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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재 기사


 지역신문 ㅇ에 도서관 이야기가 기사로 크게 나왔다는 전화 연락을 받습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헌책방 아주머니한테서. “그래요? 그 기자 분이 며칠 앞서 왔다 가기는 했는데, 그때는 기사로 쓰겠다고 안 하고 분위기만 보러 왔다고 했는데, 그냥 기사를 써 버렸네요. 나중에 정식으로 취재를 오겠다고 하더니만.”

 

 씁쓸합니다. 제가 꾸리고 있는 도서관을 기사로 다루어 주면 고맙기는 하지만, 인천이라는 곳에, 더욱이 배다리라는 곳에, 또 사진책이라는 주제 한 가지로 도서관을 연 생각이나 움직임을 거의 못 읽어낸다고 느꼈는데, 어설피 슥 둘러본 한 가지만으로 기사를 쓰다니.

 

 자전거를 타고 동인천으로 나가 신문 한 부 삽니다. 집으로 와서 읽습니다. 한쪽을 다 털어넣은 통기사입니다. 크게 넣긴 참 크게 넣었군요. 그러나 이 기사를 읽으며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고 느낍니다. 크게 실어 준 일은 더욱 고맙지만, ‘도서관이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하나도 안 담겨 있으니 달갑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역신문 기자가 보기에, 제 일터인 도서관이나 저라고 하는 사람한테서 ‘알맹이가 없다’고 느꼈기에, 껍데기만 이렇게 큼지막하게 채워 버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기자가 찾아왔을 때 저한테 물어 본 이야기를 수첩에 모두 적었습니다. 물음을 차례대로 옮기면, “언제부터 헌책방을 다니셨나요?”, “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여행 다니셨나요?”, “지금 따로 하는 일은?”, “평일에는 헌책방 다니시나요?”, “생계로 따로 하시는 거 계세요?”, “소장되어 있는 책이 상당히 많은데 얼마나 돼요?”, “고등학교 때부터 틈틈이 모은 책인가요?”, “얼핏 봐도 책의 종류가 다양한데, 장르 구분은 안 하고 읽으시나 봐요?”, “배다리 시민모임에 활동을 하시나요?”, “고향은? 어느 쪽이었어요?”, “도서관 이름에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군데군데 걸려 있는 사진들은 누가 찍은 사진인가요?”, “평일에는 사진 작업도 많이 하시겠네요?”, “사진은 헌책방 다닌 처음부터 하셨나요? 사진이 상당수 있겠네요?”, “전시회 같은 것은 하신 적 있나요?”, “전시회는 언제 하나요? 전시장을 따로 잡아서 하지는 않겠네요?”, “현상도 혼자서 하시나요?”, “사진은 어떤 기종을 쓰나요?”, “도서관에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가요?”, “사진은 어느 만큼 찍나요?”, “외고는 어디에 쓰나요?”, “생계와 작업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헌책방을 처음 가게 된 계기라면?”, “도서관 오픈은 언제 하셨지요?”, “아직 여기 아시는 분은 많지 않겠지요?”, “미리 계획하고 생활을 하는지, 그때그때 흘러가는 대로 하시는지?”, “애착 가는 책 있을까요?”, “책 관리를 따로 하시나요?”, “구입할 때부터 헌책이었나요?”, “헌책 좋아하는 사람 많이 와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면?” ……. ‘도서관은 어떤 곳인가’를 묻는 말은 한참 뒤에야 겨우 나옵니다. 그나마 그 물음도 찾아오는 사람 숫자나 물어 보는 이야기.

 

 

 마을마다 도서관이 하나씩 있으면 좋습니다. 도서관은 커야 하지 않으며, 갖춘 책이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마음 쉬러 올 수 있는 곳이면 좋은 도서관입니다. 책을 자기 집까지 빌려가서 읽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꼭 자기 집까지 책을 빌려가서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찾아와서 한두 줄이라도 읽고, 또는 책 껍데기라도 슥 훑으면서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모든 책을 자기 주머니돈 털어서 사 읽어야 하지 않듯,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어내려가야 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 틈틈이 읽으면 좋은 책이 있으나, 곁에 두면 좋은 책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 몸가짐을 추스르도록 도와주는 책이니, 줄거리를 머리통이 아닌 몸통으로 받아들이도록 해 주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지역신문 취재기자가 돌아가고 난 뒤, 쉬지 않고 물음에 대꾸하느라 아픈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물을 마십니다. 고향동네로 돌아와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기자라는 사람들하고는 이맛살을 찌푸리지 말자고, 그네들이 바라는 게 있으면 바라는 대로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해 주자고, 사진을 찍으려면 그러려니 찍으라 하자고 다짐을 했지만, 이 다짐을 지키기란 참으로 고달프네요.

