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은 조계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조선말기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대웅전은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정읍에 근거를 둔 신흥종교였던 보천교의 법당인 십일전 건물이었다. 1922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교주 차경석이 죽은 후 뜯겨져 이리저리 팔려나갔다. 조계사 대웅전 건축에 쓰인 부재들 역시 1937∼1938년 사이에 그곳으로부터 옮겨온 것이다.
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보유자이기도 했던 조선 최후의 목수라고 불리기도 했던 배희한(1907~1997)은 조계사 대웅전 건축 내력에 대해 이렇게 구술하고 있다.
지금 저 견지동에 있는 조계사, 그거 우리 선생님이 했어. 조계사 그거는 새로 지은 게 아니야. 저 전라도 정읍에 있는 차천자 전실을 뜯어다 진 거야. 왜 차천자라구 한바탕 야단치구 그랬던 이 있잖아. 그이가 집 여러 채 지었어. 대궐 모냥으로 무척 컸대. 무슨 실, 무슨 실, 이렇게 여러 채 진 걸 죄 다른 사람이 사가구 여기서는 그저 전실 한 채만 뜯어와서 대우전 지은 거라구. - 조선 목수 배희한의 한평생 <이제 조선 톱에도 녹이 슬었네>(뿌리깊은나무 민중자서전 2,1991) 43쪽
배희한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도편수 최원식이다. 그리고 차천자란 보천교의 교주 차경석을 가리키는 말이다. 차경석은 보천교를 세워 스스로 천자라고 내세웠다. 99칸 대궐을 짓고 시중을 드는 시녀까지 두었다고 한다.
1936년, 그가 죽고나자 그 건물들의 부재는 낱낱이 뜯겨져서 일부는 전주 경기전 복원에 쓰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서울로 옮겨져 조계사 대웅전 건축에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대웅전 건물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건 기둥 하단의 유난히 긴 돌기둥이다. 네모난 이중 받침과 그 위에 다시 정교하게 다듬은 둥근 주춧돌을 놓은 다음에 기둥을 세웠다. 기둥 하단은 둥글고 긴 돌기둥이다. 여느 건물보다 돌기둥이 긴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다시 조선 목수 배희한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그거 지을 적에두 기둥이란 놈이 아주 짧디 짧아서 주지가 한 서너 자 이었으면 좋겠다구 그러니깐 우리 선생님이 있다가 "그거 이으면 숭허니깐 이을 것 없이 돌루다가 기둥대루 석 자씩을 동그랗게 맨들어 서 주추 위에다 놓구 그 우에다 기둥을 포개서 놓으며는 모냥두 있구 더 좋다"구 그랬어. 그러니깐 주지 "아 그거 좋다"구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거지. 그거 모르는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했을까 하구 그러지만 차천자 전실을 그거 뜯어올 적에 기둥이 짧아서 그렇게 헌 거라구. 차천자 전실을 뜯어다 지었어두 간 것두 많기는 많았지. 서까래두 죄 홀랑 갈구. 그리고 당가는 우리 선생님이 만들구 그랬지. - 위 책 44쪽
정읍에서 뜯어온 기둥을 그대로 쓰자니, 길이가 짧았던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돌기둥을 길게 세운 뒤 그 위에다 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도편수 최원식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만일 주지 말대로 기둥을 잇는 방법을 택했다면 얼마나 꼴불견이었겠는가.
조계사 대웅전은 건물이 아주 높다. 그에 따라 창호도 거대하기 짝이 없다. 정면 2분합문을 비롯하여 모두 꽃무늬가 화려하고 정교한 문살과 창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군데군데 새를 새겨넣었다. 새가 앉아 있는 모양도 제각기 다르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건물이 극락전이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극락전 중앙에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엔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문수보살이, 우측엔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시왕(十王)과 판관서기, 인왕들도 모셔져 있다.
극락전 2층에는 큰 설법전과 작은 설법전이 있다. 신도 교육과 문화강좌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쓰이는 곳이다.
고립과 '휴(休)'의 의미가 공존하는 곳
대웅전 마당에는 큰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사천왕을 방불케 한다. 이 회화나무 한 그루가 도심 속 사찰 조계사의 살벌한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나무 옆에는 7층석탑과 석가세존진신사리탑이 자리잡고 있다. 사리탑에는 1914년 스리랑카의 달마바라 스님이 모셔왔다는 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한다.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보살들이 쉴 새 없이 사리탑 주위를 돌고 있다. 새해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 걸어놓은 연등이 커다란 연처럼 마당을 장엄하고 있다. 하기사 진눈깨비가 내린다고 해서 쉬거나 잠들 소망이 어디 있겠는가.
방송국들은 해마다 4월, 초파일이면 이곳 조계사에서 열리는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을 앞다퉈 생중계한다. 조계사는 그만큼 불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낯익은 곳이다. 그러나 어떤 사물에 대해 익숙하다는 것과 정통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은 인간의 그러한 맹점을 경계하는 속담이다. 앎이란 즐기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써 유용한 것이다.
도심 속 사찰인 조계사는 오늘날 높다란 빌딩숲에 갇혀버린 하나의 '섬'이다. 섬이란 고립의 이미지를 풍기는 말이다. 그러나 고립이란 '휴(休)'의 의미를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쉰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위안하는 행위다. 조계사가 처한 불우한 환경이 특별시민들에겐 도리어 복이 되는 현상이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주마간산격일망정 오랫만에 조계사를 돌아보고나니, 서울에 대한 촌놈의 소외감이, 견디기 힘든 낯섦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은 듯하다. 자, 이제 낯섦에 대한 면역을 거쳤으니, 슬슬 서울 거리나 유람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