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두 차례에 걸쳐 8시간 정도였다. 한 번(9월 2일)은 청와대 관저에서였고, 또 한 번(9월 16일)은 청와대 상춘재였다. 모두 일요일이었다. '인물연구 노무현'을 위해서였다.

대통령 노무현을 인물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집권 초기의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파병 때부터 그랬다. '전통적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탈 혹은 분화를 보면서 그에 대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식을 연구하고 싶었다.

탄핵이 있었고, 전통적 노무현 지지자들은 다시 그를 구해냈다.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이름에서 감동을 느낀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거의 5년이 다 지나고, 다시 대선의 해를 맞았다. '옛 노무현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감동거부증세까지 보인다. '2002년에 노무현에 감동했는데, 대통령 뽑아놨더니 별 거 없더라, 2007대선에서는 다신 감동하지 않겠다'.

어떤 대상에 대해 애증이 장기화되면 두 갈래로 정리된다. 하나는 무관심과 포기다. 다른 하나는 본격 연구다. 후자는 미련이 남아있는 경우다. 쏟았던 애정이 하룻밤의 축제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픈 경우다. 또 다른 감동을 준비하고픈 경우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지지율이 30%를 밑도는 때가 많은 대통령.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속시원히 묻고 싶었다. 대통령할 준비 안됐었습니까? 왜 그 정도밖에 못하십니까? 언론의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왜 좀 더 치밀하게 못하십니까?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꼭 대통령 노무현을 인물연구해야겠다고 작정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너무 독특했다.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언론으로부터도 비판당하는 대통령이 '마지막 1년을 보내는 방식'이.

내가 그를 본격적으로 인물연구 하고 싶었던 것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언론의 희화화(戱畵化)가 극에 달했던 지난 6월초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포럼) 창립식에서 무려 4시간에 걸친 작심 연설을 했다. 조중동을 포함한 주요 신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광신도 앞의 교주' 정도로 묘사했다. 우스꽝스럽게 잡힌 사진들을 곁들였다. 방송들도 노 대통령의 자극적인, '야한' 말들을 중심으로 1분 내외 길이의 몇 꼭지를 내보냈다.

언론은, 사회(현실)의 거울이 아니라 '편집된 거울'이다. 나는 그날의 4시간 연설의 전문을 찾아 읽고 싶었다. 우리가 2002년에 뽑은 대통령은 정말 그렇게 언론의 놀림감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을까? 임기를 1년도 채 남겨놓지 않은 대통령은 왜 그렇게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말을 많이 한다고, 거칠게 한다고 지적 받아온 대통령은, 그런 지적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왜 또 그랬을까? 그날 연설의 첫 대목의 제목은 "참여정부는 실패했는가, 무능한 정부인가"였다. 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자신에 대한 평가를 그토록 소중히 여길까?

전문을 읽어보려 했더니 A4용지 30장이었다. 한 번 읽는데 3시간이 걸렸다. 그곳엔, 언론이 뽑아낸 자극적인 말들은 양념이었을뿐, 그것들과는 다른 진지한 세계가 있었다. 민주주의론, 지도자론, 시민사회론이 있었다.

연설문의 후반부를 읽을 때 나는 느꼈다.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는 노무현의 말, 노무현의 실험, 노무현의 사상에 10년 이상 더 영향을 받겠구나! 그것이 적든 크든.

그리고 한편으로 이해가 됐다. 왜 그가 30%를 밑도는 지지율에,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큰소리를 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는지. 그가 왜 임기 말에 '정리'가 아니라 새롭게 분노하고, 새롭게 대결하고, 새로운 승부를 걸고 있는지.

지난 8월 16일 나는 청와대에 공식적으로 '대통령 노무현 인물연구를 위한 인터뷰'를 신청했다. 특별히 부탁한 건 이 한가지였다. 양쪽 모두 '인터뷰 준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마음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생일축하 꽃다발을 건네는 오연호 대표기자.
노무현 대통령에게 생일축하 꽃다발을 건네는 오연호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보름 후인 9월 2일 일요일 오전 10시 청와대 관저에서 첫 번째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집무실이 아닌 거처인 관저에서 언론인을 만나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라고 동석한 비서진이 말했다. 나는 선물로 <오마이뉴스>에서 최근 펴낸 단행본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를 준비했다. 속표지에 이렇게 적어 대통령에게 건넸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든 시민은 지도자다'.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 문장은 <오마이뉴스>의 모토이고, 뒷 문장은 노대통령의 참평포럼 연설문의 결론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본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높은 수준이 돼야 우리가 이상적인 사회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겠지요."

