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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가 되어 작업을 마치고 밥 먹으러 사내식당에 갔다. 이 대기업은 부자라 그런지 울산공장 사내 식당마다 여러 대의 대형 텔레비전을 갖추고 있다. 또한, 사내 방송실도 갖추고 있어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일 점심때마다 한 시간 내내 방송을 한다.

오늘도 이것저것 사측 입장의 광고용 방송을 한다. 노동자인 내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했고 그 중 내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단풍이 절정인 화면과 단풍이 하나 둘 지는 화면을 보여주며 여성 진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단풍이 지는 가을, 더 늦기 전에 가족 나들이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서 화면은 가깝지 않은 여러 관광지를 소개한다. 허브 마을, 타조 마을, 온천 등 볼거리와 먹거리, 체험거리 등을 소개하며 놀러 가서 돈 쓰라고 부추긴다.

'돈이 없지 볼거리가 없을까? 돈이 없지 체험거리가 없을까?' 노동자, 더구나 우리 같은 하청 노동자의 실정을 무시한 그런 방송을 보면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대기업의 울산공장 안에는 백여 개가 넘는 업체가 있고 1만여 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3년 전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노동부의 시정 권고에도 시정은커녕 지금까지도 불법파견 노동자를 버젓이 부려 먹고 있다. 나 또한 불법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로 벌써 7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사측은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고 있다.

사측 방송엔 주말에 시간을 내서 여행 좀 다녀보라고 하지만 원청도 아닌 하청 노동자인 내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원청은 급여도 많거니와 보조가 있어 언제든 휴가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하청은 그렇지 못하다. 급여도 원청의 3분의 1 수준이고 보조가 없어 맘대로 휴가마저 못 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그 여성 진행자가 웃으며 상냥하게 "가족 여행 한번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이 내겐 "여행 한번 못 가는 사람! 약오르지롱" 하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들린다. 그래서 나는 더욱 화가 난다.

월급이라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주든지 휴가나 맘대로 낼 수 있게 해주든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활이 이래저래 궁핍한데 시간 내고 돈들여 가족 여행이나 다녀오라니, 이 얼마나 현실을 무시한 사내 방송인가.

누군들 가족여행 가고 싶지 않나? 에이… 뿔따구 나는 점심시간.


#노동#하청#차별#노동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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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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