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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남편이 퇴근해 오기 전에 다녀올 생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평소 다니던 24시간 영업을 하는 사우나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매표소 앞에 이르러 표를 사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빈 주머니였다. 혹시나 싶어 가방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돈은 눈에 띄질 않았다.


"분명 집을 나오기 전에 바지 주머니에 넣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한참을 찾다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아뿔싸∼ 나올 때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것이 아닌가! 순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신중하지 못한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났다.


일부러 짬을 내서 왔는데 되돌아가자니 그렇고…, 알지도 못하는 매표소 직원한테 사정이야기를 하고 외상거래를 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평소에 인사성이 좋아 종업원 얼굴이나 익혀 놨던들 이럴 때 한 번쯤 사정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애나 어른이나 인사를 잘해야 예쁨도 받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30대 후반쯤의 매표소 여직원이 먼저 말을 건넨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표를 끊게 되면 대신 제가 돈을 채워 넣어야 해요. 다음에 오실 때 잊지 마시고 갖다 주세요."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뻤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날 믿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4000원이 지금의 나로선 절실하고도 큰돈이었다.


그런데 은행거래 실적을 근거로 한 신용담보도 아니고, 자신의 주머닛돈을 대신 채워 넣으면서까지 편의를 봐 주는 종업원의 넓은 마음이 평소 남을 잘 믿지 못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인색했던 나로선 너무도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사실 지하도 계단 찬 바닥이나 지하철 안에서 앞 못 보는 걸인이 구걸을 할 때면 어쩌다 마음이 내킬 때나 선심 쓰듯 동전 한 닢을 건넸을 뿐 그나마도 외면을 하고 지나칠 때가 많았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표를 받아들고 들어가 목욕을 하는 동안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떠한 경우든 조금도 손해를 안 보려고 머리를 써가며 약게 사는 사람보다는 좀 어리석은 듯 보여도 누군가의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숨겨진 마음은 생긴 모습만큼이나 다양해서 개중엔 순수한 마음을 멍들게 하는, 쉽게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찧는다' 혹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대학생인 막내딸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엄마∼ 그 돈 갖다주셨어요?"라고 묻는다. 난 무심코 "다음에 목욕하러 올 때 달라고 하셨어"라고 대답했다.


순간 딸아인 격앙된 목소리로 명령을 하듯 말한다.


"엄마! 지금 갖다 드리고 오세요∼ 엄마가 언니랑 제가 어렸을 때 남의 고마움을 쉽게 잊어선 안 되고 그런 돈은 바로바로 돌려줘야 한다고 가르쳤잖아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더니, 최소한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난 두말하지 않고 보란 듯이 "엄마 금방 다녀올게∼" 하며 집을 나왔다. 비록 딸애의 나무람에 떠밀리듯 나오긴 했지만 한 편, 어미의 가르침을 흘려듣지 않은 자식이 대견하기도 했다.


매표소 직원에게 4000원을 건네며 몇 번씩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이것 때문에 일부러 오셨냐"며 도리어 "잊지 않고 갖다줘서 고맙다"고 했다.


4000원의 빚을 청산하고 돌아오는 길은 큰 부채를 갚은 듯 몸과 마음이 홀가분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신용#외상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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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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