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항주 입구 고속도로 항주 톨게이트
항주 입구고속도로 항주 톨게이트 ⓒ 김갑수
 
"말에게 물을 좀 마시도록 하시게."
젊은이는 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전망 좋은 뱃머리 부근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한사코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선장과 도사공은 조심스레 고삐를 잡고 말을 배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항주까지는 얼마나 소요될 것 같소?"
물론 그 젊은이는 김태수였고, 그는 백주원을 찾으러 나선 것이었다.

"바람이 좋아서 모레 새벽이면 떨어질 것 같습니다."
김태수는 말없이 하구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준비되는 대로 출항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김태수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마포나루는 북적대고 있었다. 그곳은 예로부터 이제까지 관광의 명소이자 수상 교통의 요지다웠다. 수양버들 사이로 보이는 전망이 좋아서 강변에는 유명한 정자가 많았다. 서해의 배들은 물론 전국 각지의 선박들이 마포에서 짐을 풀었다. 게다가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뗏목들까지 이곳에 와서 묶인 줄을 풀고 목재로 상품화되었으니, 마포나루가 조용했던 날은 하루도 없을 성싶었다.
 
용산항이 세곡이나 세수물품을 많이 하역한 반면 마포는 서울 장안의 생활필수품들을 주로 취급했다. 특히 마포의 새우젓은 유명했다. 그 밖에도 멸치젓, 조개젓, 오징어젓, 꼴뚜기젓 등은 마포를 통해 들어오는 것이 가장 선도가 높았다. 인천, 군산과 같은 가까운 서해 항구는 물론 목포, 흑산도의 어물도 들어왔으며, 심지어는 마산, 속초의 배까지도 마포나루에 닻을 내렸다.
 
그래서 마포의 상품은 서울 숭례문의 칠패(七牌)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상업이 성하다 보니 자연히 상인은 물론 객주, 사공이 많았고, 왈짜, 설레꾼, 무뢰배들도 모여들었다. 거기다가 사당, 색주가, 코머리, 들병이들과 유랑 매춘부까지 끼어들어 미상불 마포 일대는 파시처럼 흥청거렸다.
 
작년 봄 백주원을 그렇게 황망히 떠나보낸 김태수는 최도애와의 결혼을 서둘렀다. 그러자 아버지 김인용은 아들을 사뭇 신뢰하게 되었다. 최도애는 결혼 석 달 만에 임신이 확인되었다. 아버지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예정된 달수가 차자, 최도애는 제 얼굴을 빼어 닮은 아들을 순산했다. 아버지는 자진해서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는 처음 약속보다는 적었지만 전 재산의 반 정도를 아들의 명의로 바꿔 주었다.
 
"아버님,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 하겠습니다."
그는 중국 유학을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김태수에게 특별한 유학 계획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무조건 백주원을 만나고 싶었다. 모든 것은 그 다음에나 생각해 볼 일이었던 것이다.
 
바다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김태수는 하늘에 새싹처럼 돋기 시작하는 별들을 보다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볼에 대 보았다. 그것은 백주원이 남기고 간 옥빛 두건이었다. 김태수는 뱃머리 쪽 갑판에 주저앉은 채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날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바람이 순조롭다고 선장이 말했다. 중국 황하의 흙탕물이 흘러들어 황해라고 한다고 했다. 김태수는 황해로부터 황골, 황혼, 황천이라는 단어들을 연상해 보았다. 황골은 죽은 이의 뼈를 이르고, 황혼은 늙음을 비유하고, 황천은 저승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르 황'에는 죽음과 통하는 이미지가 있는가 보았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는 푸르렀다. 갈수록 바다는 눈이 부셨다. 먼 하늘 갈매기들의 비행이 경쾌해 보였다. 돛은 바람을 듬뿍 머금었는지 보기 좋게 부풀어 있었다.
 
항해는 예정보다 한 나절이 더 소요되었다. 저녁이 지나 항주에 도착한 그는 황강과 함께 한 객사에 일단 여장을 풀었다. 잠이 쉬 올 것 같지 않았다. 태수는 아버지와 아내와 아기를 한 번씩 생각해 보다가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동제사와 박달학원
 
작년에 신규식은 손중산이 이끄는 중국혁명동맹회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그는 이미 신정이라는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무창 봉기에 참여해 용감히 싸움으로써 많은 중국인 친구를 얻게 되었다.
 