 

도서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해서 나쁠 일이 없으나, 책만 많이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에, ‘사람들이 덜 찾아와’도, 한두 분 찾아오는 그분들이 돌아나가는 걸음이 가벼울 수 있으면 저로서는 훨씬 보람을 느낍니다. 지역도서관은 지역문화를 가꾸려고 힘을 보태는 곳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 자기 뜻을 키우며 살아가려는 사람들한테 언제나 깃들일 수 있는 쉼터가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책으로 공부하는 자리가 될 수 있는 한편, 책을 보며 쉬거나, 책을 안 보고 걸상에 앉아 차 한 잔 꼴깍꼴깍 하고 돌아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은 책일 뿐인데, 책을 물건으로 느끼려 하면, 헌책이니 새책이니, 비싼 책이니 싼 책이니, 고서니 희귀서니 하는 금을 그어 버리게 됩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인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않으면, 서로를 푸대접하거나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기도 하지만, 이웃 발등에 떨어진 일을 나 몰라라 하게 됩니다.

 

 도서관 문간에 ‘기자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써 붙일까 생각해 보다가 그만두기로 합니다. 바보짓 같아서. 물 한 잔 더 마시고 숨을 돌리다가 바깥바람을 쐬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기 하나 걸쳐메고 도서관 앞 헌책방 가운데 하나인 〈오래된 책집〉에 들릅니다. 쓸쓸한 마음은 그만 접어두고 싶어서. 내 마음에, 내 눈에, 내 생각에는 좋은 이야기로 덮어씌우고 싶어서. 아직 뜨지 못한 어설픈 내 눈길을 틔워 보고 싶어서.

 


 〈2〉 책 몇 권을 읽는다 한들


 <사진을 말한다>(박필호, 시각, 2003)라는 책이 보입니다. 이분 책은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새 판이 나왔나 싶어 더듬더듬 넘깁니다.


.. 옛날의 형식주의 사진은 화면의 꾸밈새를 위해 중요시되어 있었고, 관념적 구도법칙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거기에 맞도록 피사체를 구했었다. 또 한 장의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서도 구도의 호(好)ㆍ불호(不好)로 그 가치를 결정하고, 또 그러기에 힘써 왔다. 즉 기술적인 면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사진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  〈132쪽〉


 집에 와서 책꽂이를 살펴보니, ‘대한직업사진가협회’에서 1982년에 한 번 펴냈습니다. 박필호님이 1981년에 숨을 거두고 한 해가 지난 1982년, 당신을 기리려는 사람들이 펴냈다고 하네요. 그 뒤로 2003년에 다시 나왔으니 스물한 해 만에 빛을 보네요. 2003년에 다시 나온 판은 앞으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 책 또한 새책방에서 사라지면 그예 잊혀져 버리는 책이 될까요, 아니면 도서관에서라도 사들여서 갖추어 줄 책으로 남을까요.

 

 두툼한 <최수운 연구>(한국사상연구회, 1974)가 보입니다. 동학 다룬 책을 찾아 달라는 아는 분 부탁이 떠올라 집어듭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3)>(보이어ㆍ모레이스, 현장문학사, 1989)이 보입니다. 이 책은 ‘백범사상연구소’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다섯 권으로 나누어 1977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 뒤, ‘인간’ 출판사에서 <미국노동운동사>라는 이름으로 한 권짜리 낱권책으로 1981년에 나옵니다. 그런 뒤 한동안 판이 끊어진 채로 있다가 ‘현장문학사’에서 손바닥책으로 다시 나옵니다.

 

 이 책은 책이름 그대로, 미국사람한테도 미국 아닌 나라 사람한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노동운동 역사도 한국사람한테 제대로 안 알려진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아니, 우리들은 대기업에서 일하든 중소기업에서 일하든 공무원으로 일하든 교사로 일하든 공장에서 일하든, 누구나 ‘노동자’일 텐데, 자기가 노동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더욱이, 무슨 설문조사를 하는 자리에서 ‘직업 칸’ 동글뱅이를 그려야 하는 자리에 ‘노동자’ 석 자는 없습니다. ‘근로자’로도 없습니다. 피를 뽑으며 개인신상카드를 적을 때에도 ‘노동자’든 ‘근로자’든 없습니다. 오로지 ‘회사원’만 있을 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아고타 크리스토프/용경식 옮김, 까치, 1993)을 봅니다. 이 책은 모두 세 권(상중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전에 읽고 한 권을 잃어버려 짝을 맞춘다고 하면서 하권을 산 적 있는데, 사 놓고 집에 와서 책꽂이를 살펴보니 중과 하는 있고 상이 없더군요. 하, 거참. 이 정신머리하고는.

