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앞자리에 앉은 이스라엘 녀석이 갑자기 좌석을 냅다 뒤로 휙 젖힌다. 내가 너무 불편하니 좌석을 앞으로 좀 접으면 안 되겠냐고 내 딴에는 최대한 유하게 말했는데, 단박에 단호한 노(NO)! 소리가 날아든다. 이건 자기 권리이니, 불편하면 나도 자기처럼 뒤로 젖히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그런 건가?'하고 나도 냅다 좌석을 뒤로 젖혔더니, 이번에는 뒷자리의 서양 여자가 죽는소리를 한다. 뒤를 돌아보니, 거기는 맨 뒤라 등받이를 뒤로 젖힐 수도 없으니 내가 봐도 그러면 안 되겠다.

 

"쏘리(Sorry)!"하고 등받이를 원위치시키고 보니, 앞뒤에 끼어서 샌드위치 꼴이다. 이러려고 내가 1200루피를 냈나? 이러고 20시간을 가야 하나? 성질이 부륵부륵난다.

 

어디를 둘러봐도 내 앞에 앉은 놈처럼 대짜로 누워가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이 이스라엘 패거리들은 시끄럽기까지 하다. 모두 피곤해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으련만, 차 안은 젊은 이스라엘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거의 잠실야구장 분위기다.

 

젋은 애들이 친구들이랑 여행을 왔으니 얼마나 신나겠어? 우리나라 애들도 그럴 거야…. 좋게 생각하려 노력해도,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젊은 혈기와 패거리 의식이 작용한다 해도, 우리나라 애들은 외국에 나와 저렇게까지 난장판은 아닐 것 같고…, 아니길 바란다.

 

통로 쪽으로 다리를 쭉뻗고 잠을 청하는데, 한 시간가량 달린 것 같은 버스가 갑자기 멈춘다. 창밖에는 칠흙 같은 어둠뿐. 차 안의 불도 꺼진 상태라 시계가 안 보여 몇 시인지도 모르겠는데 '곧 떠나겠지…'하는 바람과는 달리 버스는 움직일 줄을 모른다. '왜 못 가나?' 물어보려다 관둔다. 내가 이유를 안다고 버스가 움직일 것도 아니고….

 

만사 귀찮다. 어둠 속에 앞뒤로 늘어선 다른 차들의 윤곽이 보이는 걸로 봐서, 우리 차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오후 6시 도착은 애진작에 물 건너갔군…'하며 잤다 깼다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이차 저차에서 사람들이 한둘 내리는 게 보이기에 내려보니, 가파른 산비탈에 끝이 안 보이게 늘어선 차들. 이들이 말하는 이른바 '트레픽 잼(Traffic Jam : 교통 체증)' 상태가 벌어졌다.

 

인도의 도로들, 특히 대부분 산간도로들은 차 2대의 교차가 불가능하게 도로 폭이 좁다.
이 상태에서 서로 진행 방향이 다른 두 차가 도로 상에서 마주치게 되면, 우리나라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쳤을 때처럼 한 대가 후진해서 도로폭이 그나마 넓은 곳으로 가서 기다리면 나머지 한 대가 가까스로 그 옆을 빠져나가야 한다.

 

차이가 있다면 일이 생각대로 안 될 때 골목에서는 차가 긁히거나 찌그러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여기서는 맞바로 아무 안전장치 없이 낭떠러지로 다이빙하게 된다는 것.

 

이방인의 눈으로 볼 때는 제 정신으로 어찌 저 짓들을 할꼬? 싶은데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의 일인이지라 아무런 망설임이 없고, 나름대로 룰이 있는 듯 우리나라 골목길에서처럼 '니가 먼저 빼!'하며 시간 끄는 일 없이 서로 협조해서 신속하게 제 갈 길로 간다.

 

그런데 칠흙 같은 한밤중에는 이들에게도 차마 그게 무리였는지, 어느 지점에선가 마주 보고서 서게 된 2대의 차량 뒤로 뒤따라오던 차들이 차곡차곡 늘어서서 산 속에서 밤을 지새웠나 보다.

 

해가 뜨자마자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있더니, 곧 한 떼의 대형트럭들이 내려오고 우리 미니버스를 비롯한 레(Leh)로 향하는 차들에도 시동이 걸린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말 인도 여행 중에 격었던 일입니다.


#인도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