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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위 자주파도 아니고 활동가 축에도 못 드는, 그저 생업에 여념이 없는 평당원(지역위원회 대의원)입니다.

 

어려운 길을 떠나시는 어제의 당원 동지들에게 한 말씀만 올립니다.

 

심상정 비대위가 내놓은 소위 '혁신안'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분당은 기정사실임을 예감했지만, 저는 마지막까지 당의 단결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습니다.

 

사상과 이론이 다르고 방법론이 다르다는 것, 이미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서로 갈라져 있던 진보진영이 민주노동당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친 것은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있었으면' 이라는 염원에 답하기 위해, 한줌밖에 안 되는 진짜 진보개혁 세력이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 손석춘 선생 말씀대로 "아직도 한줌 밖에 안 되는 민주노동당마저 쪼갤 때인가",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조차 설득하지 못해 저주를 퍼붓는 논리와 가슴으로 대체 누구를 설득할 셈인가"는 아쉬움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내년 총선에서 소위 '종북주의자'들과 같은 당의 비례 국회의원으로 나서겠다고,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놓고 그 '종북주의자'들과 줄다리기를 하시던 분들이, 다른 이유도 아닌 바로 그 '종북주의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당을 깨자고 나서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의 말씀대로 '편향적 친북행위'는 분명 진보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보를 보수와 가르는 더 중요한 기준이 많지 않습니까? 전쟁과 신자유주의, 국가보안법, 비정규직 문제... 이런 전선들에서 서로 공유하는 가치를 위해 연대하며, 작은 허물은 잊고 그동안 함께 해 온 것이 아닙니까?

 

핵은 만들면서 제 인민도 먹여 살리지 못하는 비루한 제3세계 세습 독재정권에 대한 태도라는 문제가, 지금 갑자기 모든 것이 된 이유를 저는 아직 찾지 못하겠습니다.

 

조선일보의 팡파르가 요란스레 울리는 가운데 동지들을 '간첩', '종북'으로 낙인 찍고는 기어코 '청산'하자는 안을 '혁신안'이라 부르는 이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진보'란 어떤 진보일까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오롯이 가짜 진보는 아닐지라도, 아무래도 온전하고 건강한 진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몇 번을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정당하지도 불가피하지도 않은 지금의 분당은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분열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마당에, 남은 것은 갈라진 진보진영이 따로 또 같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준비하시는 동지들! 이제 밖을, 조금만 더 미래를 봅시다.

 

대운하, 교육 황폐화, 한미FTA와 민영화, 이라크 파병... 이명박 시대가 진보진영 모두에게 제기하는 과제들에 응답하다 보면, 별개의 진보정당으로 나뉘어질 우리들이 결국은 단결해서 헤쳐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하나의 당 깃발 아래 늘 함께하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깃발 아래 갈라져 사안별로 손 잡으며 그렇게 하겠지요.

 

분열의 상처와 감정이 골이 아무리 깊어도, 상황의 엄중함 자체가 그러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민중이 우리에게 요구할 것입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준비하시는 분들도, 여러분 나름대로는 당장의 조직적 분열을 더 큰 실천적 단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당에 남아 있는 동지들을 가리켜 "진보가 아니라 수구 중에서도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라며 "이런 이들하고 같이 '진보'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부르대는 현실과 유리된 어느 지식인의 허황된 주문은, 어차피 한 줌도 안 되는 구제불능의 종파주의자들과 게시판 폐인들을 제외하고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으로 '파병반대국민행동'이나 '한미FTA범국본' 같은 연대체에 민주노동당이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진보정당이 그에 불참하거나, 민주노동당을 쫓아내야만 함께할 수 있다고 나올 리야 있겠습니까?

 

새로운 진보정당의 여러분도 앞으로 거리에서 어제의 '당원 동지'들과 불가피하게 마주치게 되면 멋쩍게 웃으며 '아무개 동지'라고 부를 게 아닙니까?

 

서로가 무엇이 다르고, 왜 갈라서는지 얘기 할 만큼 다 하지 않았나요? 이제 그냥 깨끗하게 인정합시다. 떠나시는 동지들은 민주노동당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논쟁하며, 동지들의 신념과 방식대로 '생활 속 푸른 진보'의 또다른 길을 열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자주파 일색인 당(소위 '종북유일당')이라는 마타도어를 비롯해 우리 당을 중상모략하고 흠집내는 방식만은 피해 주십사하는 단서를 달겠습니다.

 

아직 민주노동당에는, 저처럼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며 자주파의 민족주의 정치와 확연히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당원들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따로 깃발을 세운 이상, 민주노동당을 흔들지 않으셔도 결국 같이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민주노동당은 그냥 놔 두시고, 진중권, 박노자처럼 자주파와 함께 하기가 부담스러워 망설이던 당 밖의 진보적 지식인들, 민주노총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급진적 청년들을 조직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회원들이 이랜드 해고노동자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운동권 정당', '데모 당'스러운 투쟁도 열심히 하시며 비정규직 노동자들 열정적으로 조직하십시오.

 

물론 이들에게도 제발 민주노동당이 '종북유일당이다', '간첩당이다' 하는 흑색선전만은 자제하고 페어플레이 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가 '진보정치연구소'(당 연구소이지만 지금은 분당 선동의 한 축이 된) 퇴폐 마사지 추문을 계속 걸고 넘어져 여러분의 당을 '새진보마사지당'이라 부르면 단결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8년 동안 정든 당과 동지들을 향해 '기생충', '광신도' 등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극언을 퍼붓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죽었다'라며 저주를 퍼부으십니다. 몇몇 게시판 폐인들은 가는 마당에 당 게시판에다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가득찬 저주의 글을 도배하는 식으로 똥물을 끼얹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시인이 노래했듯이, 우리들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분들께 '새로운 진보정당 힘차게 건설하시라'는 축사를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잎처럼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려 드리겠습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이 '종남(從南) 유일당'이 되든, '고전적 사민주의 정당'이 되든 어쨌거나 진보정당은 미우나 고우나 진보정당, 이명박 시대의 매운 겨울바람을 함께 맞을 우리 민주노동당의 동반자일 것입니다. 누가 더 잘 나가는지 경쟁심리 내세우기 전에, 일단 동반자는 든든할 수록 좋지 않습니까?

 

만약 앞으로 총선이나 지방선거 등에서 어느 지역에 우리 당이 후보를 내지 못했는데, 새로운 진보정당의 후보가 출마했다면 우리 당원들은 아마 그에게 투표할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솔직히 말해 떠나시는 동지들도 상당수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하실 거 맞지요?

 

물론 앞으로의 선거에서 더욱 바람직한 것은 두 진보정당이 민주노총 등 대중단체들을 비롯, 전쟁과 신자유주의와 보수 양당에 맞서는 다양한 진보개혁 세력까지 불러 모아 진보'대'연합을 결성, 공동 선거 대응을 하는 것일 겁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마주치고 함께 부대낄 사람들, 그때 서로 민망하여 고개 돌리고 외면하지 않도록... 헤어짐도 지저분하지 않게, 깔끔하고 품위있게 갈라섭시다. 우리, 동지의 얼굴로 분열합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동당 성동지역위원회' 사이트 당원게시판과 진보정치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진보정당#종북주의#일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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