 

 <껍질 벗긴 소>(김다은, 담벼락, 2002)라는 수필모음이 보입니다. 김.다.은. 낯선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이 저한테나 낯설 뿐이지, 이이한테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한테는 낯익은 이름일 테며, 이분이 쓴 글을 알아보고 책으로 펴내 준 분들한테도 낯익은 이름이겠지요.


.. 사실 외국에서는 교수가 단체로 책을 주문해 학생들에게 배부하는 지나친 친절은 찾아볼 수 없다. 수고스럽더라도 학생 스스로 서점에 가 직접 사야 한다. 읽고자 했던 책이 어느 코너에 있는지 안내원에게 묻고 찾아가는 도중에, 그는 책의 나라에 펼쳐진 수많은 신간, 베스트셀러, 문제작 등을 자연스럽게 구경하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코너에 도착해 자신이 사고자 했던 책을 찾는 과정에서도 관련 분야의 유사한 책이나 경쟁적인 책들을 만날 수 있다 ..  〈33쪽〉


 책방 나들이를 하는 즐거움이자, 책방 나들이를 하며 얻는 보람은 무엇일까요. 요즈음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집이나 일터 책상에 앉아 자판을 또닥또닥 두들겨 책을 주문하고 택배로 받아 봅니다. 돈은 은행계좌로 넣고요. 자기가 바라는 책 몇 가지만 살 때에는 인터넷이 참 좋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인터넷으로 책을 살 때에는, ‘자기가 주문하려는 책’ 말고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책방 나들이를 하면, ‘자기가 사려는 책’ 말고 다른 책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넘겨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사려는 책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지고 읽으면서, 참말 살 만한지, 아니면 이름 때문에 눈길이 끌렸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 느림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림은 빠름의 반대편에 있거나 빠름에 적응할 수 없는 무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느림은 개인의 자유를 일컫는 가치이다 ..  〈146∼147쪽〉


 짤막하게 쓴 글을 몇 꼭지 읽어 봅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분이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여태껏 읽은 책이라고 해야 기껏 몇 만 권? 훑거나 살핀 책이라면 몇 십만 권쯤? 될지 모르겠는데, 천만 권이나 일억 권을 읽거나 살폈다고 해도, ‘모르는 책’이나 ‘아직 깨닫지 못한 반가운 책’이 틀림없이 있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3〉 끼워팔기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분이 관광기념품으로 샀다가 흘러든 책일까요. 또는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시험삼아 들여온 책일까요. <김일성주석 덕성일화 100>(홍동근, 2002)이라는 조그마한 책이 보입니다. 재미있게 생겼구나 싶어서 구경을 해 봅니다. 북녘사람들은 이런 책을 얼마나 읽을까요. 이런 책은 몇 부나 찍어서 돌릴까요.


.. 주석님의 댁으로 간 그(려운형)는 생각했던바와는 너무도 다른 방안과 가구들을 보며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정갈하고 깨끗은 하나 한 나라의 수령의 저택으로서는 너무나도 검소하였기때문이였다.
 이윽고 식사가 들어 왔다. 자개도 박지 않은 보통 밥상우에는 색 다른 찬도 없었다. 려운형선생은 경건한 마음으로 위대한 주석님과 무자 앉아 한상에서 식사를 하였다.
 화제는 다시 정치문제로 옮겨 갔다.
 경애하는 주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그는 감탄하여 말씀을 드렸다.
 “장군님의 말씀을 듣으니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 지고 조선이 나아갈 길이 환히 내다보입니다. 솔직하게 말씀 드려서 저는 남조선에서는 물론이고 외국의 이름 있는 정치가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만 장군님 같으신분을 만나뵙기는 처음입니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씀을 드립니다만 장군님께서 계시여 우리 조선에 대통운이 텄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자기의 지나온 생애를 더듬으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려던 주관적욕망과는 달리 잘못된 일, 부끄러운 일도 많았다는것을 털어 놓았고 앞으로는 가르쳐 주신대로 힘 자라는껏 일하겠다고 결의도 말씀 드렸다.
 그는 그날로부터 한달동안 위대한 주석님댁에 머물러 있으면서 따뜻한 지도와 분에 넘친 배려를 받았다.
 참으로 김일성주석님은 탁월한 정치지도력을 지니신 희세의 정치가이실뿐아니라 인민적풍모를 지니신 인민의 수령이시였다 ..  〈382∼383쪽〉/ [북녘 맞춤법 그대로 옮김]


 여운형 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짚을 수 있나 더듬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김일성 찬양’만 나옵니다. 여운형이라는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가는 하나도 다루지 않습니다. 그렇겠지요. 막힌 사회에서는. 닫힌 사회에서는.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남녘나라는 어떠할까요. 우리 남녘나라는 북녘보다 한결 열리거나 트여 있는 사회일까요? 북녘이 ‘닫힌 나라’라고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열린 나라’일까요? 개성과 다양성을 높이 섬기면서 살뜰히 아껴 주는 사랑스러운 나라일까요? ‘모자라고 안쓰러운’ 북녘나라를 감싸안으며 다독일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믿음으로 아름답게 발돋움하는 나라일까요?

