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린 김장 안 해?”
“몰라요. 배추가 워낙 비싸서.”나와 아내가 추워지는 날 앞에도 속수무책(?)으로 오늘내일 김장 날짜를 미루고 있는 데 우리가 사는 시골마을 한 이웃이 배추밭에서 20포기를 뽑아준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뽑아서 준다는 약속은 받았지만, 받는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언제 배추를 뽑아 줄 거냐고 다그쳐 물을 수도 없으니 또 기다릴밖에.
그러던 지난 18일 일요일 전국적으로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 우리는 곤지암에 사는 동생 집 이사를 도우러 떠났다. 이날도 우리만 간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 나누고 있는 두 가정을 함께 동반해서 떠났다. 안성에서 약 1시간 거리이지만, 이들은 기꺼이 우리와 함께 이삿짐 운반에 동참했다. 이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각이 저녁 5시.
“어라, 마당에 배추가 가지런히 놓여있네.”
“아, 그거요. 이웃집 언니네가 농사지은 거를 갖다 놓고 간 거예요.”
“이제야 가져 왔구먼. 20포기라더니 약 30포기나 되겠는데.”
“그래요. 사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밤에 시동이 잘 안 걸린데요. 낮에 직장에서 일을 하니 일요일 밖에 시간이 없어서 이제 가져 왔다네요.”나의 의문 제기와 아내의 해명이 잠시 이어졌지만, 그래도 어딘가 갔다 와서 집 마당에 ‘우렁각시’처럼 누군가 몰래 배추들을 두고 간 걸 보니 참 기분이 좋다. 사실 시골에 살면 가끔 이런 일이 있다.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거실에나 문 앞에 채소 등이 놓여있는 일 말이다. 이런 일은 맛본 사람만이 아는 기쁨인 게다. 물론 나보다도 더 신난 건 아내일 게 분명하지만.
아내는 물을 데우고 소금을 꺼내는 등의 준비를 하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거실로 ‘배추 공수 작전’에 나섰다. 배추가 양이 많은 것도 아니니 좁은 우리 집 거실이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기도 하고 괜히 추운 데서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서다.
마당에 있는 배추는 내가, 중간 릴레이는 아들 녀석(초1), 최종 거실에 앉히기는 딸 아이(중1)의 담당이다. ‘영차, 영차’ 하며 배추를 나르는데 제일 신난 건 막내둥이다. 릴레이식 물건 나르기의 진미를 느끼는 게다.
이렇게 배추가 거실에 자리를 잡으니, 아내와 딸아이가 팔을 걷어붙이고 배추 절이기에 나선다. 아내는 지휘 감독 겸 마무리를 하고 딸은 소금물에 배추를 담갔다가 큰 통에 집어넣고. 나는 배추를 일일이 반으로 잘라 딸에게로 보내고.
“하나(딸아이)야. 왜 배추를 반으로 쪼개고 그것도 모자라 중간에 칼집까지 내 주는 줄 아니?”
“아이 아빠는.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소금이 잘 스며들어 배추가 잘 절여지도록 하기 위해서죠.”
“허허허. 우리 딸 대단한데. 너 시집가도 되겠다.”이렇게 우리 집은 언제부턴가 김장을 하면, 어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아이들이 동참하는 행사로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딸아이도 이제 물을 왜 데우는지, 배추는 왜 반으로 자르고 칼집까지 내는지, 소금에 절인 배추를 왜 하루 묵히는지 등을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배추만 얻은 게 아니다. 김장 양념으로 들어가는 무도 다른 이웃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것은 배추를 얻기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무 밭에 출동하여 아내와 함께 캐온 것이다. 그래서 이미 무 잎은 ‘시래기’를 만들려고 줄로 엮어서 말리고 무는 잘라서 준비해둔 터였다.
지난번엔 우리 집 월동 준비를 반은 끝냈는데 이로써 완전히 끝내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래저래 우리 집은 이웃들의 따스한 정과 아이들의 착한 마음과 아내의 정성이 어우러져 맛있는 김장과 행복한 겨울이 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