를 타고 온 삥중뤄의 초입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태 난 눈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다. 눈길을 헤치며 그 먼 길을 걸어오다니! 그들이야말로 현재의 마방인 셈이다. 새삼 감동이 밀려온다. 때 절은 운동화에 낡은 양말인 채로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경이롭다.

그들은 곁눈질 한 번 없이 마방로를 묵묵히 걷는다. 뒤를 따라 가보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렇다고 뛰는 것도 아니다. 그저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걸을 뿐이다. 순식간에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린 사람들. 나는 내가 오래 전 마방의 환영을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빠져든다.

그날 밤새도록 누지앙의 물소리와 빗소리는 내 귓전을 흔들어대고, 나는 꿈속에 푸른 누지앙 강물에 새겨진 차마고도를 따라 말을 몰고 먼 길 떠나는 마방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누지앙을 따라 하루 종일 중빠(中巴:중형 버스)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대조 들어갈 때 이렇게 푸르던 누지앙 물빛이 나올 때는 이렇게 흑백의 담담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대조들어갈 때 이렇게 푸르던 누지앙 물빛이 나올 때는 이렇게 흑백의 담담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 최성수

중빠에는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살았을 누지앙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연신 담배를 피워대던 사내들과, 통로에 가래침을 뱉어대던 사람과, 내가 즉석 사진기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자 갑자기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나를 향해 씩 웃으며 자기도 찍어달라고 하던 때가 꼬질꼬질한 양복을 입은 중년의 아저씨-그는 내가 찍어준 사진을 소중히 양복 속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보곤 했다. 그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평생 처음 자기 사진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들은 모두 삶의 온갖 신산(辛酸)을 이겨낸 누지앙 같은 표정이었다.

버스는 빗줄기 속을 쉬지 않고 달렸다. 리우쿠(六庫)가 가까워질수록 누지앙 물은 점점 탁해지고 거세졌고, 때로는 비에 젖은 채 쉬는 말들과 아득하게 다리를 건너 마을로 사라지는 마방의 무리들이 시간 속의 흔적처럼 스쳐 지나가던 길, 일하다 허리를 펴면 굴러 떨어질 것처럼 가파른 비탈 밭이 그 길에 있었다.

아침 아홉시에 출발한 중빠가 리우쿠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경, 겨우 일곱 시간 누지앙을 따라 흘러내려왔지만, 나는 수천 년 전의 아득한 과거에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신 담배를 피우고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운전을 하던 젊은 운전기사의 신기한 재주가 우리를 시간 속에서 끌고 나온 것일까?

누지앙 리우쿠에서 바라본 누지앙. 이제 저 강은 빠오산을 거쳐 미얀마로 흘러간다. 그리고 나의 누지앙 여행도 여기에서 끝난다.
누지앙리우쿠에서 바라본 누지앙. 이제 저 강은 빠오산을 거쳐 미얀마로 흘러간다. 그리고 나의 누지앙 여행도 여기에서 끝난다. ⓒ 최성수

천리 누지앙 여행의 종착점인 리우쿠에서, 이제는 거대한 흙탕물이 되어 아득하게 흘러 사라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날 나는 한 잔의 맥주를 마셨다. 저 물길을 따라 떠돈 며칠, 그 천리의 기억이 새삼 아득하다. 밤이 되자 누지앙을 가로지르는 향양교(向陽橋)에는 색색의 전깃불이 켜진다. 불빛은 강물위에 어룽져 흐린 물빛을 지운다.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리는 누지앙 강가의 밤 풍경 속으로 문득 한 자락 노래가 들렸다. 환청이었을까? 그 노래는 내가 흘러갔던 누지앙에서 풍경처럼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노래였다. 

삥중뤄 사람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앙티안티안, <더 라무> 카페 주인 마황, 동북지방에서 왔다는 왕시우주안, 엄마 등에 업혀있는 차와룽에서 온 티베트 아이. 모두들 삥중뤄 여행 친구들이었다.
삥중뤄 사람들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앙티안티안, <더 라무> 카페 주인 마황, 동북지방에서 왔다는 왕시우주안, 엄마 등에 업혀있는 차와룽에서 온 티베트 아이. 모두들 삥중뤄 여행 친구들이었다. ⓒ 최성수

나 어렸을 때
한 그루 소나무처럼 자랐네.
산 위에서 노래 부르면
그 소리 산 아래서 들을 수 있었네.
산 아래서 노래하면
그 소리 산 위에서 들을 수 있었네.
달음박질치면
아가씨들 내 모습 흘낏거렸네.
일어나 노래하면
아가씨들 모여 화답했네.
달려보지 않은 길 없었고,
꺾어보지 않은 꽃 없었네.
이제 늙었네.
이제 바랬네.
허리는 활처럼 휘고
다리는 절룩거리네.
길에서 달릴 수도 없네.
노래 한 곡 해도
화답하는 이 하나 없네.
노래 열 곡 해도
한 소절 들어주는 이 없네.
이제 나는 홀로인 사람
이제 나는 외로운 사람
그저 화롯가에 앉아 눈물로 빚은 술 마시고
눈물에 말은 밥 먹을 뿐이네.
   --리수족(傈僳族)민요 <눈물의 노래(花花調)>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누지앙#삥중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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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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