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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겉그림
독서일기겉그림 ⓒ 생각의 나무

살면서 부닥치는 이야기들을 확 줄여 그 중에서 가장 풀기 힘든 문제 두 가지를 찾아본다면 어떤 것이 나올까. 끝없이 올라가는 일과 그 반대로 끝없이 내려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만약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알 수 없는 곳으로 한없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독서일기>를 읽는 마음은 조금은 그런 마음이다. 한없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지은이는 ‘독서란 일종의 대화다’라고 했다. 외교 분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지은이 알베르토 망구엘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세상, 다양한 사람을 보는 일에 익숙했다. 어느덧 그는 아버지처럼 풍성한 연륜과 정보를 차곡차곡 쌓았고, 이를 한껏 살려 버무린 책이 바로 <독서일기>이다.

 

이 책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한 달에 한 권씩 깊숙이 음미한 책 이야기, 여행 중 겪은 주변 이야기, 그리고 자기 생각을 잘 버무려 놓았다. 그러다보니, 읽는 내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하지만 재밌는' 책이다. 엮어가는 재미, 생각하는 재미라면 이 책이 제 격이다.

 

<독서일기>는 어찌 보면 읽기 어려운 책이다. 다른 이가 매만지는 걸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 ‘일기’니까. 그러면서도 <독서일기>는 ‘책읽기’를 말하는 책이어서 언뜻 달콤한 향기를 풍기듯 독자를 유혹하기도 한다. 그 묘한 만남, 독서가 일기를 만난 이야기를 찾아가 본다.

 

엉뚱하고 풍성하고 깊고 다양하다, 독서가 일기를 만났을 때

 

 

알베르토 망구엘

194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다. 시력을 잃어가던 세계적인 문호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그의 독특한 촌평에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전에도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지만 이 만남을 계기로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된다. 현재는 망구엘은 캐나다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최고의 작가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저서로는 『The Dictionary of Imaginary places』,『Black Water』, 『The Gates of Paradise』 등이 있으며 특히 『News From a Foreign Country Came』으로 문학성을 높이 인정받았다.

 

출처:

생각의 나무(itreebook.com)

꼬박 한 해 동안 지은이 알베르토 망구엘은 달마다 책 한 권을 들고 세상을 누볐다. 그리고 그 자취를 남겼다. 그 자취는 프랑스에서 처음 나타났고 캐나다에 마지막 자취를 남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해 기록이어서 그 다음 발자취는 오직 지은이만 안다.

 

지은이에 관해 꽤 확실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는 지금도 무언가를 읽고 있고 어딘가를 누비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달마다 한 권씩만 묵직하게 읽고 음미한 터라 한 해 동안 남긴 발자취만으로도 그 향기가 깊다.

 

영국, 독일, 아르헨티나, 프랑스, 캐나다 등등 지은이가 다닌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그것도 꾸준하고 깊이 있는 독서일기를 쓰면서.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 여러 곳을 다닌 그는 그 달에 읽은 책 내용, 여행하며 겪은 얘기, 독서하며 문득 마주친 주변 이야기, 문득 떠오른 다른 책 글귀 등 서로 다른 세상을 잘도 버무렸다. 조금 어렵게 그리고 한편으론 조금 더 재밌게.

 

읽다보니, 여느 독서가 못지 않은 독서광인 그가 다소 엉뚱한 만남처럼 보이는 이 책을 짓기로 맘 먹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인즉 이랬다.

 

“그러다가 1년 동안 한 달에 한 권씩 다시 읽는다면 개인적인 일기와 일반적인 책의 중간쯤 되는 뭔가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싹튼 생각과 성찰, 여행에서 받은 인상들, 친구들 또는 공사를 망라한 여러 가지 일의 짧은 스케치를 담은 한 권의 책. 어떤 책들을 읽을지 목록을 뽑아봤다.”(이 책, 9쪽)

 

그렇게 뽑은 책이 바로 일 년 치 분량인 열 두 권인데 한 권 외에는 솔직히 좀 생소했다. 그래도 좀 위안이 된 것이 있다면 추운 1월 내내 지은이가 읽은 책이 제목만으로도 익숙한 <돈키호테>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그 반가움이 없었다면 은밀함이 그득한 일기와 그에 못지않게 개인적인 느낌이 가득한 독서가 어우러진 이 책을 쉽사리 읽을 수 없었을 게다.

 

그가 읽은 책 중에는 일본 헤이안 시대에 살며 일본 황후를 모시던 궁녀가 지은 <필로우 북>이라는 책도 있는데, '필로우 북'이란 목침(베개) 밑 서랍에 넣어둔 공책을 말한다. 이 책은, 갑갑하기 그지 없었을 궁중 생활을 하면서 궁중을 드나드는 사람, 평범한 일상, 역시 평범하도 지루할 법도 했을 자기 삶을 기록한 개인기록물이다.

