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그래왔듯이 한해 농사를 마치고 김장까지 끝낸 어머니는 오늘(2일) 추수감사 고사를 지내셨습니다. 그저께 강화에서 도정해 온 우리 집 햅쌀을 물에 불려 방앗간에서 쌀가루로 빻아오고, 붉은 팥도 삶아 아침에 아버지가 절구통에 빻아냈습니다. * 관련 글 : '하늘님! 신령님! 터줏대감님! 한해 농사 잘 지었습니다'
동생 내외가 두 달 전 태어난 어린 조카와 함께 점심 전에 오자, 함께 점심을 먹은 뒤 본격적으로 솥에 시루를 올려놓고 떡을 쪄내셨습니다. 떡을 찌기 전에는,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모님은 옹알거리는 손자 곁에서 한없이 즐거워하셨습니다. 시루에 떡을 올려놓은 지 얼마 안 되어 떡이 되자 어머니는 거실에 찻상을 놓고 그 위에 시루와 잔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고사를 지내셨습니다. 마음속으로 가족과 새로 태어난 조카의 안녕과 건강을 빌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제수씨도 어머니와 함께 조카의 태어남을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안방, 제 방, 할아버지 방에 떡과 막걸리를 쟁반에 놓아두고 치성을 드렸습니다.
고사를 끝낸 뒤,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싱크대 위에 떡을 찌고 난 솥이 보였습니다. 솥에는 떡을 찌기 위해, 시루와 솥을 연결했던 밀가루 반죽이 떡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집안 곳곳을 돌며 고사를 지낼 동안, 요놈을 부뚜막에 앉아 둥근 가마솥 가장자리에서 떼어먹곤 했습니다. 그 추억을 되살려서 떼어먹어 보았는데, 밍밍한 밀가루 떡이 입에 착 달라붙더군요.
오랜만에 입에 넣어본 밀가루 떡은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을 내었습니다. 요사이 거울을 보며 '나이를 먹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종종했는데, 그 맛이 아닐까 합니다. 흘러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찾은 옛추억의 맛과 정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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