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회진포구에 갯냄새가 가득하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실려 오는 갯내음은 향기롭다. 된장물회를 맛보기 위해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아주머니가 운영한다는 포구 모퉁이의 조그마한 식당을 찾아갔다. 그 식당(덕성식당)은 길목식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낯선 얼굴이다. 메뉴에 된장물회는 없다. 바지락 칼국수가 눈에 잡힌다.
"바지락 칼국수 맛있어요?""몰것소, 나까지는 잘 한다고 한디.""그럼, 바지락 칼국수로 주세요."
바지락, 지금(3~4월)이 제일 맛있어
식당 주방에 놓인 바지락이 물을 찍 뿌려대는가 하면 모두가 살아 움직인다. 바지락은 성장이 빠른 3~4월에 가장 맛이 좋다. 강진만 청정해역에서 잡아와서인지 싱싱함이 유별나다. 아주머니는 바지락이 담긴 통에 옛날 10원짜리 동전을 넣어 해감을 시킨다고 한다.
"동전을 넣으면 바지락이 살아있어 나쁜 걸 싹 뿜어 낸다요. 봄철에는 산소공급을 안 해도 3~4일은 살아요."양은솥단지에 육수를 부은 후 깨끗이 씻어낸 바지락을 넣어 먼저 삶는다. 육수는 양파와 대파, 무, 다시마, 멸치 등으로 미리 만들어 놨다.
"육수는 미리 싹 해놔요.""육수에 별거 다 들어가네요.""워매, 아저씨! 그래라. 감자도 넣고, 바지락 깐 것도 넣고 쌩 것도 넣고 그래라."밀가루 반죽 역시 미리 해서 냉장고에서 꼬박 하루를 숙성한다. '저걸 방망이로 밀려나?' 생각하고 살폈다. 기계에 넣자 순식간에 납작하게 되어 나온다. 밀가루를 뿌려가며 둘둘 말아 도마 위에서 날렵한 솜씨로 송송 썰어낸다.
전라도 말로 진정한 개미(맛)가 담겨있다
육수가 펄펄 끓자 면을 털어 넣는다. 애호박을 넣어 센 불에서 한소끔 끓여낸다. 다시마 가루를 넣고 소금 간을 한 뒤 계란지단을 고명으로 올려 손님상에 낸다. 바지락 칼국수가 푸짐하다. 바지락의 싱싱함이 살아서일까. 그 맛이 너무 좋다. 바지락 칼국수에 김가루를 살짝 뿌리자 고소함이 살아난다.
찬은 5가지다. 깐 바지락과 두부를 볶아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두부조림, 회진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감태무침이 맛깔스럽다. 김장배추 속에 박아두었다 꺼내 양념한 기다란 무김치는 옛 맛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순수한 옛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바지락 칼국수(4.500원)에는 전라도 말로 진정한 개미(맛)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