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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TV 켜는 거예요?”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수면을 방해한다며 이불을 뒤집어 써 버리는 집사람을 바라보면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가만히 누어있으면 눈만 말똥거려진다. 잠은 더욱 더 멀어지고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는 것이다. 잠을 자고 싶은데, 잠들 수 없다는 사실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초저녁잠이 생겼다.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어느 사이에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빨라야 밤 11시가 넘어야 잠에 들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속극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새벽 2시쯤이 되면 화장실에 가기 위하여 일어나게 되고, 그 뒤로 불면의 고통에 빠져버렸다.

 

처음에는 인정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선배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것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당하였다. 내가 늙는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만나게 되면 할아버지라고 생각하였지, 나도 저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유 나를 들여다보는
사유나를 들여다보는 ⓒ 정기상

마음은 그대로인데, 현실이 자꾸만 자각하게 해주었다. 하나씩 인식해간다는 일이 고통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신체적인 변화가 그런 기대를 박살을 내버리니, 난감해진다. 아니라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몽니를 내면서 버틸수록 더욱 더 참담함을 경험하게 될 뿐이었다.

 

신 김치를 참 좋아 하였었다. 생김치는 풀 같아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겉절이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신 김치는 시어서 도대체 먹을 수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을 온 몸으로 실감하게 해주는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가지가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절망강을 느끼게 된다.

 

금방 생각하였던 일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러다간 결국은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온 몸에 배어든다. 벗어나고 싶어진다. 나이를 먹고 싶지가 않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젊음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인 것을….

 

비상 수용하는 자세
비상수용하는 자세 ⓒ 정기상

시내에 홀로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새를 떠올린다. 하얀 깃털을 바람에 날리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에는 외로움이 배어나고 있었다. 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움직이지 않고 깊은 사유에 빠진 까닭이 무엇일까? 새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의문의 꼬리를 잡고 있는 데 갑자기 새가 비상을 하였다.

 

새가 날아오르는 곳을 보고 문득 깨닫는 것이 있다. 나이 먹는 일이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피해갈 수 없는 일이라면 거부해서 될 일은 아니다.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차라리 그 것은 인정하고 그 것에 충실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나이를 먹었다면 나이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나이에 맞는 언행을 함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더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거부하는 것보다는 인정하고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인생 아름다운
인생아름다운 ⓒ 정기상

신 김치를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한다. 무리를 해서 억지로 먹을 것이 아니라 신 김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노년을 만드는 슬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 달라지고 있는 신체적 기능을 인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주 삼천천에서


#신김치#나이#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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