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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겉표지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겉표지 ⓒ 한겨레출판
박노자는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혹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직설적으로 말할 줄 안다.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얼굴이 홧홧거리거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게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알고 있던 지식과 상식이라는 것들이 여러 번 전복된다. ‘우리가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얼굴을 붉게 만들고 만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는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진흙 속의 연꽃 : 동아시아 휴머니즘의 계보’라는 이름으로 야수의 시대에 나타났던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양계초’다. 중국인인 그는 1900년대 개화파에게 영감을 주었던 사람이다. 박노자는 그의 영향력을 “과거에 주자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살던 중국은 조선의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웠다. 강력한 힘을 키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때다. 그 ‘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절대적으로 그들을 동경하던 때였다. 양계초도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직접 유럽 여행을 한 뒤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깨닫는다.

여기서 양계초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자연의 파괴보다 인간의 파괴가 더 처참하고, 야만인의 파괴보다 문명인의 파괴가 더욱더 처참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양계초는 “경쟁은 진보의 어머니”라는 말을 취소하게 된다. 그 경쟁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 시절 다들 유럽과 미국, 심지어 일본을 모델로 따라가자고 할 때, 양계초와 같은 인물은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있었고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21세기를 휘젓는 20세기의 망령’인 2부는 제목 그대로 20세기의 불쾌한 추억을 다루고 있다. 국적이라는 것에 목숨을 거는 조직들은 물론이고 미국을 사랑하는 세력들을 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개화기 신문들도 ‘촌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신문하면 다들 ‘민족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민족지들은 정부 관료들로부터 촌지를 받았다. 운영이 어려워서 받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촌지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박노자는 하나의 예를 들고 있다. “하급 관료들의 공금 횡령과 가렴주구는 폭로해도 매관매직을 본업으로 삼았던 고종과 그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서 일언반구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말이다. 촌지의 영향이 아닐까? 민간 외교로 이용한다는 목적은 곧 정부의 나팔수로 이용한다는 목적이 아닐까? 박노자는 말한다. 100년 전의 그 신문들이 민족지라기보다는 정권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던 ‘계급지’라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없지만 글을 보고 있으면 부정하기도 어려운 말이다. 그만큼 알고 있던 것을 뒤집는 내용이다.

‘두 얼굴의 근대인, 잊혀진 근대의 비극과 향기’라는 3부도 놀라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애국자의 대명사 이준 열사의 다른 모습을 조명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계몽주의자라고 떠올리는 이들을 군국주의자로 말하고 있다. 그동안 잘 포장돼 있던 것들의 진실을 밝히는 일인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 마오쩌둥, 호찌민과 김일성을 함께 묶은 글에 이르면 그 불편함의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그럼에도 책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4부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적 독재로부터로의 탈주’와 5부 ‘근대의 유라기공원: 제국, 개인, 양심’에 이르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여자들을 더욱 억압한 세종대왕을 만나야 하고, 국제결혼에 대한 삐뚤어진 생각을 비판당해야 하고, 일본재벌과 우리나라 재벌을 비교당할 때는 얼굴이 홧홧해지지만 그럼에도 그 글들이 ‘동아시아’를 위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왜 그런 것인가? 거짓에 놀아나지 않도록 하고, 진실을 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바보’ 취급 당하지 않게 해주는 것임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박노자의 글이 그렇다. 그래서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아니 더 반기면서 읽게 되는 것이리라. 몸에 좋은 약이 입에 더 쓰다고 했던가.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도 그런 맥락일 것 같다. 쓰디쓴 불편함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지만, 그만큼 몸에 좋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2007)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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