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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남은 제육볶음에 김치 송송 썰어 넣어 만든 볶음밥입니다.
조금 남은 제육볶음에 김치 송송 썰어 넣어 만든 볶음밥입니다. ⓒ 이효연

 

제육볶음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볶음밥입니다. 참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먹게 된 돼지불고기죠. 왜냐구요? 얘기를 하자면 남편 흉을 안 볼 수가 없는데….


사실 갑자기 제육복음을 생각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쿠폰때문입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정육점을 자주 이용하는데, 이 집에서 받은 쿠폰이 10장이나 돼서, 돼지불고기 한 근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그 쿠폰을 내고 고기를 받아왔어야 하는 것인데 그만 깜빡 잊고 김치찌개용 고기만 사왔지 뭐예요? 한 마디로 고기는 더 살 필요가 없고 그냥 쿠폰만 가지고 가서 고기를 받아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달리 다른 반찬을 하자니 찬거리도 마땅치 않았구요.


양념을 만들면서 남편에게 냉장고에 붙은 쿠폰으로 고기 좀 받아다 달라고 했더니 어떻게 고기를 사지도 않으면서 쿠폰을 내고 공짜로 받아오느냐며 못 가겠다는 겁니다.


"뭐 다른 고기 살 것 없어? 삼겹살이나 좀 사면서 받아올까?"
"아니, 이미 다 샀어. 그냥 쿠폰으로 고기만 받아와. 내가 어제 얘기해두었으니 그냥 가면 돼."


"아우, 어떻게 그래도 달랑 쿠폰 내밀고 공짜로 고기를 받아오냐? 김치찌개 고기라도 좀 사지, 왜?"
"됐다니까? (버럭) 창피해서 그런 거얏?"

 

'워낙 단골이라서 주인아저씨와 잘 아는 사이고 아저씨가 오히려 부담갖지 말고 반찬거리 떨어졌을 때 고기 안 사도 되니까 모아둔 쿠폰을 그냥 아무 때나 가지고 오라고 했다'며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살살 피하면서 결국에 고기를 안 받아오더군요. 머리 자르러 나간다는 둥, 아이랑 놀이터 나간다는 둥 쓸데없는 핑계를 만들어서 제 눈만 살살 피하고 말이에요.


평소 웬만한 부탁은 거의 다 들어주는 편인데 그날 만큼은 정말이지 사람이 달라 보이리 만큼 요리조리 피하는 남편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쿠폰 가지고 고기 받아오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정말 얄밉더라구요. '남자 체면 구긴다' 이거죠.

 

사실 체면 얘기하면 저도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누구는 체면이 없나요? 야채나 고기 같은 것 미리 많이 사 두면 맛이 떨어지거나 잘 안 먹게 되기에 나름대로 알뜰하게 살림한다고 '체면불구'하고 500원, 1000원 어치씩 부끄러운 손 내밀면서 사 오는 일이 허다한데 남편이란 사람은 공짜 쿠폰을 손에 쥐어줘도 저렇게 마다하니 참 이해가 안 될 일이었습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제 남편은 평소 뛰는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빠른 걸음을 걸을 뿐이지 도무지 뛰는 걸 못 보았습니다. 급해 죽겠다고 좀 뛰라고 소리소리 질러도 '절대' 뛰지 않습니다.

 

언젠가 물어봤더니 남자가 촐랑촐랑 거리는 것 같아 보기 안 좋다나요? 점잖은 양반은 뛰는 게 아니라는 소리도 덧붙였던 것 같구요. 하긴 딸아이 운동회에 가서도 다른 경기에는 다 참여하면서도 달리기는 쏙 빠지더군요.

 

헛! 자다가도 웃을 얘기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이번에 쿠폰 건을 보고 정말 '알아봤다' 싶었습니다. 남자들은 다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 남편만 좀 특이한 경우인지 참 궁금합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한 구석입니다.


얘기하다보니가 다시 슬슬 얄미워지기 시작합니다. 왜 얄미운지는 콕 찝어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앞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숭덩숭덩 들어간 김치찌개는 한동안 안 해줄까 생각중입니다. 정 먹고 싶다고 얘기하면 모아둔 쿠폰 내밀면서 돼지고기 받아오면 끓여주겠다고 해 볼까도 생각중이구요.


그런데 정말 알고 싶네요. 음식 쓰레기 버리기, 옥상에 빨래 너는 일 같은 것은 군소리(?) 없이 잘 도와주면서 유독 쿠폰 가지고 가서 고기 챙겨오는 일은 '체면' 때문에 못하겠다는 그 마음은, 그 심사의 바닥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자와 남자는 생각하는 뇌의 구조가 달라서 이해 못 할 부분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다른 댁 남편분들도 제 남편의 입장이었다면 그리 하셨겠는지요?

 

 깻잎이나 샐러리잎을 잘라 올리면 향긋한 향을 즐길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깻잎이나 샐러리잎을 잘라 올리면 향긋한 향을 즐길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 이효연
 
 
제육 김치 볶음밥(3~4인분)

재료
*주재료 : 돼지불고기 한 근(600그램), 식용유 약간, 양파(중) 1개, 대파 1뿌리, 깻잎 5장,당근 1/2개, 송송 썬 김치 1컵.
*양념장 재료 : 고추장, 맛술 3큰술, 고춧가루·참기름 2큰술, 진간장·설탕·올리고 당·깨소금·다진 파·마늘 각 1 큰술씩, 생강가루·후춧가루 1작은술 씩.
 
 양념된 돼지고기는 냉장고에서 30분~1시간 가량 숙성시키면 양념이 고르게 스며들어 더욱 맛이 좋습니다.
양념된 돼지고기는 냉장고에서 30분~1시간 가량 숙성시키면 양념이 고르게 스며들어 더욱 맛이 좋습니다. ⓒ 이효연

1. 양념장 재료를 잘 섞어 고르게 개어 놓고 야채는 한 입 크기로 썰어둔 다음, 고기와 한 데 버무려 30분 이상 재워둡니다.
 
 팬을 뜨겁게 달군 후 볶다가 고기 표면이 어느정도 익으면 중불로 줄여 속까지 익혀내도록 합니다.
팬을 뜨겁게 달군 후 볶다가 고기 표면이 어느정도 익으면 중불로 줄여 속까지 익혀내도록 합니다. ⓒ 이효연
 
2. 기름을 두르고 달군 팬에 양념된 1의 돼지고기를 넣고 볶으면 제육 볶음 완성.
 
 김치국물을 조금 넣어 볶아도 맛이 좋습니다.
김치국물을 조금 넣어 볶아도 맛이 좋습니다. ⓒ 이효연
 
3. 양념된 제육볶음과 송송 썬 김치를 넣고 밥과 함께 볶으면 제육 김치 볶음 밥 완성. 깻잎을 잘게 잘라 올리고 참기름도 뿌려주세요.
 
 따끈한 된장국이나 달걀국을 곁들이면 더욱 좋지요.
따끈한 된장국이나 달걀국을 곁들이면 더욱 좋지요. ⓒ 이효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요리를 들려주는 여자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육김치볶음밥#제육볶음#김치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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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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