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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앞에서 지나가는 행인이 찍어 주었다. 두꺼운 장갑, 귀마개, 파카 점퍼 등 '중무장'을 했다. 삭발을 해서 머리만 시원할 뿐이다.
국회앞에서지나가는 행인이 찍어 주었다. 두꺼운 장갑, 귀마개, 파카 점퍼 등 '중무장'을 했다. 삭발을 해서 머리만 시원할 뿐이다. ⓒ 송상호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아내의 성격으로 봐서 내가 한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틀림없이 3일 내내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에큐메니칼 신학원 수련회 기간(17일~19일)과 맞아 떨어져서 거기 간다고 둘러 댄 것이다. 아내는 나에게 감쪽같이 속은 셈이다. 안성을 떠나기 직전 미용실에 들러 삭발을 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면 괜찮은데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왜 그리도 마음이 두근거리는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바로 앞에는 경찰 버스 6~7대가 정차해 있고, 전경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무슨 전시처럼 긴장감이 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이명박 특검법(16일)' 때문에 국회에서 난리를 쳤기 때문일 게다. 폭발물이 반입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인지 차량과 사람 단속도 심해 보였다.

 

이런 지경이니 괜히 나도 오해 받을까 걱정도 된다. 시커먼 점퍼에 시커먼 바지. 삭발한 머리에 모자. 그리고 배낭에다가 침낭까지. 폼이 딱 수상해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우스갯소리지만, 이거 시작도 못 해보고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경찰에게 연행되지 않을까 했다. 사실 괜한 기우이긴 했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날 생전 처음으로 국회의사당 앞에 서니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준비해간 현수막을 과감하게 꺼내들었다. 목에 글귀를 걸었다. 서기까지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지 막상 서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삭발단식참회의 대장정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단식은 일요일(16일) 저녁부터 했다. 뱃속에 들어간 게 있으면 나와야 할 텐데 혼자서 있으려면 교대도 해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화장실 가는 것도 여의치 않을까봐 하루 전날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춥지 않으려고 두꺼운 내복도 입었고, 2겹바지를 입었으며 위에는 솜 스웨터와 오리털 파카 점퍼를 입었다. 소위 '중무장'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 종일 서 있어도 추운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물론 해뜰 때와 해질녘의 추위는 상당했다. 그것보다도 단식을 하니 몸에 에너지가 부족한 탓에 서 있는 것이 몸에 부쳤고 다리가 아팠다. 그래서 아예 몇십 분을 앉았다가 일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이렇게 서야만 하는 현실과 쳐다만 보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무관심이었다.

 
'보안법 철폐' 그 와중에도 기자 정신을 발휘해서 소형 카메라로 나의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을 찍었다. 그는 그야말로 호호백발 어르신이었다. 훨씬 전부터 이 시간이면 '삼보일배'를해오는 걸로 보였다.
'보안법 철폐'그 와중에도 기자 정신을 발휘해서 소형 카메라로 나의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을 찍었다. 그는 그야말로 호호백발 어르신이었다. 훨씬 전부터 이 시간이면 '삼보일배'를해오는 걸로 보였다. ⓒ 송상호

그나마 나에게 이야기를 걸고 관심을 보여준 것은 칠순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다. 서울 동대문에 산다는 P노인은 팔순인데도 '국제 사기꾼 이명박 출국금지'라는 글귀를 자필로 쓴 종이를 들고 다니며 거리 시위를 하고 있었다. 또 한 호호백발 어르신은 내가 있는 3일 동안  매일 2시경에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글귀를 등에 붙이고 상복을 입은 채로 '삼보일배'를 했다. 그는 계속 해오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어르신이 "정말 수고 많아요"라고 싱긋 미소를 날리는데 어찌나 그 미소가 온화한지 지금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이밖에도 다른 두 어르신이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시간을 잘 보내었다. 사실 혼자 서 있어보니 누군가 옆에 와서 말을 걸어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첫날 잠을 어디서 자느냐가 문제였다. 야외에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한 번 자보려고 침낭까지 준비해갔지만, 지나가는 경찰이나 지인 등이 한사코 만류를 해서 '24시간 사우나'를 선택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첫날 밤에 현장에 찾아온 이필완 대표(기독교 인터넷신문 당당뉴스 대표목사)의 충고와 격려금 몇만 원 때문이었다.