 

사실 궁녀 세이 쇼나곤(Sei Shonagon)이 남긴 <필로우 북 The Pillow-Book>은 개인기록인 일기에 해당한다. 다만, 여느 일기가 다 그렇듯 이제는 잊혀졌을 옛 시대 풍경, 옛 사람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책이다. 물론, 일본 헤이안 시대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꽤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 일기이다. 그래서 때론 조금은 은밀하다든가 지은이 본인에게만 중요하다싶을 소소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먼지를 털다가 책에서 우수수 떨어진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죽 적어놓았다든가, 뜬금없이 떠오른 집안 물건 목록을 또 죽 적어놓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물론 이 책은 그저 개인기록에 불과한 일기가 아니라 독서일기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정보도 있는데, 달마다 읽기로 정한 지정도서 외에 다른 책을 자연스럽게 많이 언급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책 목록을 좌르륵 쏟아내거나 좋은 글귀를 인용하기도 한다. 원래 읽기로 했던 책과 다른 책을 적절히 엮는 식으로 지은이는 독서일기 안에 참 많은 세상을 담는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비교해보는 산초와 돈키호테. 니콜라스 랜킨은 독특하고 훌륭한 여행기인 『죽은 자의 금궤』에서 “하이드의 머리글자인 H와 지킬의 머리글자 J 사이의 알파벳이 I(나)인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이 책, 197쪽/2003년 1월 <돈키호테> 편에서.)

 

발길 닿는 대로 아니 생각이 닿는 대로, 지은이는 책과 그 저자, 세상, 그리고 자신까지 얽어매고 풀었다를 반복하며 독서일기 한 장 한 장을 엮어나간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이런 식으로 지은이는 무언가를 적고 싶은 날마다 그 날 요일을 적고 독서일기를 써 내려가곤 한다.

 

그 꾸준한 열심과 참을성, 그리고 진지함이 잘 어우러져 태어난 책인 만큼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처음부터 자못 여유로운 마음을 안고 지은이와 함께 독서여행을 떠난다 생각하자. 미처 가보지 못한 많은 나라, 다양한 사람, 그리고 다양한 바람 냄새가 어느 덧 독자들 눈과 코와 온 몸을 휘감으며 깊이 스며들지 모른다. 깊은 사색까지 더해서.

 

만약, 이 책을 정말 만나고픈 마음이 들게 할 만한 이야기 한 줄이 더 필요하다면, 이건 어떤가. 어느 날 밤 자정에 지은이가 남긴 강한 향기 몇 줄.

 

“향수라는 뜻의 ‘노스탤지어’는 1688년 6월 22일에 만들어졌다. 알자스의 의대생이었던 요하네스 호퍼는 『노스탤지어』에 대한 의학 논문에서 산골 출신인 스위스 병사들의 방을 설명하기 위해 노스토스(귀환)와 알고스(아픔)를 합성해 이 말을 만들었다.”(이 책, 171쪽/2002.12.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편에서.)

 

개인적인 일기에 담긴 독서 기록 치고는 꽤 재밌을뿐더러 갖가지 소식도 다양하니 더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할 필요가 없겠다. <독서일기>, 남은 이야기는 이제 독자에게 넘긴다.

 

 

<독서일기>에서 지은이가 읽은 책 목록

(2002.6.~2003.5.)

 

2002년
6월 <모렐의 발명 The Invention of Morel>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7월 <모로 박사의 섬 The Island of Dr. Moreau> H. G. 웰스
8월 <킴 Kim> 러디어드 키플링
9월 <무덤 저편의 회고록 Memoirs from beyond the Grave> 프랑수아-르데 드 샤토브리앙
10월 <네 사람의 서명 The Sign of Four> 아서 코넌 도일
11월 <친화력 Elective Affinities>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2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The Wind in the Willows> 케네스 그레이엄

 

2003년
1월 <돈키호테 Don Quixote> 미겔 데 세르반테스
2월 <타르타르 스텝 The Tartar Steppe> 디노 부차티
3월 <필로우 북 The Pillow-Book> 세이 쇼나곤
4월 <떠오름 Surfacing> 마거릿 애트우드
5월 <브라스 쿠바스의 유고 회고록 The Posthumous Memoirs of Brás Cubas> 호아킴 마리아 마차도 데 아시스

덧붙이는 글 |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생각의 나무, 2006.
(원서)  by Alberto Manguel, 2004.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수정 옮김, 생각의나무(2006)


#독서일기#알베르토 망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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