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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슴에 불을 질러준 기사의 끝자락 한토막

발로 뛰어다니며 내 마음의 소리를, 자세히는 '여성주의'라고 불리던 것들을 외쳤던 시절은 끝났다. 친구와, 동기와, 교수님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던 좋은 때는 갔다. 취직을 하고  들어도 못들은 척, 봐도 못본 척 시집살이 뺨치는 '사회살이'가 시작됐다. 가끔 '말이 통하는' 여자 친구들이나 '말해도 될 만한' 남자 친구들에게 푸념을 하는 정도였지만, 오늘만큼은 기사라도 써야 넘어가겠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기사들 중 '열아홉 미혼아빠 "일당 2만원으론 도저히…"'(<한겨레> 1월 3일자)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전도 유망한 유도선수인 19세 박군은 2년여 사귄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아기를 만들었다. 양가에서도 인정하는 사이였지만, 대한민국의 19살은 (화제의 '88만원 세대' 서두에서도 언급되듯) '독립'적 존재로 인정받기보다는 '불장난 해서 불까지 내버린 청소년' 취급을 받는 어려운 처지였다. 둘은 아이를 낳길 원했지만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그들은 '대입과 취직'이란 현실에 압박을 받았고 여자친구는 입양 얘기를 꺼내는가 싶더니 결국 잠적하고 말았다.

기특한 젊은 아빠 박군은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선언, 입학이 예정되어 있던 대학도 접어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한달에 5만원을 받고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분유와 기저귀도 지원을 받지만 일당 2만원의 아르바이트로는 부족하여 직장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여기까지는 어린 아빠의 드라마였고, 나름 훈훈함 반 걱정 반으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줄이 가슴에 불을 질렀다.

'여성가족부 가족지원팀 김기창 사무관은 "미혼모에 대한 지원도 별도 예산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미혼부'를 특성화할 계획은 없다"며 "미혼부는 실태 파악도 전혀 안된 상태"라고 말했다.'

으응? 저것이 진정 여성가족부 사무관의 말씀?

'통폐합 1순위' 여성가족부의 현주소

저 한줄의 인터뷰 내용이 '악플놀이로 똘똘뭉쳐 우세한 곳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싸움이 안될 것 같은 곳에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상대를 똘똘 뭉치게 하곤 하는' 네티즌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부 부처이자, 이제 새로운 정부에서 공공연히 '통폐합 1순위'로 불리우는 여성가족부의 현주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네티즌들이 생각하길 '대체로 밥값 아까운' 일을 한다고 평가되는 여성가족부가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은 사회 각처의 약자들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관심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지원할 별도의 돈이 없단다.

'미혼부'를 특성화하길 바라는 사람은 미혼부와 그의 가족들 정도일 테니 미혼부가 활동하고 있을리 만무한 여성부에서 미혼부를 특성화할 계획이 없는 것은 그렇다 치자. '실태 파악도 전혀 안된 상태'라니, 이거 좀 눈이 찡그려진다. '전혀'라는 말이 그렇고 '안된 상태'라는 말이 그렇다. 앞뒤에 '앞으로 실태파악을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편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대로라면 쓴소리 할 네티즌이 많을 듯 싶다. '밥값해라'

미혼모와 미혼부는 다를 것이다. 누가 더할것 없이 힘들겠지만 편부모라는 같은 이유뿐 아니라 다른 이유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굳이 생각해보면 미혼모보다는 미혼부가 더욱 소수이니 각종 편견이 이만저만이 아니랄 것은 쉬이 짐작이 간다. 그러니 미혼모 미혼부 가를 것 없이 빠른 시일내에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성'가족부이기 때문에 미혼모'도' 못도와주는데 미혼부를 특성화할 계획이 없다는 것일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

'여성주의'를 대체할 단어는 언제 나올까?

오래전부터 고민이 '여성주의'란 말은 너무 편향된 것 같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당하듯 자연이 인간에게 억압받고,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억압받고, 성적 소수자가 이성애자에게 억압당하는 것은 같은 사고에서 나온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 사고가 없는 페미니즘은 세계적으로 '백인 페미니즘'이라 불리며 비판받았고,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이라 비판받았다.

여성주의로부터 싹튼 모든 억압에 대한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인 저항을 지칭할 대체할 단어는 언제 나올까? 대체할 단어를 누군가가 만든다면 '여성가족부'가 아닌 'xxxx부'가 탄생할 수 있을까(차기 정부로부터 기대하긴 어려울 듯 싶지만)? 이름은 그대로더라도 더 넓은 사고로 많은 시민들을 행복하게 할 여성가족부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날은 언제 올까?


#여성가족부#미혼모#미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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