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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언덕

경제 발전이라는 논리 앞에 지구는 너무도 황폐화되고 자연은 손 쓸 수 없을 만큼 상처 입어 버렸다. 특히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이 자연의 우위에 있다는 식의 사고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땅을 파헤쳐 자원을 얻고 나무를 마구 베어버리는 행위가 아무런 잘못도 없고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는 너무도 오랫동안 인간을 지배했다.

 

그래서 지금 지구는 자정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버렸고 여전히 사람들의 이기심 앞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이상기후에 의한 피해는 점차 확산되고 있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들이 해왔던 일들에 대한 자연의 앙갚음인지도 모른다.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중간, 적도 바로 아래 위치한 둘레 20㎞가 채 안 되는 섬 나우루. 울릉도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면적인 이곳에서 나우루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우루는 서구인들에 의해 유린당하기 전까진 비록 척박한 환경이지만 서로 자급자족하며 평화롭게 살던 곳이다.

 

씨족 사회였던 그들은 분쟁이 일어나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고 스스로 인구를 조절해가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면서 나우루족 특유의 태평함과 친절함을 가지고 살았다. 가끔 그들의 땅으로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맞기도 했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서구 문화와 교류를 하면서 술, 담배, 총이 수입되면서 자급자족 문화는 사라지고 나우루인들의 삶은 외세에 좌우되게 되었다.

 

특히 톱사이드에 묻힌 인광석이란 자원은 나우루에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인광석은 우라늄이 들어 있는 원석으로 석유와 석탄같이 에너지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석의 한 형태다. 처음에는 외부인들도 이것을 흔히 볼 수 있는 한갓 돌 정도로 취급했다. 하지만 또 다른 호기심 많은 외부인의 눈에 띄게 되면서 이것은 인광석으로 밝혀졌고, 이때부터 자원쟁탈전이 시작된다.

 

인광석이 큰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서구인들은 나우루에 눈독을 들였고 이 자원을 자기 나라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군침을 흘렸다. 마침내 1888년 독일에 합병되면서 나우루는 서구 열강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나우루의 삶은 점차 피폐해졌다.

 

너무도 헐값에 인광석은 팔려나갔고 그로 인해 나우루의 자연은 급속도로 망가지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자연이 오랫동안 이룩해낸 모든 것들이 너무도 빠른 시간 안에 무너지게 되었고 서구에서 들여온 물건들은 나우루의 경제 모습과 생활마저 변화시켰다.

 

인광석 채광이 시작된 후 나우루의 문화는 기독교 유입, 1차 대전, 국제연맹 신탁통치, 2차 대전, 일본의 강점에 따른 주민 추방, 국제연합 신탁통치로 이어지는 수난을 당하며 세계시장으로 떠밀려 갔다. 1968년, 섬사람들은 독립을 맞는다. 80여 년간 지속된 서구의 강점에서 벗어난 순간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인광석 산업을 접고 섬의 생물 다양성 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나우루의 자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구를 억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광석이 고갈될 때까지 계속 채굴하고 세계 경제에 동참해 여력이 되는 한 수입하고 외부에서 사들인 자원을 이용해 인구가 계속 성장하도록 해야 하는가?

 

나우루는 후자의 길을 갔다. “인간의 경제는 자연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의 말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나우루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채굴로 땅은 마구 파헤쳐졌다. 태양에 노출된 산호 무덤들은 너무 뜨거워졌다. 생물들은 죽어갔고 흉물스런 폐광만이 남았다. 지속가능한 열대의 낙원을 팔아버린 대가는 늘어가는 불모지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우루는 가장 비만한 나라, 당뇨병을 앓는 나라가 됐다. 왜일까? 고작 18㎞의 도로 하나뿐인데도 주민들은 집집마다 차를 한 대씩 굴릴 정도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기 때문일까? 식생활이 생선과 과일에서 스팸과 통조림, 맥주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유전학적인 이유가 있다. 식량이 부족했던 섬의 여건상 나우루인들은 쉽게 살이 찌게끔 적응해 왔는데 갑작스런 풍요가 비만을 ‘선물’한 것이다.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된 1만명의 주민들이 당장의 생존마저도 외부 세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끔찍한 비극이다.

 

서구인들의 현재의 나우루를 보며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무능에서 비롯됐고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이고 잘못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애초에 나우루의 모습을 바꿔 버린 건 나우루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원을 착취하는 것이 미개한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서구인들의 시각이 잘못된 것이다.

 

푸르른 나무 대신 황무지로 변해버린 나우루 섬의 모습은 인광석을 탐낸 사람들이 없었다면, 착취하지 않았더라면 황무지 대신 푸르름을 계속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봤자 현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비록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남은 자연을 위해서라도 보호하는 쪽으로 온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나우루만의 일은 아니다. 종의 멸종, 다양성 상실, 인구, 기후 변화, 다세포 생물이 제6차 대멸종을 맞고 있고 세계 숲 3분의 1이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해야 할 것이다.

 

낙원이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돈으로 팔리는 현실을 더 이상 묵도해선 안 된다. 이건 단순히 그 나라의 문제만이 아닌, 전 인류가 고민하고 노력 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제2의, 제3의 나우루를 만들어선 안 된다.

 

책을 덮고 우리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먹고 쓰는 것의 태반은 우리 땅에서 나지 않는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 증대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지구의 어딘가에서 착취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 3만 달러를 바라보며 시장자본주의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우리는 호랑이 등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휘둘러지는 거대한 파도를 막아 낼 수 있을까?

 

나우루의 비극은 환경 문제만은 아니다. 서구세력에 의한 약탈과 문화의 침탈이 그 크다. 우리가 미국과 체결하려 하는 자유무역협정, 그것은 단순히 무역만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문화가 숨어 있다.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자란 세대가 아톰과 건담 등을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는 람보와 록키 등을 기억한다.

 

한때 이런 광고 문구가 있었다.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한다.’ 하지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서구식 자본주의 제도의 결말은 뻔하다. 지구라는 유한한 자원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서구식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정복하려 한다. 자연뿐만이 아니라 문화까지도.

덧붙이는 글 | 칼 N. 맥대니얼(Carl N. McDaniel)과 존 M. 고디(John M. Gowdy)이 함께 지음 / 이섬민 옮김 / 여름언덕 폄 / 2006년


낙원을 팝니다 - 지구의 미래를 경험한 작은 섬 나우루

칼 N. 맥대니얼 외 지음, 이섬민 옮김, 여름언덕(2006)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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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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