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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지겹다. 후보 단일화는 도대체 어느 시절부터 시작된 유행가인가? 문국현이라는 정치신인이 등장하고부터 대선이 9일 남은 지금까지, 언론과 소위 '범여권'은 그를 단일화의 틀 밖에서 보려고 한 적이 없다. 급기야 재야원로들이 나서서 단일화도 아닌 '단합'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대체, 단일화가 뭐기에?

그 탈 많은 학교의 내신 시험조차 사지선다형에서 오지선다형으로, 단답형에서 서술형, 논술형으로 바뀌는 현실에서 우리네 정치인들은 선택항을 줄이려고 애쓴다. 국민이라는 수험생이 11개나 되는 선택항 중에서 계속 잘못된 답을 쓰려고 하니까 애써 선택항을 줄이며 '정답(?)'을 찍으라고 유도하고 있다.

단일화라는 정치공학적 전술은 분명 몇 차례 선거에서 성공한 전술이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성공한 전술에 다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선택하는 '수험생'인 국민의 입장에서 도대체 단일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단일화 자체가 좋다, 나쁘다를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한나라당은 후보 단일화를 금하는 법률을 제정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치세력 간의 정책합의를 통한 단일화는 지역주의 극복, 상생과 화합이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정치세력 간의 이해타산적 '야합'은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렇기에 과연 '어떤' 단일화인가를 물어야 한다.

무작정 단일화, '자장면으로 통일'과 마찬가지

중국음식점에서 회식을 할 때, 우리는 원치않는 '단일화'를 경험하고는 한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메뉴 통일이 바로 그것이다. 다수결에 따라, 상사의 의지에 따라 '신속함과 편의성을 위해' 일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전부 자장면'을 외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정동영과 문국현의 단일화 과정은 어느 중국집에서 열리는 회식장면을 연상시킨다. 단일화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어떤 논의과정을 거쳐 어떤 메뉴로 단일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다. 자장면을 먹자는 사람이 좀 더 많으니까, 민주개혁세력의 '어른'들이 메뉴 통일을 원하니까 어느 쪽으로 통일하자는 단순무식한 논리만 존재하는 것이 현재의 단일화 판국이다.

문제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국민이다. 그들은 상사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말단 직원들과 다르다. 만약 어른들의 뜻대로, 다수결의 논리대로 메뉴가 통일된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올 사람들이다. 왜? 국민은 민주개혁세력이 아니다. 아니,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환상을 버린 이들이다. 지난 5년의 노무현 정권이 그들의 환상을 철저히 부숴버렸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개혁'의 이름으로 또 다른 '비민주'적인 방안을 강요하는데, 과연 그 자리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단일화를 원하는가? 국민이 '토론'하자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해석을 통해 정동영, 문국현 두 후보의 단일화 텔레비전토론을 막아버리면서, 후보들의 토론을 통해 민주적이고 절차적으로 정당한 단일화의 방법은 사라졌다. 대선이 불과 9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 '어른'들은 두 메뉴 중 하나를 '없애버리라고'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민주개혁세력의 '원로'를 자청하시는 분들이 이런 '비민주적'인 방법을 줄기차게 주창하시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러나 원로들과 '무작정 단일화'가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세력들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현재의 국민이, 그것도 대세를 따르겠다는 40% 이상의 국민을 제하고 남은 국민은 어른이 말한다고 먹기 싫은 메뉴를 먹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최악의 경우 아무것도 안 먹겠다며 기권을 행사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부정부패로 얼룩진 과거세력의 집권을, 시계를 거꾸로 돌릴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겠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더 이상 후보들의 단일화나 원로들의 결단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왜 자신의 표를 자신의 의사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남의 판단을 기다리는가? 왜 메뉴가 하나로 통일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가?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라면 이제 스스로 '끝장 토론'을 벌여야 한다. 유세 중이라 바쁜 후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 말고, 과연 어느 후보가 부정부패한 과거세력에 맞설 진정한 대안인지를 터놓고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일부 후보에게 '사심없는 결단'을 강요했듯이, 토론 결과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보다 다른 후보가 낫다면 '사심 없이' 깃발을 바꿔 들어야 한다.

누구의 지지율이 높은지, 누구의 세력이 더 큰지를 논의하지 말자. 어차피 그 지지라는 건 당신에 대한 지지도 아니요, 그 세력도 당신의 세력이 아니다. 정말 대한민국을 위해 누가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 이 좋은 시절, 우리에게는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공론장'이 있지 않은가.


#단일화#정동영#문국현#토론#민주개혁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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