 

 인터넷에서 ‘헌책방’을 찾아보기해 보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씨 ‘토론회 주요내용 보도자료’라 하면서, “그 이후 서울에 와서 노동자 생활을 할 때 청계천에 있는 헌책방 주인이 시험을 쳐보라면서 책을 골라주는 등 제게 교육받을 기회를 주었다”는 이야기와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서울로 가서 노동자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청계천 주변의 헌책방 주인이 너 대학 한 번 가보라고 헌책을 공짜로 줘가지고 갔는데 합격을 했는데 대학 갈 수 없었을 때 재래시장 상인들이 저 노동자가 대학에 합격했다고, 고려대학교에 합격했다고 저를 환경미화원으로 시켜주면서 저를 공부를 시켜줬다”는 이야기가 뜹니다.

 

이명박씨가 무슨 연설자리에 나가거나 토론회에 나갈라치면, 어김없이 ‘이명박씨 당신이 20대 첫머리였을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책을 거저로 얻어서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명박씨는 지금까지도 헌책방거리를 사랑하고 아끼고 고마워하는지요? 가난하고 힘든 학생 한 사람을 도와준 헌책방 일꾼들한테 해 주는 보답이 청계천 헌책방을 그 자리에서 내쫓는 일인지요?

 

 

 북녘에서는 김일성을 띄우려는 선전물로 여운형님을 끼워팔기 하듯이, 남녘에서는 대통령후보 한 사람을 띄우려는 선전물로 헌책방 이야기를 끼워팔기 하는 셈은 아닌지. 헌책방이라는 곳은 ‘현실’이 아닌 한낱 ‘추억’거리로 옛날이야기를 들추어 내는 자리에 쓰이면 넉넉한지.


 〈4〉 조그마한 책쉼터


 헌책방 〈오래된 책집〉은,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가장 젊은 헌책방입니다. 이 헌책방거리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는 하나도 다루지 않는 두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값비싼 옛책이나 찾아보기 드문 책이 아니라, 우리들이 ‘날마다 먹는 밥’과 같은 인문학책과 문학책 들을 두루 갖춘 곳입니다.

 

 크기는 몇 평 되지 않습니다. 여느 살림집 방 하나 크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네모난 책방 벽 세 곳에 책꽂이를 채우고, 가운데에는 어른 가슴께 높이로 책시렁을 하나 놓습니다. 이 헌책방에 들여놓은 책 권수를 따지자면 오천 권 남짓 될까요? 오천 권이 안 될 수도 있고. 그러나 똑같은 책이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다 다른 책들이 다 다른 해에 태어나고 다 다른 첫임자 손을 거쳐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래된 책집〉 젊은 일꾼은 책 하나하나 잘 추스르고 매만져서 책시렁에 꽂힌 책들은 무척 깨끔합니다. 갈래에 따라 잘 나누어 꽂았고, 다른 헌책방에서는 몇 가지 꽂아 놓지 않곤 하는 시집도 책꽂이 한 칸을 수놓습니다.

 

 한참 책을 구경하다가 문득, ‘인천땅에 이렇게 잘 꾸민 책쉼터가 있는 줄 알고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 싶은 생각. 드문드문 제주섬 나들이를 할 때 찾아가는 제주시 〈책밭서점〉은 제주섬에 딱 한 군데 남은 헌책방이지만, 한 군데 남아서가 아니라 이곳 〈책밭서점〉을 가꾸는 책방 일꾼은 무척 바지런하며 심지가 곧습니다. 그렇지만 그 〈책밭〉을 들를 때마다 ‘제주에 이렇게 좋은 책쉼터가 있는 줄 알고 있는 제주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뒤잇습니다.

 

 책방이 크다고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책방에 갖춘 책 가짓수가 많다고 더 나을 수 없습니다. 책방을 찾아가는 교통이 넉넉하다고 그곳이 더 넉넉하지 않습니다. 책 하나를 펼쳐 읽더라도, 자기가 집어든 책에 담긴 알맹이가 중요합니다. 책 한 줄을 마음에 새기더라도 자기 온몸으로 펼쳐 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밝은 빛줄기가 유리벽으로 스며드는 〈오래된 책집〉 문을 나섭니다. “다음에 또 구경하러 올게요.” 하고 인사를 남기며.

 

덧붙이는 글 | - 인천 배다리 〈오래된 책집〉
: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 금곡동 헌책방거리 한쪽에 있습니다.


#오래된 책집#헌책방#인천#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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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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