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나의 생존이 먼저기에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먼저기에
오늘도 일요일 밤 특근을 한다.
오후 5시 특근 때는 오후 9시에 야참 시간 30분이 주어진다.
30분 후 일을 바로 시작하기 때문에 바쁘게 서둘러야 한다.
우선 도시락을 가지러 사무실까지 갔다 와야 한다.
도시락 가지고 다시 일터로 오는데,
또 현장에 와서 도시락 먹을 준비하는데 이미 10여분이 지나갔다.
20여 분만에 밥을 먹어야 한다.
야참 도시락은 삼천 원짜리다.
오후 5시에 출근하여 9시까지 일했다고 주는 간이용 도시락이다.
밥이 차가워 많이 굳어져 있어 씹기가 어렵다.
반찬도 딱딱해진 게 있다.
그래도 먹어 둬야지 생각한다.
안 그러면 다음날 새벽 한 시까지 배고프다.
하얀 종이통 속에 든 흰 밥을 한술 뜨면서 가족을 떠올린다.
내가 이렇게 나와 벌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당할 식구들을 생각한다.
새벽 1시엔 식당 가서 밥 먹는다.
휴일엔 식당까지 15분 정도 멀리 걸어가야만 한다.
왔다 갔다 하는데 30분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식당에서도 밥을 빨리 먹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작업시간 지난다.
원청 노동자는 좀 늦어도 괜찮으나,
하청 노동자인 내가 늦으면 난리가 난다.
잘못하면 하루 아침에 잘릴 수 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든 밥 먹는 시간이든 철저히 지켜야만 한다.
나는 비정규직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
그래서 일이 있을 때
한대가리라도 더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모래알 같은 밥을
꾸역꾸역 입 속으로 집어넣는다.
차갑다.
밥도 차갑고 국도 차갑다.
반찬은 본래 차갑다.
그래도 난 먹어야 한다.
오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4시간 동안 또다시 버티려면
꾸역꾸역 순대를 채워둬야 하는 거다.
일 시작하기 전에 후딱 해치워야 하는 거다.
솔직히 밤에 일할 때 추워서
내복입고 왔는데
찬 공장 안에서
찬 밥 먹고
찬 국 먹고
찬 물 먹으니 춥다.
어두운 밤이라 더 추운 걸까?
아니면 겨울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때문에 더 추운 것일까?
찬 도시락 다 먹었다. 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