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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사진작가 이시우(본명 이승구)씨에게 지난달 31일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 전부터 이씨를 구속하고, 징역 10년에 처해달라고 구형한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씨 자신도 무죄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놓고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사진작가의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법의 심판을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법정 밖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뜨거웠다.

 

하지만 재판부(제27형사부 재판장 한양석 부장판사)는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법정에서는 국가보안법과 같이 기본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래서 이 판결에 대해 사진작가 이시우 개인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보안법 등 6개 공소사실 모두 무죄

 

판결문은 무려 120여 쪽에 달한다. 그 중 이씨(이하 피고인)의 범죄혐의를 담은 검찰의 공소사실이 절반가량이다. 국가보안법의 5조 1항(자진지원 금품수수)·8조 1항(회합 통신)·7조 1항과 5항(찬양 고무 등) 위반, 군용항공기지법·군사시설보호법·해군기지법 위반 등의 6개 혐의사실이 이번 판결 대상이었다.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피고인의 활동내용을 파악해 보자. 50쪽 분량이 넘는 공소사실에 있는 사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수년간 전국의 미군부대, 비무장지대 등 군사보호 시설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메모지에 기록하였다.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와 자신이 기자로 일하던 통일뉴스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이 촬영한 사진과 군사시설 현황, 작전 계획 등 군사사항을 공개하였고, 북핵문제·전시작전통제권·주한미군 등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한 글과 자료를 올렸다.

 

그는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주한미군문제, 평화통일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여러차례 강의하였다. 피고인은 이른바 ‘친북인사’와 만났으며, 그들의 주장을 담은 글과 자료들을 홈페이지 등에 올렸으며 북한 출판물을 갖고 있었다.'

 

검찰의 주장은 이런 활동이 군사시설 보호 관련법을 위반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반국가단체를 지원할 목적으로 군사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피고인의 사진과 기고문, 그가 모으고 공개한 자료들이 북한을 고무 찬양한 것이라고 보았다.

 

"국가보안법, 헌법상 기본적 인권 부당하게 제한해선 안 된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한마디로 엄격했다. 이번 판결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앞서 국가보안법 적용의 판단기준을 내놓았다. 판결은 이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헌법상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후 "유추해석이나 확대해석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정신에 비추어서도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그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석하여야 한다"고 전제했다.

 

먼저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에 관한 부분이다. 판결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누구든지 문서·사진·동영상 등 원하는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므로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는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누구든지 원할 경우 자격이나 신분의 제한 없이 용이하게 접근이 가능한 것이라면 이는 기밀로서 보호할 실질적인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판단되지 아니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시민사회의 정부나 군에 대한 감시, 통제활동을 "우리 헌법에 의하여 당연히 보장되는 권리"로 보고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정부나 군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여 공개하는 행위를 하여 결과적으로 반국가단체 등에 유리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하더라도 그 행위자에게 반국가단체 등을 지원할 목적이 있었다고 쉽게 추단하여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통해 일반인 접근 가능한 것은 국가기밀로 볼 수 없어"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이 촬영하고 공개한 군사시설 사진들이 지뢰 매설 실태나 주변 자연경관이고, 유사한 사진들이 다수 일반에 이미 공개되었으므로, 기밀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이 미군기지 등을 보고 그린 모사도 등도 미국의 군사전문 인터넷 사이트에서 누구나 제한없이 내려받을 수 있는 것을 옮겨적은 것으로, 이를 통해 제3자가 기지 내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기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판결은 ▲ 피고인이 사진창작을 하면서 펴낸 <민통선 평화기행>이 문화관광부 선정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된 사실 ▲ 사진을 보더라도 군사시설물 위치를 알아내기 힘들다는 점 ▲ 촬영지역을 명시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반국가단체를 지원할 목적으로 촬영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와 같이 "피고인이 주한미군 기지들을 답사하여 조사할 당시 사진창작, 대인지뢰매설 실태조사, 유엔사 해체나 미군기지의 핵 화학무기 감시 등 평화운동 등의 의도 외에 북한 등의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를 지원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피고인이 홈페이지와 통일뉴스에 올린 '5027작전계획', '주한미군 통신체계도', '용산기지 지도' 등은 군사관련 정보라 하더라도 언론에 이미 보도된 사실이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이미 공개되어 기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북한 출판물 소지만으로 찬양, 고무 쉽게 추론해선 안 돼"

 

다음으로 재판부가 판단을 내린 것은 국가보안법상의 고무 ∙ 찬양(7조 1항)등과 이적표현물 제작 ∙ 소지 ∙ 반포(7조 5항)에 관한 부분이다. 판결은 이 조항들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어떤 언동이 단지 반국가단체 등의 주장과 일치한다거나 주장·활동을 긍정적으로평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찬양·고무·선전·동조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강연과 기고문들에 대해 "미국에 대한 부정적 태도나 반외세, 반미적 주장은 우리 사회나 국내 외의 학계 일각에서 주장되는 것으로 헌법이 용인하는 범위를 넘지 않는다"고 이적성을 부인했다.  

 

또한 판결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남북교류 협력 분위기로 북한자료 열람이 허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할 목적이 있었다고 쉽게 추론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재판부는 피고인이 홈페이지에 옮겨 놓은 북미관계,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문건과 피고인이 소지한 북한 출판물 등을 이적표현물로 인정하면서도, 이 문건들이 사진 창작 저술활동을 하는 피고인에게 참고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점 등을 들어 이적 목적이 없다고 보았다.   

 

끝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의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에 대해서 피고인이 인터넷에 군사시설 사진을 게시한 것만으로는 법에서 정한 '문서나 도화, 도서의 발간'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법조항을 유추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에 없는 경우에 해당되고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은 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검찰과 법원의 시각차… 대법원 판단은?

 

이번 판결은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시각차를 확인해줬다.

 

1심 판결에 검찰이 항소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2심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번 판결에서 더욱 주목되는 점은 국가보안법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일수록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오랜만에 무죄판결이 나오게 된 것도, 역설적이게도 재판부가 법조문에 엄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국가보안법 1조 2항)

 

법원은 법을 바꿀 수 없다.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만이 법원의 몫이다.

 

이 판결이 있기 하루 전날인 1월 30일 어느 법원은 한국현대사 관련 서적을 출간하여 널리 알려진 진보적 저술가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노동조합이 마련한 강연회에 강사로 나와서 '주체사상'을 찬양·선전·동조하는 내용의 강의교재를 통해 북한을 고무 ·찬양하였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냉혹한 현실이다.


#국가보안법#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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