 

몸 상하지 말고 이 돈으로 사우나라도 가서 자라는 그 따스한 배려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덕분에 밤에라도 충분히 쉴 수 있어서 에너지가 충전이 되었고, 참회 기간이 끝났어도 에너지가 바닥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사람이 살만 나는 것일 게다.

 

3일 동안 '24시간 사우나'에서 잠을 청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새벽 0시와 새벽 1시를 넘어서야 잠을 자러오는 손님들이 많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밤새 자고 아침 일찍 일터로 간다는 것도. 그러니까 그들은 밤늦게 까지 일을 하고 가정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어딘가 모를 직장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여기에 와서 피로를 풀고 떠나는 것이다.

 

목욕탕은 목욕만 하는 게 아니라 잠도 자고 사우나도 하여 피로를 풀고 재충전하는 곳이었던 것.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라 하겠다. 이렇게 부지런하고 착한 백성들을 지도자가 잘 인도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못할 일이 아니겠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일인 단식참회를 한답시고 끄떡대는 나 자신이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일인 거리 시위 자필로 썼다는 종이를 들고 거리를 다니는 P옹(팔순)이 나에게 주소를 써주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20일에 현상해서 보내주었다.
일인 거리 시위자필로 썼다는 종이를 들고 거리를 다니는 P옹(팔순)이 나에게 주소를 써주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20일에 현상해서 보내주었다. ⓒ 송상호

 

둘째 날엔 소식을 듣고 여성 한 분이 오셨다. 그 분은 한 인터넷 홈페이지의 회원이다. 아예 가스 도구를 챙겨와 현장에서 보리차를 끓여 주었다. 그 여성은 몇 시간을 나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갔다. 사실 인터넷 상에서는 서로 댓글을 주고받긴 했지만, 오늘이 생전 처음 대면하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따스한 보리차보다도 그녀의 몇 시간짜리 대화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 일이었다. 덕분에 시간도 잘 갔으니 말이다.

 

마지막 날이 되자 조바심이 생겼다. 순간순간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체력이 바닥이 나니 집에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려졌다. '빨리 끝나서 집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잠도 푹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이 쇼가 정말 진실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쇼에 불과한 것일까라는 생각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이 참회한다고 하면서 남에게만 참회를 요구하는 행위가 아닐까하는 고민 말이다. 그래서 그 고민을 다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다는 결론에 이르기는 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그 와중에도 큰 성과가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날 오후에 젊은 대학생을 만난 것이었다. 그는 숭실대학교를 다니는 K군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리 저리 찍던 중 나를 만났고, 나에게 모델이 돼 달라고 요구를 해왔던 것. 그래서 기꺼이 모델이 돼 주었다. 사실 많이 알려질수록 의도했던 바가 달성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큰 성과라고 표현하는지 그와의 대화에서 찾은 것이다.

 

“뭐하는 분이세요?”
“아, 예. 숭실대학교 대학생입니다. 카메라에 관련한 학과인데다가 학교에 글을 쓰니까 사진 자료를 모으는 중이죠.”


“아, 그렇군요. 그런데 학생, 제가 쓴 이 글귀 어떻게 생각하시죠?”
“예,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정말 우리나라가 걱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회하시는 모습에 부끄러워지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럼, 젊은이는 누구를 투표 했나요?” 
“저희 아버지가 울산 분이라 무조건 이명박 후보’를 찍으래요. 용돈까지 주면서 말이죠. 그래서 ‘예’라고 대답하고 ‘이회창 후보’를 찍었습니다.”


“예? 허허허허허허허.”

