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 있어서 밑줄을 죽 그어 놓고 곰곰이 되새기면서 덮습니다.

책을 읽다가 덮습니다. 글쓴이가 왜 이런 얄팍하고 어설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갈기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옆에 몇 글자 적어 놓으면서 덮습니다.

… 역사의 장대한 흐름과 끝없이 광활한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 2005) 231쪽

우리가 쓰는 우리 말은 얼마나 ‘우리 말’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늘 쓰고 있는 말이지만, 참말로 말다운 말, 우리 삶을 담아내는 말을 쓰고 있을까요.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은 얼마나 ‘우리 밥’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늘 먹고 있는 밥이지만, 참말로 밥다운 밥, 우리 몸을 살찌우고 튼튼히 힘을 내어 이 세상 살아갈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밥을 먹고 있을까요.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은 얼마나 ‘우리 일’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늘 하는 일이라지만, 참말로 일다운 일, 우리 삶을 가꾸고 우리 뜻을 펼치며 우리 꿈을 이루어가는 가운데 나와 내 이웃이 모두 흐뭇하게 웃고 어깨동무하면서 나와 내 뒷사람까지도, 또 나와 내 앞사람까지도 하나가 되며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꾸어 가는 데에 조그마한 손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우리 사람’, ‘우리 이웃’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늘 만나는 사람이라지만, 참말로 서로서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이 세상을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웃이 아닌 적으로 여기지는 않는가요. 밟고 올라가야 할 계단으로 보거나, 내가 저이한테 밟힐 수 없다는 마음으로 불꽃 튀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요. 내가 만든 물건을 하나라도 더 잇속을 챙겨서 팔아먹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요.

 ┌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
 ├ 우주를 생각하면
 └ 우주라는 테두리에서 보면

우리는 누구한테 말을 걸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누가 하는 말을 들으며 살아가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가운데 말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 이야기를 듣는 사람 귀에 닿기 앞서, 먼저 내 마음속에서 얼마나 삭여진 뒤 나오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이야기를 읽는 사람 눈에 닿기 앞서, 먼저 내 머릿속에서 얼마나 되새긴 뒤 나오는가 생각해 봅니다.

서로서로 좀 더 넉넉히 껴안으려는 뜻으로 주고받는 말인지요. 서로서로 한결 따뜻하게 감싸려는 뜻으로 오가는 말인지요. 서로서로 조금이나마 기쁘게 나누려는 뜻으로 건네는 말인지요.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가 하는 말에 토씨 ‘-의’를 이렇게까지 수없이 붙이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어느 때부터 우리가 하는 말에 ‘-적(的)’을 끊임없이 붙이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 앞사람과 뒷사람한테 살가이 다가가는 말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 스스로한테 얼마나 반갑고 고맙고 힘이 되고 즐겁고 멋지며 살뜰한 말인가요.

우주를 헤아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나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버둥대고 있지는 않은가요. 나 하나부터 곰곰이 짚어나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우주’를 돌아본다며 깝죽거리고 있지는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