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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기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국사와 국어를 영어로 가르친다면, 어학연수를 가지 않아도 영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을 것”이란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다.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이 당선인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발언은 단지 한 사람의 망언으로만 간과될 수는 없으며, 이는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환상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게 되고, 그 만큼 나라의 경쟁력이 올라가 결국 이 나라가 잘 살게 된다면야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일은 교육이라는 인륜지대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밀릴 수도 있다는 한국 교육의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써 먹을 수 없다면 교육이 아니다?


한국 교육이 이미 그 교육적 지조를 잃어버린 것은 오래된 일이다. 한 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지식은 ‘사회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의 현 세태만을 살펴봐도 명백한 일이다.

 

대부분의 각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경영, 경제와 같이 취업전선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들이며, 인문학부의 경우에도 많은 학생들이 순수 인문보다는 졸업 후 교사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교직이수나 사범대학을 선호하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작년 9월에 실시된 교육인적자원부에 제출된 통계에 따르면, 의·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의 89%가 이공계 출신이었다. 한 마디로, 이공계 학문이 의사진출의 발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그 분야에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졸업 후의 사정을 생각하여 학과를 고려하는 것이 오늘날의 대세라는 주장에 대해서 쉽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2006년 삼성전자가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에서 인증한 대학 프로그램 이수자에게는 가산점을 준다는 발표를 했을 때에도, 가장 분주했던 것은 대학들이었다. 기존에 공학인증을 받은 대학들은 그 기준을 더욱 강화하였고, 받지 못한 대학들은 혹시나 졸업생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노심초사 하였다.

 

서울 D대의 경우, 아예 2006년도 신입생부터 공학인증 없이는 졸업을 못하도록 졸업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소위 최상위 단계의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들의 커리큘럼이 대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모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치는 유치원


얼마 전 강남에서는 도서관형 영어 유치원이 생겨났다. 기존의 영어 유치원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도서관형 영어 유치원에서는 영어 원서를 읽고, 서로 토론을 하는 등 어린이들에게 영어식의 사고방식을 심어준다는 것이 도서관형 영어 유치원의 핵심취지다.

 

소위 대한민국의 교육 트렌드를 반영한다는 강남에서 이러한 형식의 유아영어 교육방식이 성행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조기영어교육에 얼마나 큰 관심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학 입시부터 취업까지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영어 능력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장해 주는 지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많은 학부모들이 언어습득에 유리한 어린 나이부터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시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교육의 열풍 속에서 정작 모국어의 입지는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한국어는 못할망정, 영어는 잘 해야 한다는 잘못된 교육관이 영어 유치원, 조기영어교육, 원정 출산 등 여러 형태의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모국어인 한국말을 사랑하고 이에 능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저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진부하고 고루한 생각’으로 치부되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현실이다.

 

물질만능 시대에서 상실된 참교육


실용위주의 지식교육이나 영어 교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그것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직장을 구하고, 승진을 하고,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데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치우침에 있다.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것은 균형이 파괴되고 어느 한 쪽만을 신경 쓰느라 다른 한 쪽은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의 교육은 바로 이 지나친 편향성이라는 문제를 가진다. 좀 더 효과적인 구직을 위한다는 것이 실용적인 학문추구를 넘어 인문학·이공계 기피 현상 등으로 이어지고, 효과적인 영어 교육이 모국어 상실로 이어지는 이 극단적인 교육열은 분명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도 오늘 날 우리 사회는 소위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TV에서도 잡지에서도 온통 세상 어떤 이가 얼마나 큰 집에서 얼마나 좋은 것들을 먹고 마시며 살고 있는지를 조명하기 바쁘다. 사람으로 태어나 고작 입고, 먹고, 사는 곳에 의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거부할 수 없는 오늘날의 세태이다.

 

그렇다면 소위 인륜지대사라는 교육의 문제가 이 시대의 먹고 사는 문제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교육 이상의 것은 없는가. 아무리 반딧불을 등불 삼던 옛 선비의 정신이 간과되고, 밥주걱으로 뺨때려 동생을 내쫓은 욕심 많은 놀부가 재평가되는 시대라지만, 우리 교육계에서 끝까지 놓아선 안 될 소중한 가치들마저 상실해버린다면 대한민국 교육 미래에 희망은 없다.


#물질만능#교육#영어유치원#공학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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