 

우리는 서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인 삭발단식참회는 이거 하나로도 충분한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젊은이들 중에 이런 건실한 청년이 있다는 것을 실제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의견에 동참을 하고 성원을 보내주기 때문이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될 큰 틀에서 본다면 그 젊은이의 생각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사진을 찍어 주고 멀리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보면서 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칠 무렵 안성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나를 태우러 오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성에서 내가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힘이 없을까봐 자가 차량을 타고 2시간을 달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와 함께 모임을 해오던 지인 2명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3일간 대장정이 끝난다니 기뻤고, 나를 직접 태우러 온다니 또 기쁠 수밖에. 차 안에서 이명박 후보가 출구 조사에서 50%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안성에 도착해서 ‘죽 전문 식당’에 들러 대접까지 해주는 지인들 덕분에 마지막 마치는 날은 잔치분위기였다. 집 앞까지 태워다 주니 마치 큰 전과를 올린 개선장군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고마운 배려를 나의 가슴 깊숙한 곳에 꼭 담아둘 일이었다.

 

우리 대한민국 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거리에서 파지 등의 고물을 줏는 노인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나라,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도 없는 모습이 당연시 되는 나라, 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사진은 칠순 노인이 리어카에 고물을 하나 가득 실고 국회의사당을 지나가고 있다. 그 앞에 전경들이 전시상황처럼 국회의사당을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그 옆에슨 십 수대의 전경차량이 늘어 서있었다.
우리 대한민국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거리에서 파지 등의 고물을 줏는 노인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나라,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도 없는 모습이 당연시 되는 나라, 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사진은 칠순 노인이 리어카에 고물을 하나 가득 실고 국회의사당을 지나가고 있다. 그 앞에 전경들이 전시상황처럼 국회의사당을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그 옆에슨 십 수대의 전경차량이 늘어 서있었다. ⓒ 송상호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삭발한 머리를 보여주니 아내는 기막혀 했다. 어쩐지 약간 수상 하더라며 말을 잇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아내가 걱정할까봐 그랬다는 걸 앞세우며 아내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되지 않았냐는 변명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그 다음 날은 낮 12시까지 푹 잤다. 자고나서도 몸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 연탄도 갈았다. 빨래도 널었다. 그동안 밀렸던 글도 쓰고 홈페이지 정리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가족들에게 사죄(?)하는 맘으로 외식을 청했다. 그동안 우리 가족끼리 제대로 된 외식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외식을 하면 ‘더아모의집’ 아이들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의 외식을 ‘굴밥집’에서 하면서 행복한 저녁 한 때를 보냈다.

 

‘거짓말 대통령후보를 낸 동시대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이에 역사 앞에서 삭발단식참회합니다’라는 문구를 걸고 했던 일인 시위를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어  밝힌다면 이렇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라는 것은 적당히 얼버무려서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차원을 말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흠이 있어도 경제만 좋으면 된다는 풍조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회의 현상이 하나의 상징으로 나온 표현이 이번 대선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처절한 참회와 반성 없이 이런 총체적인 도덕 불감증과 위기를 극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통렬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성찰 없이는 그 어떠한 좋은 세상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걸 알아야 한다. 유권자 중 60% 조금 넘게 투표를 했고 그 중에서 50% 정도의 지지를 받았으니 사실상 유권자 중 30%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나머지 70%의 유권자는 그에게 지지를 보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반감을 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나마도 유권자가 아닌 청소년들과 아동들에게도 지금의 대선의 모습이 그대로 각인이 되어 역사로 남을 거라는 것을. 이명박 당선자는 이걸 염두에 두고 통렬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성찰이 있은 후에야 좋은 역사를 이 대한민국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 되었으니 정말로 잘해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역사를 이렇게까지 몰고 간 현 정권과 정부여당의 책임이 근본적이라 하겠다. 무슨 이유를 댄다 할지라도 이 책임을 역사 앞에서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 정부여당의 모든 국회의원 전원이 참회하는 맘으로 하루라도 단식을 하면서 참회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더라면 훨씬 국민들을 설득하기 쉬웠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여튼 통렬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성찰이 그들에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 국가를 이끌고 나가는 지도자들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앞서 내가 일인시위를 하며 내가 만났던 참으로 부지런하고 착한 백성들의 눈에 눈물 나지 않도록 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1인시위#더아모의집#송상호목사#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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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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