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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2500원짜리 김치찌개 (자료사진)
잊을 수 없는 2500원짜리 김치찌개 (자료사진) ⓒ 이효연

"미경씨 김치찌개 먹으러 가요."
"네, 방금 점심 먹었잖아요?"
"아니 오늘 아니면 김치찌개를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요."
"김치찌개를 먹지 못한다고요. 먹고 싶을 때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김치찌개잖아요?"
"경상대학교 앞에 있는 김치찌개를 언제 먹을 수 있겠어요. 통영에서 김치찌개 먹으러 진주까지 갈수도 없고…."


1997년 8월 25일 아내와 내가 나는 대화의 일부분이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아내와 나는 진주로 와서 혼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집 살림을 통영에 차리기로 해서, 진주의 김치찌개를 오늘 먹지 않으면 다시 먹지 못할 것 같았다.

경남 진주 경상대학교 앞에는 김치찌개를 맛있게 하는 식당들이 많았다. 가격은 2500원이었다. 학생들은 적은 돈으로 맛좋은 김치찌개를 푸짐하게 즐길 수 있었다. 나는 경상대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진주에만 오면 반드시 경상대학교 앞 식당에 들러 김치찌개를 사먹었다. 어떻게 김치찌개 맛을 내는지 몰라도, 국물은 정말 시원했고, 매운 맛과 약간 신맛이 나는 김치찌개는 다른 동네 김치찌개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아내와 함께 김치찌개를 시켜 먹는데 아내는 배가 부른지 더 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맛있는 김치찌개일지라도 점심 먹은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고, 다른 식당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양은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혼인 후 살 곳은 통영이라 앞으로는 자주 먹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아내 것까지 다 먹고 싶었다. 밥도 공기밥이 아니라 냉면 그릇 비슷한 대접에 퍼준다. 대접 2개와 김치찌개 2인분, 1인분이 2인분 비슷하니 4인분을 먹은 셈이다.

"동수씨 이제 그만 먹어요. 내가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면 되잖아요."
"미경씨 김치찌개는 김치 맛이 결정합니다. 김치가 맛이 없으면 김치찌개 생명은 없는 겁니다."
"그럼 내가 김치를 맛있게 담그면 되잖아요."
"미경씨 미안하지만 김치 담그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김치 담그는 법 알아요!"
"참 모르시는 말씀하신다. 김치를 담글 수 아는 것과 맛있게 담그는 것은 달라요. 이 김치찌개에 들어간 김치만큼 맛있게 담글 수 있습니까?"
"…."


아차 싶었다. 김치찌개에 정신이 팔려 아내를 무시해버린 것이다. 아내 얼굴이 변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었다고 억지로 끌고 와서는 김치 잘 담글 수 있는지 타박이나 주는 이상한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치 맛이 엉망이라 해도 맛있다고 해도 젊은 여성들이 김치를 담그는 법이 별로 없을 것인데, 이런 맛을 내지 못하니 김치찌개 맛도 없을 것이라는 타박을 했으니 이런 남자가 어디 있는가?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미경씨 오해하지 마세요. 여기 김치찌개 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알겠어요. 앞으로 김치찌개 먹고 싶으면 통영에서 2시간 차 타고 와서 맛있게 드세요. 나 같이 김치 담그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김치찌개  맛을 낼 수 있겠어요."
"아니지요, 미경씨 김치찌개 맛이 최고지요."
"언제 제가 끓인 김치찌개 맛을 보았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


참 난감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에이 모르겠다. 김치찌개나 다 먹자' 하면서 4인분이나 되는 김치찌개를 다 먹었다. 배가 얼마나 부른지 토할 것 같았지만 언제 이런 김치찌개를 맛볼 수 있으랴.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 많은 김치찌개를 다 먹었어요. 맛있기는 맛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걱정됩니다. 이런 김치찌개 맛을 내지 못하면 김치찌개 끓이기도 힘들겠네요."
"하하하, 그래요. 미경씨가 끓여주는 김치찌개 기대하겠습니다."

다시 진주로 이사를 왔지만 경상대학교 앞에 있던 식당들은 개발 때문에 다 없어졌다. 2500원으로 김치찌개를 사먹었지만 지금은 냉면, 갈비집 등으로 바뀌어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으면 찾기 장소가 되어버렸다.

음식점은 깔끔해졌지만 김치찌개 맛은 다시는 맛볼 수 없다.  이제 혼인 전날 4인분 먹었던 김치찌개를 다시는 먹을 수 없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서 아내에게 김치찌개를 끓어 달라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아내는 그 맛을 내지 못한다.

2500원짜리 김치찌개, 쌀쌀해지는 요즘 문득 그 맛이 그립다.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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