그는 무창 봉기의 총사령관 황흥에게 친서를 보냈다.
 
의로운 북소리가 사방을 울리고 거센 바람은 중원을 몰아치고 있습니다. 햇빛 아래 반딧불처럼 저는 조금도 보탬이 안 되어 안타깝습니다. 대륙이 환호하고 있으니 진정 봄은 오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치대로 풀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거스르겠습니까?
 
또한 그는 혁명동맹회에서 발행하는 <민권보>에 거금을 기탁했다.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혁명동맹회의 핵심 인물인 호한민, 송교인 등이 신규식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이미 한국인 신규식의 존재는 중국 최고 지도자 손중산에게도 뚜렷이 인식되어 있었다. 마침내 봉건 제국 청나라는 무너지고 있었다. 손중산의 신해혁명이 성공한 것이었다. 손중산이 남경에서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에 추대되자 신규식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신규식은 손중산에게 축시를 지어 보냈다.
 
공화정의 새로운 세월
낡은 세상을 바꿔버렸네
삼라만상은 기뻐서 웃고
중산은 만세에 추앙되네.
 
신규식은 상해에 들어오기 전 제국주의에 유린당하고 있는 중국 인민들의 참상을 본 적이 있었다. 선실을 가득 메운 아편 중독자들을 보면서 그는 동병상련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이제 그는 새로운 희망을 품어 가고 있었다. 그는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정부가 있어야 하고, 정부의 수립과 존속은 황흥과 손중산 등 중국 자본혁명가들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신해혁명에 대한 그의 태도가 그렇게도 진지했던 것이었다.
 
이제 신규식은 중국 혁명의 유일한 외국인 공로자로 자리 매겨져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는 손중산이 있고 조선에는 신정이 있다'는 말까지도 나돌게 되었다. 청나라 조정과 주중 일본 영사관은 현상금을 내걸고 신정을 수배했다. 그는 프랑스 조계지로 몸을 숨겼다.
 
시간이 흐르며 독립운동의 기지를 상해로 택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신규식은 조직과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그는 항주에 비밀 조직을 성공리에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제는 공식 단체가 필요해졌다. 당시 조선 교민은 주로 만주에 가 있었다. 반면에 애국 인사들은 중국 본토의 상해를 비롯해서 북경, 천진 등에 모여들고 있었다.
 
신규식이 처음 결성한 단체의 이름은 동제사였다. 동주공제(同舟共濟)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글자 그대로 한 배를 타고 함께 피안으로 가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이사장은 신규식이 직접 맡았다. 그는 대선배이자 사학자 박은식을 총재로 추대했다. 박은식은 1911년 가을 만주 환인현으로 망명했고, 1912년 봄에 북경으로 가서 조성환의 집에 머물렀었다. 그는 체포의 위기를 넘긴 후, 다시 상해로 도피해 있었다. 박은식이 상해에 온 것을 누구보다도 반긴 이는 신규식이었다.
 
동제사가 조직되자 국내와 만주로부터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사원은 점점 늘어나 3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북경에서 헤어진 동기 조성환을 비롯하여 신채호, 김규식, 조소앙, 정인보, 박찬익, 민제호 등이 모두 동제사의 사원이 되었다.
 
신채호는 신규식과 동향이자 동년배 격의 후배였다. 이미 신규식의 집 아래층은 상해에 새로 온 사람들의 임시 거처가 되어 있었다. 신규식은 그곳에서 영어강습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7, 8명 이상의 학생이 유숙했다. 학생들과 더불어 신채호는 아래층의 장기 투숙자였다.
 
신채호는 성균관 박사 출신의 논객이고 사학자였다. 그는 신민회의 주력 회원을 거쳐 1910년 청도에 가서 안창호와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한 후,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권업신문을 발행했다. 그는 틈을 내 만주와 백두산 등의 한민족 고대 활동 무대를 답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상해로 온 것이었다.
 
훗날 그는 안중근이 죽은 여순감옥에서 10년 형을 받고 복역 중 뇌일혈로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투쟁가였다. '독립은 주어지지 않으니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운동 신조였다.
 
신채호는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정의한 바 있었다. 그는 고려 묘청이 서경 천도를 주장하며 원과 맞서자고 나선 거사를 가리켜, '조선 역사 1천년 제1대 사건'으로 자리 매김하는 등 지극히 자존적인 민족사관을 피력하였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매혹적인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동제사#항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