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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97년 12월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정치에 가졌던 열망을 대부분 접었다. 사회운동의 성격이 강했던 직장을 나왔고, 99년에는 중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2002년에는 집착이 되살아나 항공료를 들여가며 한국에 들어가 투표를 했다. 내가 바라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비록 김구 선생과 링컨을 비교한 역사관에 실망해서 비판적인 글을 ‘신동아’에 쓴 적이 있지만 난 내 선택을 아직까지 신뢰하고 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중국에 머물고 있으며, 선거일에도 한국에 나갈 계획이 없다. 우선은 항공료를 들여서 나갈 만큼 지지하고 싶은 후보도 없고, 그런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은 속일 수 없어서 각종 매체를 보고 있노라면 이건 아니다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 대선은 모두가 판을 깨자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위험한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보인 국회의 탄핵에 너무나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속한 지역구 의원(이낙연)이 그 일에 압장 선 것을 보고, 그의 홈페이지에 가서 백의종군하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어떻든 직선제를 통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갈아치운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국민들은 어떻든 정치를 보고, 스스로 선택해서 투표라는 행위를 한다.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것은 민의고, 국가는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처럼 결과가 어떻게 되든 판을 깨고 보자는 정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을 저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선거전에 어떤 행위나 주장을 하는 것도 정치행위에 해당하겠지만, 지금처럼 결과에 승복하지 말고 판을 깨자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이 일은 우리나라가 나갈 방향을 혼돈하는 결과를 빚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내년 총선도 치명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떻든 유권자들은 그 결과가 나오면 대부분 그 결과에 승복하고 새로운 판에 대한 기대나 회의를 갖지 아예 판을 깨자는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을 깨자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면 탄핵을 반대해 여당에 표를 밀어주었던 2003년의 경우가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이 정권을 모두 독식해 심각한 정치적 독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진다.

 

기자는 지난 16일 중국 선전(深圳)을 여행 중이었다. 소련 항공모함 민스크호를 개조해 만든 여행지를 보고 시내로 오는 중에 버스에서 틀어주는 세계 뉴스를 보다가 우리나라 정치 풍경을 봤다. 특검법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는 국회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게 부끄럽거나 안 좋게 많은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정치 투쟁이고, 대만에서도 계속 있는 일인데, 우리나라에서 한다는 것이 뭐 대수일까.

 

단지 눈물겨운 것은 그렇게 싸워야하는 정치인들의 쇼맨십이 좀 안타까웠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 뉴스보다 기자의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서울 인구에 버금가는 1400만 명의 인구를 갖고, 급성장하는 도시의 면모였다.

 

선전을 처음 찾았던 2000년에 느끼던 발전된 외형과 빈약한 도시의 인프라 격차는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깨끗한 도시, 잘 갖추어진 교통 인프라, 개방적인 마인드로 인해 선전은 이제 인구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서울을 대적하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 이런 도시의 느낌은 상하이 등 다른 도시에서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우리나라의 모습이 국회의 난장판이었기에 마음이 서늘했을 뿐이다. 밖에서 보기에 이번 대선은 정말로 정책 대결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선전에 이슈가 됐던 경부대운하 문제 등은 흔적이 없었고, 온통 BBK라는 광풍만이 난무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짙다.

 

사실 다가오는 10년은 우리가 겪었던 지난 50년에 못지 않은 중요한 시간일 수 있다. 이미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2~3년이면 일본을 추월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역시 주도권 유지를 위해 다양한 외교 전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선을 하고, 그 결과를 놓고 다시 분열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대기업들은 블루오션을 찾지 못하고 헤맬 가능성은 높아가고, 중소기업은 이미 아사직전에 있다. 그런데도 국내정치를 놓고 분열된 양상이 계속된다면 앞날은 안봐도 뻔한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지만, 사공이 갈 방향을 놓고 싸우면 결국 배를 쪼개야하는 사태가 오는 게 현실이다. 한 방향을 향해 나라가 나아가도 주변에 엄청난 국제정치의 격랑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판에 대선에서 우리나라가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부끄럽기 그지 없다.

 

19일 밤이면 어떻든 대선의 결과가 나온다. 이기든 지든 그 결과에 승복하고 새로운 정치적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그 돌파구를 판을 깨자는 사람들에게서 찾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줄 것이다. 옥석을 시간이 지나면 가려진다. 미리 자신이 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문제는 자신을 어떻게 잘 다듬어 가치를 찾을 것 인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ogaci)에도 게재 합니다


#선전#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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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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