오전 10시에 시작된 대화는, 관저에서의 점심식사로까지 이어졌고, 관저 옆 야산의 대통령 휴식처에서도 계속됐다. 오후 1시 30분경 휴식처에서 내려오면서 작별인사를 나누려했더니 대통령은 "좀 더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다시 관저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날의 대화는 오후 3시 30분에야 끝났다.

두 번째 인터뷰는 9월 16일 일요일이었다. 공교롭게도 노 대통령의 61회 생신이었다. 언론들이 일제히 "변양균, 정윤재씨 사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쓸쓸하고 우울한 생일을 보내게 됐다"고 쓰던 그날이었다. 꽃다발을 준비해 전했다. 이날은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노 대통령과의 두 차례 인터뷰는 <오마이뉴스>에서 이한기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 황방열 기자가 함께 했다. 청와대측에서는 양정철 홍보기획 비서관, 김종민 국정홍보 비서관, 김경수 연설기획 비서관, 윤태영 전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서로 특별한 준비 없이 만나서였을까? 총 8시간에 걸친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솔직했다.

"지지자를 만나면 '나 때문에 힘들었지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지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 나 지지한 것 때문에 힘들게 한 것이지요."

노 대통령은 "말씨와 자세에서 대통령 할 준비가 안돼 있었다"고도 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시도에 대해서는 "나의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라면서 "아주 뼈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좀 부드러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8시간 대화에서 얻은 소득은 그가 왜 임기말인데도, 변양균-신정아-정윤재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가 죽지 않고 짱짱하게 자기 할 말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를 파악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말했다. "참여정부의 권위주의 해체와 권력분산은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검찰은 장악할래야 장악도 안되지만 일부러 검찰신세를 절대 지지 않았다. 임기 끝내고 살아서 내 발로 걸어나가고 싶어서였다." 이런 말도 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막판에 언론에 타살당했다, 나는 송장이 안되고 떳떳이 걸어나가겠다. 자기방어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떳떳이 살아 걸어나갈 준비의 핵심이 공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권력론, 민주주의론, 지도자론, 시민사회론에 대한 것이었다. 그 공부를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과 연결해 "정치학 교과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퇴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노무현 저(著) 정치학개론'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 그가 참평포럼의 4시간 연설 후반부에 민주주의론을 설파했는지 그제서야 연결이 됐다.

대통령은 말했다.

"정치권력은 하나의 권력일 뿐이지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시민사회에서 나옵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에서는 퇴임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권력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대통령을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속으로."

그런 노무현 대통령이 만약 2007 대선을 주제로 정치학 특강 '권력론편'을 한다면? 아마도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2007년 대선정국에서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과정을 밟고 있다. 대통령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권력일뿐이다. 우리는 이미 '진정한 의미의 최고권력'인 시민사회를 갖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의 탄생은 감동과 참여로 가능했다. 당신이 만약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면 당신은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의탁한 권력'을 '버린' 것이다, 새로운 권력을 선택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시민은 지도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퇴임은 마침표가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다. 여기에 그가 임기 말에도 기죽지 않은 이유가 있다. 여기에 우리가 앞으로도 적어도 10년 간은 노무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8시간동안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인물연구 노무현은 앞으로 <오마이뉴스>에 여러 차례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전문적으로 인물연구 노무현을 함께 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참평포럼 연설문 전문을 미리 읽어보길 권한다. 3시간 걸린다. 3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함부로 현직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참평포럼 전문①] "언론의 자유가 기자실에 있나?"
[참평포럼 전문②] "손학규씨가 왜 범여권인가?"

당신은 지금 2007대선에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 우리가 2002년에 뽑았던 대통령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대선(대통령)이 뭐길래'에 대한 답을 같이 찾아보자. 어떤 대선 후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분들,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 혹은 그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분들, 그리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분들 모두 이 연재 기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 2일 오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으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와 과제에 대한 특강을 하고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 2일 오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으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와 과제에 대한 특강을 하고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노무현#참평포럼#2007대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OhmyNews 대표기자 & 대표이사. 2000년 2월22일 오마이뉴스 창간. 1988년 1월 월간 <말>에서 기자활동 시작.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